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수 vs 대전시티즌 집안싸움 내막
고종수 vs 대전시티즌 집안싸움 내막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04-17 10:10
  • 승인 2008.04.17 10:10
  • 호수 729
  • 5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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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팡테리블, 차라리 다른팀에 가서 알아봐”

‘앙팡테리블’ 고종수(30·대전시티즌)의 부활 드라마가 또 다시 삐걱거렸다. 지난해 초 대전에 입단, ‘영원한 스승’ 김 호(64) 감독 아래서 2년여의 방랑 생활을 정리한 고종수. 그는 2007시즌 대전의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일궈 화려한 복귀신고식을 치른바 있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하기 무섭게 말썽이 불거졌다. 연봉과 추가 수당 등 돈 문제로 구단과 신경전을 벌인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급기야 고종수는 지난 6일 인천과의 홈경기에 불참,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하루 만에 팀 훈련에 합류, 몸만들기에 들어갔지만 고종수는 골·어시스트 등 공격포인트 수당 지급을 놓고 소속팀 대전시티즌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지난 8일 구단과 가까스로 협상을 마무리 지었지만 잃은것도 많다. 겨우 한 시즌 만에 불거진 ‘머니게임’을 놓고 대전 팬들의 원성을 산 것. 일부 서포터즈는 고종수에게 “차라리(더 높은 연봉을 줄 수 있는)다른 팀을 알아보라”고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억대의 돈이 얽힌 고종수와 대전의 집안싸움 내막을 들여다봤다.

지난 6일 대전월드컵구장에서 벌어진 대전과 인천의 정규리그 4라운드 경기. 하지만 출전선수명단에 대전 팀 주장 고종수가 없었다. ‘올 시즌 모든 공격은 고종수의 발끝을 거친다’며 그의 역할에 큰 기대를 품고 있던 많은 팬들은 김 호 감독 결정에 의아해했다. 하지만 고종수는 이미 하루 전 벌어진 팀 훈련에도 불참한 것으로 드러났다.


선수가 훈련·경기 보이콧?

고종수가 팀 훈련과 경기를 보이콧한 것은 구단과 연봉협상 과정에서 적지 않은 마찰음을 냈기 때문이다.

고종수의 에이전트 AI스포츠 측은 지난 7일 “대전 구단이 프로선수로서 누려야할 기본적인 권리마저 해결해 주지 않았다”며 고종수의 행동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구단의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기 위해 훈련과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전 구단 측은 ‘억지’라고 맞서고 있다. 구단 관계자는 “프로로서 책임감 없는 행동을 한 것에 실망했다. 우리는 선수에게 할 만큼 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고종수와 대전시티즌은 지난 8일 오전까지 원만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1억7천만원 기본 연봉에 승리수당 지급 등 기본적인 틀에는 동감했지만 기타 옵션에 대한 세부 논의를 끝내지 못한 것.

그날 오후 대전 송규수 사장과 고종수 에이전트는 협의에 성공하며 사태는 일단락 됐다. 고종수 역시 팀에 복귀하며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모양새가 좋지 않다.

고종수와 대전의 갈등은 이미 올해 초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양측은 연봉협상을 마무리 짓지 않은 상태로 시즌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프로연맹에 고종수를 연봉 1억원 선수로 이름을 올린 대전.

이는 경기를 치르면서 세부 사항을 조절하자는 뜻이었지만 달리말해 언제든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시발점이 됐다.


“팀에 기여한 만큼 수당 달라”

지난해 고종수는 2400만원 고정연봉에 경기 출전수당 700만원, 승리수당 250만원, 골·어시스트 등 공격포인트 수당 300만원씩을 받는 1년짜리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올 초 계약 연장 시기가 다가오자 구단은 고종수의 연봉을 대폭 올려주는 선에서 재계약을 제안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대전은 고종수에게 연봉 1억7천만원을 제시했다. 그나마도 1억5천만원을 불렀다 고종수 측이 거절하자 2천만원을 더 얹은 것이다.

시민구단으로 매년 20억 가까운 적자에 시달리는 대전으로선 ‘할 만큼 했다’고 주장할 만 하다. 그 밖에 승리수당(홈경기 250만원·원정경기 350만원)을 추가로 지급하는 조건이 추가됐고 고종수도 이 같은 구단의 배려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고종수 측은 지난 시즌 지급됐던 출전수당 700만원과 공격포인트 수당 300만원이 올해 계약서에서 빠졌다는 것에 불만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종수의 대리인인 AI스포츠 곽희대 대표는 “고종수의 기여도에 맞는 (급여)수준을 원한다. 고정 연봉 부분은 협의가 거의 끝났다. 하지만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다른 수당으로 채워주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결국 대전은 고종수에게 공격수당을 주지 않는 대신 그가 골 또는 어시스트를 기록할 경우 일정액을 대전 축구발전기금으로 모아 고종수 이름으로 기부하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았다.

