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노욕에 한국 탁구 죽는다” 천영석 탁구협회장 ‘진퇴양난’
“회장님 노욕에 한국 탁구 죽는다” 천영석 탁구협회장 ‘진퇴양난’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02-14 16:14
  • 승인 2008.02.14 16:14
  • 호수 720
  • 5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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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조금 부풀리고 기금이자 유용’ 대한체육회도 압박
지난 1월 30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회관 앞에서 유남규 전 남자 대표팀 감독, 현정화 KRA 감독, 김택수 대우증권 총감독 등 한국 탁구를 빛냈던 지도자들과 초.중.고교 지도자, 생활탁구 동호인들이 천영석 대한탁구협회장의 용퇴를 촉구하는 촛불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독단적인 협회운영으로 퇴진압박을 받고 있는 천영석 대한탁구협회장의 앞날이 안개속이다.

유남규·김택수·현정화 등 스타들과 탁구인 100여명이 천 회장의 용퇴를 바라는 촛불시위를 벌인 것도 모자라 대한체육회까지 탁구협회의 방만한 운영을 문제 삼아 ‘옐로카드’를 빼들었다.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은 지난달 31일 “탁구협회운영에 문제가 많아 기관경고를 내렸다”고 밝혔다.

대한체육회 특별감사 결과에 따르면 탁구협회는 △찬조금 산정 △수익금 사용 △용품후원계약 등 9개 사항에서 잘못이 드러났다.

먼저 탁구협회는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결산보고서에 천 회장이 협회에 찬조금을 더 많이 낸 것처럼 꾸몄다. 한국마사회 등 협찬기관에서 받은 돈을 천 회장이 낸 것으로 보고한 정황이 상당부분 발견된 것이다.

또 탁구협회는 매년 2억원씩 받아 모은 60억원의 탁구기금이자를 총회승인 없이 사용한 것에 대해서도 주의조치를 받았다.

탁구협회는 구체적 사용처를 밝히지 않고 ‘베이징 올림픽 지원’ 등과 같은 막연한 명목으로 돈을 써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체육회 특별감사는 집행부에 반기를 든 협회 시·도 대의원들에 의해 시작됐다.(본지 712호 보도)

보통 체육회의 특별감사는 회계부정 등 명백한 잘못이 있을 때만 한다. 즉 3년 단위로 정기감사를 받지만 탁구협회를 비판하는 탄원서가 줄을 잇자 대한체육회가 칼을 빼든 것이다.

대한체육회의 지원사격을 받은 탁구협회 대의원들은 곧장 총회에서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탁구협회는 지난 31일 정기 대의원총회를 열었지만 3시간이 넘는 난상토론만 벌이다 한 건의 안도 처리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유광건(대구시) 의원 등 ‘반(反) 천 회장 인사’들은 총회에서 회장 불신임안을 낼 예정이었다. 지난해 말 임시총회소집을 거부당했던 대의원들은 정기총회에서 천 회장을 몰아낼 각오였지만 벼랑 끝에 몰린 천 회장은 ‘히든카드’를 꺼내들었다.

회장을 해임하려면 전국 16개 시·도 대의원과 4개 연맹(초·중등·대학·실업) 등 전체 대의원 20명의 2/3인 13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유 의원을 비롯, 15명이 반대파에 속해 천 회장은 이번 총회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천 회장은 이를 막기 위해 직권으로 ‘중앙대의원’을 세웠다.

지난달 28일 이재화 실업연맹 부회장 등 5명을 중앙대의원으로 위촉, 대한체육회에 서류를 보낸 것이다. 이들은 철저히 천 회장 쪽 인사들이다.

20명의 대의원은 25명으로, 가결 정족수인 2/3 이상은 17명 이상으로 늘었다. 아슬아슬하게 해임안 가결을 막은 것이다.

하지만 기존 대의원들은 이들 5명이 ‘무자격자’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탁구협회가 대의원 위촉을 결정해 보낸 서류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게 아니다. 또 협회는 5명 중앙대의원의 명단을 발표하지 않았다. 대한체육회 유권해석에 따라 이들의 신분은 하루아침에 ‘일반인’이 될 수도 있다.

한편 유남규·현정화·김택수 등 왕년의 탁구스타들은 지난 30일 ‘천 회장 퇴진’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이들과 함께 초·중·고교 지도자, 생활탁구동호인 등 100여 탁구인들은 서울 올림픽공원 앞에 모여 1시간 동안 촛불집회를 열었다.

천 회장의 ‘월권’에 가까운 협회운영과 선수설발·기용 등의 불합리한 처사를 바로잡겠다며 나선 것.

많은 지도자들이 자리를 지켰지만 선수들은 훈련에 지장을 줄 수 있어 참가시키지 않았다. 시위참석자들은 ‘회장님 노욕에 한국탁구 죽는다’, ‘제발 명예로운 퇴진을 부탁 한다’는 등 과격한 문구의 피켓을 들었지만 소란은 없었다.

현정화 감독(KRA)은 “우리는 파벌싸움을 하는 게 아니다. ‘누구’의 말처럼 사주를 받고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탁구가 잘 되는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며 눈물을 흘렸다.

안팎의 압박에도 “중도 퇴진한 선례를 남길 수 없다”며 버티고 있는 천 회장이 과연 ‘중대결정’을 내릴까. 베이징올림픽을 6개월 남긴 한국탁구계는 요동치고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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