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볼 올림픽 예선 재경기 ‘산 넘어 산’
핸드볼 올림픽 예선 재경기 ‘산 넘어 산’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01-31 09:05
  • 승인 2008.01.31 09:05
  • 호수 718
  • 5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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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핸드볼연맹(AHF) “한국·일본 꼴도 보기 싫어!”
쿠웨이트왕자를 주축으로 한 아시아핸드볼연맹(AHF)의 적반하장이 도를 넘고 있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서 눈뜨고 볼 수 없는 편파판정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빼앗긴 한국이 아시아연맹에서 제명당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징계이유도 황당하다. 아시아연맹의 상급기관인 국제핸드볼연맹(IHF)이 결정한 올림픽 예선 재경기에 참가했다는 이른바 ‘괴씸죄’다. 아시아핸드볼연맹의 전횡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재경기를 결정한 국제핸드볼연맹을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 ‘재경기 무효’를 노리는 무리수까지 두고 있다. ‘오일달러’를 발라 올림픽 티켓을 거머쥔 검은 야심에 한국핸드볼의 자존심이 구겨졌다.


‘어떻게 쥔 올림픽 티켓인데…’

지난해 12월 국제핸드볼연맹은 프랑스 파리에서 이사회를 열고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을 다시 치르기로 결정했다. 중동심판의 노골적인 편파판정으로 얼룩진 대회권위를 다시 세우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시아핸드볼연맹은 상급기관의 재경기결정을 거부하고 소속 국가들의 대회참가를 금지했다.

그럼에도 재경기는 일본 도쿄에서 1월 29~30일 치러졌다. 한국과 일본, 단 두 팀의 맞대결이었다. 편파판정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던 중동 팀들이 대회자체를 보이콧했기 때문이다.

왜 아시아핸드볼연맹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재경기를 방해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손에 쥔 올림픽출전권을 도로 뱉어내기 싫어서다. 지난해 열린 대회
에서 중동심판의 비호를 받은 남자부의 쿠웨이트와 여자부의 카자흐스탄이 베이징올림픽 출전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국제핸드볼연맹의 재경기 결정으
로 이들의 출전권은 종잇조각이나 다름없게 됐다.

상황이 절박해지자 아시아연맹은 재경기결정을 이끌어낸 한국과 일본을 향한 탄압을 시작했다. 지난 22일 일본 <교도통신>은 ‘일본핸드볼협회가 하루 전 아시아연맹으로부터 대회를 주최하거나 참가하면 연맹에서 제명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22일 <산케이스포츠> <스포츠호치> <스포츠닛폰> 등 일본 주요 스포츠전문지들도 일본협회 관계자 말을 인용해 “아시아연맹이 이번 재경기에 참가하는 한국과 일본을 제명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대한핸드볼협회엔 이런 내용의 공식적 문서가 접수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은 와타나베 요시히로 회장이 아시아연맹 부회장을 맡고 있어 선전포고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시아연맹은 지난 27일 긴급이사회를 열어 재경기에 참가한 한국과 일본에 대한 제명조치를 밀고나간 바 있다.
말 안 들으면 상급기관도 고소


재경기 참가국의 숨통을 조이는 것도 모자라 아시아연맹은 상급기관인 국제핸드볼연맹에도 정면 도전했다. 일본 <스포츠닛폰>은 지난 23일 ‘아시아연맹이 경기를 무효화 시키려는 구체적 작전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재경기를 지시한 국제핸드볼연맹을 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하겠다는 것.

소송 이유는 “재경기를 해야할 이유가 명확치 않다”는 점에서다. 편파판정사실을 인정 않겠다는 태도다.

