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태극전사’ 꿈꾸는 스트라이커 라돈치치
인터뷰‘태극전사’ 꿈꾸는 스트라이커 라돈치치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03-27 13:15
  • 승인 2008.03.27 13:15
  • 호수 726
  • 2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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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오리에서 백조로 날아오른 ‘인천 사나이’

황선홍, 조재진, 안정환 등 별들의 귀환으로 달아오른 2008K리그에 외국인선수들 활약도 눈부시다. 그중 축구팬들의 눈을 사로잡은 건 돌아온 ‘인천 사나이’ 라돈치치(25·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부활이다. 2005년 시민구단 인천유나이티드의 준우승을 이끌고 2006년 K리그 올스타전 최우수선수상(MVP)까지 거머쥔 그는 타고난 스타다. 지난 9일 제주와의 원정경기에서 개막축포를 터트리며 경기MVP를 차지한 라돈치치. 이어진 16일 홈경기에서도 경남을 상대로 41초 만에 ‘벼락 헤딩골’을 넣어 영웅으로 떠오른 그는 남다른 꿈을 꾸고 있다. 바로 한국 국가대표팀 부름을 받아 태극마크를 다는 것.

신의손(전 안양LG), 이성남(전 수원삼성) 계보를 잇는 ‘명품 용병’의 귀화여부에 축구팬 관심이 쏠리고 있다.

[팀 훈련 뒤 선·후배 할 것 없이 무거운 골대를 함께 옮기는 작업. 22살 라돈치치는 허리가 아프다며 꾀를 부린다. 그 모습에 발끈한 팀 주장은 “같이 옮겨 이 xx야!”라며 모진 소리를 하지만 눈 하나 깜짝 않는다]


“기자들이 날 미워하나 봐요”

2006년 12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에 담긴 한 장면이다. 영화가 공개된 뒤 라돈치치의 이미지는 ‘철없는 어린 용병’으로 굳었다. 최근 놀라운 활약을 펼치는 그에게 언론은 ‘미운오리의 대변신’ ‘그라운드 문제아의 반란’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영화 속 장면 저도 알죠. 카메라 앞에서 일부러 과장한 겁니다. 한 번도 경기장에서 문제 를 일으킨 적 없는데 왜 기자들이 날 그렇게 보는지 모르겠어요. ‘라돈치치는 문제아’란 비약은 그만하셨음 해요.”

선배에게 건방지다는 편견이 라돈치치를 팀의 골칫덩이로 낙인찍은 것. 오랫동안 속앓이를 해온 듯 그는 속내를 털어놨다.

“축구는 팀이 하는 운동입니다. 그만큼 의사소통이 중요해요. 나이 많은 선배라고해서 후배가 무조건 입을 다무는 건 좋지 않아요.”

선·후배규율을 엄격하게 따지는 한국축구문화를 꼬집는 일갈이다. 하지만 요즘은 선배들 말에 공손히 답하는 법도 배웠다며 웃는다.

다른 외국인선수들이 1~2년 만에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팀을 옮기는 것과 달리 그는 쭉 인천 팀을 고집해왔다. 2006년 FC서울이 거액의 몸값을 걸고 물밑협상을 벌였지만 그를 데려가지 못했다. 인천의 프렌차이즈 스타로서 의리를 지킨 것이다.

“4년 동안 몸담으며 ‘인천사람’이 된것 같아요. 슬럼프에 시달릴 때 끈기 있게 기다려준 팀도 인천이고. 제가 가진 모든 것을 경기에 쏟아 붓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인천 사나이’라 자부하는 그는 한국국가대표에 대한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192cm의 큰 키, 동유럽 특유의 힘과 결정력은 한국공격수가 갖지 못한 장점이다.

“인천에 오래 있으면서 한국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만약 한국 대표팀에서 뛸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망설임 없이 귀화하고 싶습니다. 본국(몬테네그로)에 계신 부모님께도 넌지시 이야기를 꺼낸 적 있어요. 제 의견을 존중해 주시는지라 제 선택을 믿는다고 하시더군
요.”

하지만 2003년 유고시절 19세 청소년 대표로 뛴 그의 한국국가대표 발탁은 쉽지 않다. 17세 이상 국가대표팀에 뽑힌 선수는 다른 나라 대표로 뛰기 어려운 국제규정 때문이다.

2005년 리그 준우승을 합작한 인천 장외룡 감독과 라돈치치의 찰떡호흡은 검증된 사실이다. 장 감독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에 가까운 라돈치치를 1년 만에 ‘보석’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장 감독님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서로의 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또 감독과 선수로서 서로를 강하게 믿고 있어요. 최대한 단순한 플레이를 원하는 감독님 성향에 따르면 확실히 게임이 쉽게 풀리더군요.”

올 시즌 6강 플레이오프진출을 목표로 하는 인천에서 라돈치치 비중은 상당하다. 지난해 가장 많은 골을 넣은 데얀이 서울로 팀을 옮겨 대신할 공격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돈치치의 자신감은 대단하다. 오히려 데얀과 자신을 비교하는 질문에 불쾌함을 드러낼 정도로 자존심이 강하다.

“물론 데얀이 좋은 선수란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와 데얀은 다른 사람입니다. 두 사람을 단순비교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각자의 팀에서 골로 승부하는 게 진정한 선수고 라이벌 아닌가요?”


“쇼맨십 있을 뿐 개그맨 아니에요”

지난해 대전 용병 데닐손의 독특한 세레모니가 화제가 됐다.

‘마빡이’에 봉산탈춤까지 섭렵한 화려한 골세레모니는 팬들을 즐겁게 하는 또 하나의 흥행요소가 됐다. 하지만 톡톡 튀는 뒤풀이 원조는 바로 라돈치치다.

2006년 올스타전에서 내리 5골을 뽑아낸 그는 박주영과 탱고 세레모니를 펼쳐 MVP로 손색없는 쇼맨십을 선보였다. 이전에도 복싱모션을 취하거나 히치 하이킹하는 여성을 나타낸 골세레모니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정작 라돈치치는 “난 개그맨이 아니다”며 손을 내젓는다.

“독특한 세레모니를 기다리는 분들이 많더군요. 골을 넣고 기쁨을 나타내는 과정에서 쇼맨십을 발휘하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세레모니를 위해 골을 넣는 건 아닙니다. 전 축구선수지 개그맨이 아니니까요.”

냉정한 대답이다. 하지만 팬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은 곧 경기장에서 증명됐다.

41초 만에 결승골을 뽑아낸 뒤 관중석으로 달려간 그는 손으로 앙증맞은 하트를 그려 팬들에게 선물한 것.

K리그 5년차. ‘인천의 전설’을 꿈꾸는 라돈치치와 토종공격수들의 한판승부가 프로축구의 새로운 흥행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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