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박태환 날개가 없다

마린보이의 마법은 풀렸나?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장담하며 거침없이 날던 ‘수영 아이돌’ 박태환(19·단국대)의 기록이 심상치 않다. 지난달 24일 막을 내린 <제3회 한라배 전국수영대회>에 참가한 박태환은 한수 위 기량을 자랑하며 200m 우승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세계최고’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형편없는 기록에 수영관계자들은 우려 섞인 한숨을 쉬었다.
올 초 원더걸스, 천상지희 등 인기그룹 여가수들과 차례로 열애설에 휘말리며 ‘훈련을 게을리 한다’는 구설수에 휘말린 박태환. 더구나 뒷걸음질 친 경기기록에 마린보이를 둘러싼 새로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박태환 위기론’을 불러온 4가지 원인을 들여다본다.
훈련부족 심각…기본 다질 시간 없다
현장을 지켜본 모 수영코치는 “훈련 부족이다. 기록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형 200m 결선을 치른 박태환의 기록은 1분48초10. 본인 최고기록이자 아시아기록인 1분46초73에 무려 1초37이나 뒤진다. 마지막 50m를 앞두고 급격하게 떨어진 지구력이 문제였다. 400m와 1500m 등 장거리가 주력인 박태환에겐 치명타다.
박태환의 오랜 스승이자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노민상 감독도 이 부분을 지적했다.
노 감독은 “2006 도하아시안게임 자유형 1500m 마지막 50m 구간기록이 27초대였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200m 마지막 구간 기록이 27.65초다. 막판 뒷심이 부족하다는 증거”라고 꼬집었다.
박태환의 전매특허였던 ‘막판 스퍼트’도 흐지부지됐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자유형 400m에서 박태환은 마지막 50m를 남기고 앞서가던 3명을 순식간에 따돌리며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 폭발력은 1년 만에 자취를 감췄다. 뚝 떨어진 지구력만큼 기록도 곤두박질 친 것이다.
이유 1. 쓸데없는 ‘몸짱’ 욕심
2006 도하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며 박태환은 대표선수들 사이에서도 ‘독종’이라 소문날 만큼 혹독한 지구력 훈련을 소화했다. 그 결과 1500m에서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400m 우승을 거머쥔 2007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박태환의 근성은 빛을 발했다.
일반적으로 수영 선수들은 기초 지구력을 키우기 위해 물 속에서 일정한 기록을 유지하며 하루 10000~16000m를 소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태환은 지난해 8월 일본 지바 프레올림픽을 치른 뒤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못했다. 올 초 호주 전지훈련에서 토니 쇼 호주 전 국가대표 감독의 개인 지도를 받아 페이스를 끌어올렸지만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근력 운동을 하다 ‘몸짱’되는 재미에 빠진 것이 실수였다. 올 초 박태환의 훈련 과정을 지켜본 일부 기자들은 ‘몸 불리는 맛에 수영에 필요하지 않은 근육까지 키웠다’고 지적했다.
쓸데없는 근육을 키워 기록을 끌어올리는데 중요한 지구력과 유연성, 기초체력이 모두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유 2. 수시로 바뀌는 전담코치
1년 3개월 만에 무려 세 명의 국내 감독이 박태환을 거쳐 갔다.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최근까지 더하면 4번이나 전담코치가 바뀐 셈이다.
박태환은 지난 1월 자신의 전담팀을 이끌던 박석기 감독과 결별한 뒤 유운겸 감독을 맞이했다. 하지만 한 달 뒤 태릉선수촌에 입소, 노민상 경
영 대표팀감독과 재회했다. 개인 스폰서 문제로 노 감독과 헤어진 뒤 1년 4개월만이다. 여전히 유운겸 감독은 ‘박태환 전담팀’ 수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대표팀 소속 박태환을 사실상 관리하는 것은 총 감독인 노 감독일 수밖에 없다.