문제는 아시아연맹이 막대한 오일달러로 A급 변호사를 고용, 전면전으로 나오면 재판결과가 어찌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데 있다. 최악의 경우 재경기 승
자의 베이징올림픽 출전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이 160개 국제연맹회원국에 보내 재경기결정을 끌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증거DVD도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협박에 흔들리지 않을 것”

아시아연맹이 한국과 일본에 중징계를 내릴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27일 아시아연맹이 소집한 긴급이사회의 주요 의제는 연맹의 재경기출전과 개최 금지를 어긴 한국과 일본에 대한 징계수위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한핸드볼협회는 전혀 긴장하지 않고 있다. 바닥까지 이미지를 구긴 아시아연맹의 보복은 불 보듯 뻔했고 상위기관인 국제핸드볼연맹에 더 큰 힘을 기대하고 있다. 정규오 대한핸드볼협회 국제팀장은 “한국과 일본이 함께 얻어낸 재경기결정이다. 아시아연맹 제명까지 계산에 넣어뒀다. 국제연맹이 결정한 사항이니만큼 아시아연맹이 끼어들긴 힘들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또 협회는 스포츠 페어플레이정신을 버린 아시아연맹과 이번 기회에 ‘각자의 길’을 가는 것도 한 가지 대비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아시아연맹을 탈퇴한 뒤 오세아니아대륙연맹에 들어가거나 아시아 예선전을 중동지역과 동아시아지역으로 나눠 펼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회장국 쿠웨이트가 주도하는 아시아연맹을 견제하기 위해 결성된 동아시아핸드볼연맹(EAHF)엔 한국, 일본, 중국, 대만, 홍콩, 마카오 등이 가입돼 있다.


대표팀 “우리는 이기러 왔다”

1월 29일 여자부경기를 시작으로 일본과 맞대결을 펼치는 남녀대표팀은 ‘패배는 없다’는 각오로 일본원정을 준비했다.

아시아연맹이 온갖 수단을 써서 방해하고 있지만 눈앞에 던져진 대회우승에만 집중해 구슬땀을 흘려왔다. 물론 쉽잖은 여정이다. 일찌감치 선수들을 소집, 서울 태릉에서 담금질해온 남자대표팀은 이번이 올림픽으로 가는 ‘막차’다. 유럽의 벽이 워낙 높아 아시아대회에서 출전권을 따내지 못하면 다시 4년을 기다려야 한다. 선수들은 “어렵게 잡은 기회다. 패배는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여자대표팀의 사정은 더 딱하다. 22일까지 해외파 6명이 합류하지 못한 여자대표팀은 연습상대조차 없어 기본기와 체력훈련 등 반쪽짜리 훈련밖에 하지 못한 탓이다. 23일 오스트리아에서 뛰는 오성옥(36), 명복희(29), 김차연(27)은 귀국했지만 시즌이 한창인 덴마크의 허순영(33), 최임정(27) 등은 대회 하루 전인 28일 일본에서 겨우 합류했다.

영화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 엄태웅 역의 실제모델인 임영철 감독은 “조직력 훈련은 엄두도 못 내고 있어 일이 손에 안 잡힌다”며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한편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도쿄 요요기국립체육관에 태극물결을 이루기 위한 협회의 노력도 눈물겹다.

롯데관광과 제휴, 남녀 2경기 관전이 포함된 응원투어상품을 마련해 팔았다. 또 최대한 많은 한국응원단을 들여보내기 위해 입장권을 3천~4천장 사들
이고 대사관을 통해 교민과 유학생으로 응원단을 조직했다.

국내에서도 협회와 문화관광부가 공조, 원정 응원단을 모집해 현지에서의 결과가 주목된다.


#김정은·문소리 ‘핸드볼 원정대’ 투톱 나선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 핸드볼 은메달 신화를 담은 영화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의 주연 배우 김정은과 문소리가 또 한 번 한국 핸드볼을 위한 도우미로 나섰다. 문소리와 김정은은 29~30일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예선 핸드볼 재경기에 출격하는 대한민국 핸드볼 팀 응원을 위해 일본으로 날아갔다.

일본 홈 관중의 압도적인 응원 속에 경기를 펼칠 우리 선수들을 위해 대한핸드볼협회는 문화관광부와 함께 범국민적 응원메시지를 보냈다.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우생순>은 그 선두에 서게 된 것이다. 현지 동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지난 27~28일 3번에 걸쳐 일본 상영을 마친 <우생순>은 교민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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