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판 스포츠 스타 총동원령?
총선판 스포츠 스타 총동원령?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04-10 09:57
  • 승인 2008.04.10 09:57
  • 호수 728
  • 5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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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후보 유세장 황선홍·안정환·허재 등 현대계열 스포츠스타 몰려

한나라당 후보로 18대 총선에 도전중인 정몽준 후보가 예상치 못한 역풍을 맞았다. 지난달 30일 서울 동작구에서 벌어진 선거지원 유세 때문이다. 이 자리에는 황선홍 부산아이파크 감독과 안정환, 김정남 울산현대 감독, 김주성 대한축구협회 국제부장, 이회택 협회 부회장 등 유명 축구인들이 참석했다. 축구계인사뿐 아니라 허재 전주 KCC 감독도 자리를 함께했다. 현대가(家) 스포츠 스타들이 총출동한 셈이다.

문제는 황선홍 감독과 안정환이 하루 전 부산에서 홈경기를 마친 뒤 곧장 서울로 올라왔고 김정남 감독 역시 광주상무와 전주 홈경기를 치른 직후였다는 점이다. 특히 허재 감독은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선수단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시즌에 모든 정신을 집중해도 모자란 현역 감독과 선수들이 정몽준 후보를 위해 ‘자발적으로’ 서울에 모인 것이다.

통합민주당 정동영 후보와 피 튀기는 유세전을 벌이고 있는 정몽준 후보는 이날 500여 유권자들 앞에 이들을 소개했다. 스포츠 인사들은 정 후보를 지지하는 연설은 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소개하는 정 후보에 맞춰 손을 흔들며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는 정도였다.

이들 소속구단이 현대 계열사라는 사실만 본다면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 후보의 유세를 돕는 것은 한편으로 당연한 듯 하다. 하지만 정 후보는 대한축구협회 회장임과 동시에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이다. 그야말로 정 후보는 한국 스포츠계, 특히 축구계의 ‘절대 실력자’다. 때문에 팬들은 ‘순수하고 자발적인 지원’이라는 참석자들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대표적 축구 커뮤니티 ‘사커월드’에는 축구팬들의 비난성 글이 줄을 잇고 있다. 대부분 정 후보가 협회장 지위를 이용, 감독과 선수들을 동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핵심이다.

아이디 ‘NoviceK9Fan’를 쓰는 축구팬은 “안정환과 황 감독의 처지를 봐라. 축구판에 모든 삶을 다 바칠 사람들이다. 축구판 현 수장이자 권력자인 정회장이 ‘간곡하고 사심 없는’ 요청을 했다면 두 사람이 거절할 배짱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정 후보가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처음부터 이런 요청이나 문의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다른 팬 (아이디 ‘사커리즘’)도 비슷한 생각을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정 후보가 축구선수에게 뭔가 양해를 구했을 때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건 마치 대통령이 말단 공무원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또 한 축구팬은 드러내놓고 정 후보에 대한 반감을 표했다. 그는 “집이 동작구라 정몽준, 정동영 후보를 거의 매일 본다. 얼마 전 좋아하는 팀 유니폼을 입고 정몽준 후보와 눈이 마주쳤다. 정 후보가 ‘축구팬 이시군요’하며 악수를 청했지만 무시했다”고 말했다. 축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양새가 보기 싫었다는 것이다.

한 해설자 출신 축구 관계자도 이 같은 행태에 씁쓸함을 표했다.

그는 “스포츠인이라 해서 정치적 성향을 표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만 협회 임원들까지 유세장에 나서 자리를 지키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대부분의 스포츠인은 정치를 잘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이다. 어떤 식의 요청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왕년의 스타들과 현역 선수들까지 간판으로 내세우는 것은 오히려 유권자인 팬들에게 반감을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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