선수와 구단간의 ‘믿음’이 사라졌다

고종수는 지난해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던 대전의 6강 진출을 견인한 주인공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했다. 지난 2월 끝냈어야할 연봉협상을 두 달 이상 끌어온 것은 그 만큼 선수와 구단 사이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는 뜻이다.

그는 라이벌 수원과의 개막전부터 보이콧할 생각이었다. 다만 “팀 주장으로서 제 역할을 다한 뒤 개인적인 문제를 마무리 지으라”는 김 호 감독 만류로 생각을 바꿔 경기를 소화했다. 하지만 협상은 지지부진 했고 고종수는 ‘훈련·경기 불참’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여기엔 ‘의리’하나로 팀에 남은 고종수에 대해 구단의 배려가 부족했다는 불만도 섞여있다.

AI스포츠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다른 팀으로부터 꾸준히 영입제의가 왔었다. 좋은 조건에도 김 호 감독을 비롯한 대전과의 의리를 생각해 팀에 남았다. 구단은 이런 점을 전혀 고려해 주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해냈다. 대전이 고종수를 마치 계약을 마친 소속 선수 대하듯 했고 나머지 협상에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또 “가장 큰 문제는 돈보다 이런 구단의 태도다. 이미 지난해 고종수의 연봉과 관련된 ‘비보도 원칙’을 구단이 깨면서 서로 믿음에 금이 간 상태”라고 말했다. 더욱이 구단이 고종수의 연봉과 옵션 금액 등을 언론에 계속 흘리는 것도 협상을 어렵게 하는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대전이 고종수가 마치 돈에 눈이 멀어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언론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언론에 알려진 뒤 빠르게 마무리 된 것도 고종수 측이 급격하게 나빠지는 여론을 의식해서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대전팀 “재기의 기회 줬는데…”

대전 구단도 할 말이 없지 않다. 대전은 팀 내 최고연봉과 수당을 보장했는데 선수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해 팀 분위기를 흐리고 있다고 불만이 가득하다. 여기엔 재기할 기회를 준 팀에게 이럴 수 있느냐는 섭섭함도 짙게 깔려있다.

협상이 타결되기 전 대전시티즌 한 관계자는 “고종수에게 1억7천 고정연봉에 주장수당 등 다양한 추가옵션을 제시했다. 어려운 시민구단 살림에 할 만큼 했음에도 이런 상황이 오게 돼 유감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고종수의 프로근성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그는 “프로선수라면 일단 경기에는 출전하는 것이 팬에 대한 도리다.

기본도 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찾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팀 사령탑이자 고종수의 오랜 스승인 김 호 감독은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했다. 고종수가 인천과의 지난 경기에 나서지 않은 것도 김 감독의 암묵적인 허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종수는 시즌 개막 뒤 4경기 연속 풀타임 출장했고 2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올려 팀에 기여했다. 때문에 프로팀 관계자들 사이에선 김 감독이 고종수에게 구단과 일을 마무리 지을 시간을 준 게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갈등은 봉합됐지만 고종수의 시련은 끝이 아니다. 그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팬들의 차가운 시선이다. 올 시즌 개막 때만 해도 가난한 시민구단 대전에서 제2의 축구인생을 시작한 왕년의 스타에게 팬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최근 팀 훈련까지 거부한 채 연봉 협상에 매달리는 고종수의 모습은
적잖은 실망으로 다가왔다.


대전 팬 “주장 완장 반납하라”

일부 팬들은 ‘구단이 고종수와의 무리한 계약 연장에 매달리지 말고 적당한 다른 팀을 물색해 주는 것이 서로에게 낫다’는 의견을 공공연히 내비쳐 고종수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대전서포터 ‘퍼플크루’ 소속 신지영 씨는 “고종수 선수가 우리 팀 주장완장을 찬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며 격한 감정을 토했다.

신씨는 “시민구단 주장은 ‘프로의 권리’를 운운하며 자기 밥그릇이나 챙길 만큼 여유 있는 자리가 아니다. 팀원들을 위해 끊임없이 희생하고 모범을 보여야 하는 위치다. 지금 고종수 선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대현 씨는 “분명 고종수 선수가 지난 시즌 좋은 활약을 보인 것은 맞다. 하지만 올해 시작부터 팀웍을 깨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제 겨우 1년 남짓 팀에 몸담은 선수가 팀 내 최고 대우를 원한다는 것부터 팬들을 실망시키기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는 “차라리 더 좋은 팀으로 고 선수를 보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팬들 심정이다. 고 선수가 없으면 당장은 관중이 줄어들겠지만 더 힘든 시절에도 ‘축구특별시’ 명성을 지켜온 대전이다”고 전했다.

구단과 원만한 합의를 한다 해도 고종수가 ‘대전의 스타’로 남을 가능성은 적어졌다. 팬심(心)을 등진 집안다툼에 프로축구 흥행도 역풍을 맞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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