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호’ 황태자 떴다! 골 넣는 수비수 곽태휘
‘허정무호’ 황태자 떴다! 골 넣는 수비수 곽태휘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02-20 13:06
  • 승인 2008.02.20 13:06
  • 호수 721
  • 5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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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분. 지루한 시간이었다. 꽉 막혔던 축구팬들 가슴이 뻥 뚫린 날. 4골의 골 폭풍이 몰아친 서울 상암 벌 맨 앞엔 낯선 이름 석 자가 화려하게 빛났다.

지난 6일 2010남아공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1차전, 전반 43분 헤딩선제골로 대표팀의 ‘549분 무득점’ 악몽을 깬 주인공 곽태휘(27·전남드래곤즈). 국가대표로 이름을 올린 뒤 단 2경기 만에 골 맛을 본 그는 더구나 전문수비수다.

중앙대 재학 중이던 2004년 잠시 아테네올림픽 대표선수로 몸담았지만 부상으로 일찌감치 짐을 싸야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스타군단 FC서울에 입단했지만 청소년대표, 국가대표 출신이 즐비한 동료들 사이에서 주전자리를 꿰차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지난 여름 곽태휘는 전남으로 쫓겨났다. 서울이 국가대표 수비수로 이름을 날리던 김진규를 데려오기 위해 곽태휘에 현금 3억원을 얹어 전남과 협상을 마무리 지은 것. 일방적인 통보를 끝으로 굴욕적인 트레이드를 맛봤지만 그는 애써 담담했다.

“살다보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을 수 있다. 앞으로는 더 좋은 일만 있을거다”며 마음을 다잡은 것. 곁엔 두 살 연상의 아내가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다. 또 전남사령탑이었던 허정무 감독은 “김진규를 보내고 곽태휘를 데려온 게 결코 팀에 손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장담했다.

전남유니폼을 갈아입은 지 한 달 만에 골을 터트린 그는 일찌감치 허정무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다. 몸싸움과 투지가 좋은 신예 곽태휘를 대표팀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긴 허 감독이 국가대표 급으로 키울 생각을 굳힌 것이다.

경북 왜관에서 나고 자란 곽태휘에게 축구는 늦게 찾아온 ‘보물’이었다. 17살이 되던 해 무작정 대구공고 축구부를 찾아온 그는 무조건 감독에게 매달려 축구를 시켜달라고 졸랐던 것.

남들 같으면 최소한 경력을 5~6년 씩 쌓고도 남았을 나이에 찾아온 ‘초보자’를 감독이 반겼을 리 없었다.

택시기사로 일하는 아버지는 아들이 축구선수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 기대마저 버리고 온 이상 곽태휘도 물러설 수 없었다.

무조건 테스트를 받겠다고 우겼고 결국 대구공고 축구부에 이름을 올렸다. 남은 건 실력으로 살아남는 수밖에 없었다.

동료들이 모두 돌아간 밤늦게까지 혼자 기본기를 익히자 감독도 마음이 움직였다. 1학년 말 연습게임에 출전한 뒤 곽태휘는 전문 수비수로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다.

185cm 훤칠한 키에 빼어난 외모의 곽태휘는 대학시절부터 소녀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말이 없고 무뚝뚝한 ‘경상
도 남자’인 탓에 또래동료들이 잘 하는 일명 ‘팬 관리’는 잘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결혼소식이 알려지자 남몰래 눈물을 훔친(!) 소녀들이 상당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대표팀 허 감독은 ‘제2의 곽태휘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4대 0 대승을 거둔 투르크메니스탄 전에서 설기현과 박지성 등 검증된 해외파가 맹활약을 펼쳤지만 이들만 믿고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까닭이다.

특히 압박수비와 개인돌파 등 몇 가지 약점이 드러난 상황에서 동아시아대회를 맞은 허정무호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

지난 17일 동아시아대회를 시작한 축구대표팀에서 과연 새 스타를 찾을 수 있을지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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