분노의 하일성 “선수들이 이럴 수 있나!”

구성진 입담으로 야구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어온 하일성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이 억대 송사에 휘말렸다. 그에게 1억원짜리 소송을 걸어온 당사자는 다름 아닌 프로야구선수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KPBPA·이하 선수협)는 지난 10일 하 총장이 대표로 있는 한국야구위원회 마케팅 자회사(KBOP)를 상대로 1억 500만원의 초상권 사용료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이에 협회와 선수 사이 중재자 역할을 자임해온 하 총장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며 억울하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반면 선수협은 하 총장과 KBOP 측이 계약사항을 어기고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발끈하고 나섰다. 야구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소송 자체보다 선수들의 협회 실세를 향한 무력행사로 받아들이고 있다. 프로구단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거진 선수와 협회의 불협화음이 물리적 충돌로 불거졌다는 것이다.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나진균 선수협 사무총장은 지난 10일 “KBO의 마케팅 자회사 KBOP가 선수들의 사진·영상 등을 통해 얻은 수익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변호사를 통해 KBOP 대표인 하 총장에게 초상권 사용료 일부인 1억500만원을 먼저 지급해달라는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나 총장에 따르면 KBOP는 2006년 선수협과 초상권 사용 계약을 맺고 수익금의 30~50%를 매년 지급하기로 했다. 선수협은 지난해 KBOP가 벌어들인 돈 7억원 중 2억원을 받기로 했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KBOP는 지난해 모 온라인 마케팅 대행사와 5억9800만원의 초상권 사용 계약을 맺는 등 적어도 7억3600만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나 총장은 “KBOP가 이익금 지급이 늦어지는 이유를 공식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다. 협회는 마냥 늦어지니 기다리라는 말뿐이었다. 우리 쪽에서 재촉하자 ‘법대로 하라’는 대답이 돌아와 어쩔 수 없이 소장을 접수한 것”이라고 소송 이유를 설명했다.
선수협의 강경 대응에 KBOP 대표를 맡고 있는 하 총장은 황당하고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 11일 한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선수협에 배신감을 느낀다. 사전 통고나 협의도 제대로 갖지 않고 어떻게 무작정 법에 호소할 수 있냐”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작년에도 5월에 일괄 지급”
하 총장의 읍소와 함께 KBOP 역시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다. 아직 정산이 다 끝나지 않아 기다려 달라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KBOP는 지난해도 5월 경 정산을 끝낸 뒤 선수협과 구단에 수익금을 일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대환 KBOP 이사는 “선수협에 초상권 사용업체들의 현황 등을 알려주고 모든 업체들의 정산이 끝나면 수익금을 일괄 배분하겠다는 뜻을 누누이 밝혀왔다. 모바일 업체들로부터 아직 대금을 받지 못한 상황이라 4월말 쯤 사용료를 줄 예정이었다”고 주장했다.
KBO는 역시 수익금 배분 대상인 프로구단들도 협회 행정을 믿고 기다려주는 가운데 선수협이 나서 일을 크게 만든 것에 대해 못마땅한 입장이다.
하 총장은 인터뷰에서 “언제 KBO가 안 준다고 한 적 있느냐. 구단 몫으로 떨어지는 70%도 아직 배분하지 못했다.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프로구단들도 줄줄이 기다리는 형편에 선수협이 지나치게 앞서간 듯싶다”며 답답함을 털어놨다.
KBO에 따르면 선수협은 법적 소송과 관련해 KBOP와 아무런 사전 협의도 거치지 않았다. 하 총장은 ‘선수협이 사사건건 ‘법대로’를 외치며 잡음을 내는 것은 비이성적’이라며 불쾌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들어온 돈 달라 했을 뿐”
반면 선수협은 KBOP가 업체와 맺은 구체적인 계약사항 등을 전혀 알려주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회수한 수익금조차 지급하지 않는 등 계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최수미 홍보팀 대리는 “계약서에는 업체로부터 KBOP에 수익이 입금된 1주일 안에 선수협에 정산, 지급하도록 돼있다. KBOP는 이미 두 업체로부터 수익 일부를 받은 상태였다. 약속을 지켜달라고 여러 번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눴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정확한 수금일정을 알기위해 업체와 KBOP가 맺은 계약서를 보여 달라는 선수협의 요청도 KBOP측이 거절했다. 업체와 KBOP가 맺은 계약 규모와 업체명 등 일부 현황은 전달받았지만 선수협 입장에선 구체적인 계약 내용과 대금 지급 일정도 모른 채 앉아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일부 보도와는 달리 선수협은 KBOP에 수익금 배분을 해주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사전에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대리는 “선수협이 지난 3일 ‘예정된 수익금 지급을 계속 미루면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KBOP 실무 담당자에게 전했다.
이전에도 관련 협조를 계속 구했지만 ‘법대로 하라’는 답을 들었다. 때문에 선수협이 사전 협의없이 일을 저질렀다는 일부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선수협, 위기 탈출 노림수?
하 총재와 KBO는 이번 사태를 소송 자체가 아닌 선수협의 ‘노림수’로 보고 있다. 선수협이 내부적으로 닥친 위기를 외부로 돌려 탈출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프로야구선수들은 최근 혹독한 구조조정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프로구단들이 연봉 삭감제한 조치를 없애기로 함에 따라 선수들 연봉이 큰 폭으로 깎였다. 때문에 선수들 사이에서는 ‘일이 이지경이 되도록 선수협은 도대체 뭘 한 거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선수협이 이 같은 내부 구성원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협회를 상대로 소송을 재기, 일종의 과시용 ‘액션’을 취한 것이 아니냐는 게 KBO의 분석이다. 특히 하 총재는 야구계 대선배인 자신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 이목을 집중시킨 행위에 대해 무척 불쾌해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2005년 이종범(KIA) 등 선수협 소속 선수들은 서울중앙지법에 “KBOP가 선수들 사진 등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위법하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걸어 승소판정을 받은 바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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