다른 성향의 지도자들과 호흡을 맞추고 익숙해지는 과정은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감독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생긴 갈등과 잡음이 선수의 집중력까지 흐트러트릴 만큼 컸다는데 있다.
2006 도하아시안게임 영광을 함께 나눈 노민상 감독과 결별한건 스폰서 때문이었다. 박태환이 수영용품업체 ‘스피도’와 개인 스폰서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당시 대표팀 스폰서는 또 다른 업체인 ‘아레나’가 담당하고 있었다.
스피도에 의해 꾸려진 ‘박태환 전담팀’ 사령탑 박석기 감독과 헤어진 이유는 좀 더 노골적이다. 박 감독은 스피도와 연봉·대우 등에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11개월 만에 짐을 쌌다.
박태환과 인기 여가수의 열애설을 처음 제기한 것도 박 감독이었다. 또 박태환 부모가 감독의 훈련 방식에 불만을 표시했던 것도 사태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알려졌다.
이유 3. 새 수영복 적응 언제쯤?
세계수영계가 경악할 만한 일이 지난 2개월 사이 벌어지고 있다. 무려 11개의 세계신기록이 쏟아져 나온 것. 기록을 세운 선수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스피도가 지난 2월 새롭게 발표한 수영복을 입었다는 점이다.
한국 스피도의 손석배 마케팅 팀장은 “스피도의 새 제품 ‘레이저 레이서(Lzr Racer)’는 NASA(미우주항공연구소)와 함께 개발한 원단을 썼다.
봉제선이 전혀 없어 물에 대한 저항력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수영복 한 벌이 기록 단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다.
하지만 이번 한라배 대회에서 박태환은 새 수영복을 입지 않았다. 박태환에게 제공된 전신 수영복은 아직도 수정중이다. 새 수영복 자태를 뽐내며 박태환이 기자간담회를 가진 것은 벌써 2개월 전이다.
반면 박태환과 올림픽 메달을 놓고 경쟁을 펼칠 호주의 그랜트 헤켓은 레이저 레이서에 완벽히 적응했다. 헤켓은 이번 호주 선수권대회 자유형 400m에 출전 3북43초15의 기록을 세웠다. 박태환이 세운 2007년 기록에서 1.15초나 앞당긴 것이다.
이유 4. 치고 나가는 라이벌들
박태환이 뒷걸음치는 사이 경쟁자들은 빠르게 앞서나가고 있다. 마이클 팰프스(23·미국)가 단거리 최강자로 건재 하는 가운데 200m에서 박태환이 그 격차를 좁히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올림픽 메달을 위해 상대적으로 중·장거리에 집중하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복병이 많다.
박태환의 주 종목인 자유형 400m에는 관록의 노장 그랜트 해켓(28·호주)이 있다. 세계기록 보유자인 해켓은 최근 자신의 최고기록까지 컨디션을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신예 장린(21)의 성장도 무섭다. 장린은 지난달 4일 베이징 올림픽 수영경기장에서 열린 중국오픈에 참
가, 400m에서 3분45초04로 우승했다. 박태환 기록에 0.74초차로 바짝 쫓아온 것이다.
1500m에서 경쟁도 치열하다. 지난해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마테우츠 사우리모비츠(폴란드)의 14분 45초94 기록이 깨지지 않은 가운데 러시아의 유리 프릴루코프와 영국 대표 데이비드 데이비스의 상승세도 가파르다.
이들의 기록은 각각 14분50초40과 14분 54초28로 박태환이 가진 14분55초03을 이미 따돌렸다.
CF촬영과 갖가지 행사의 주인공으로 스타의 기분을 맘껏 느꼈던 박태환. 어수선한 행보를 털고 태릉 막내로 돌아간 이상 그의 목표는 단 하나다.
최근 불거진 위기론을 딛고 박태환이 ‘수영계의 아이돌’에서 진정한 메달리스트로 거듭날지 지켜볼 일이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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