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태권도연맹 ‘더러운 돈 봉투’ 진실 게임
세계태권도연맹 ‘더러운 돈 봉투’ 진실 게임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01-24 15:57
  • 승인 2008.01.24 15:57
  • 호수 717
  • 5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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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태권도계는 김운용WTF 전 총재vs조정원WTF 총재 전쟁터”

국내 태권도가 돈과 파벌싸움으로 얼룩진 새해를 맞았다. 독일 스포츠 격주간지 <스포르트 인테른(Sport Interm)>은 <연합뉴스>에 보낸 뉴스레터를 통해 ‘세계태권도연맹(WTF) 조정원 총재가 공금을 잘못 쓰고 있다. (부하 직원인) 양진석 연맹 사무총장이 지난해 9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2008베이징올림픽 세계예선 때 낫 인드라파나 WTF부총재에게 1만 달러가 든 돈 봉투를 줬지만 부총재는 “더러운 돈(dirty money)은 받지 않겠다”며 돌려줬다’고 전했다. 양 총장은 이와 관련, 지난 17일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윤리위원회 청문회에 소환됐다.

그는 청문회에 소환되기 전 기자회견을 열고 “부총재가 공항에서 가방을 잃어버렸다. 경비에 보태라는 뜻으로 줬을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문제의 여지가 전혀 없는 단순한 소동이라는 것. 양 총장은 또 “조 총재가 IOC위원 선출을 노리는 가운데 잡음을 내는 의도가 의심스럽다. 세계연맹 안에 음해세력이 있는 것 같다”며 음모론에 불을 지폈다. 태권도계는 사건을 놓고 조정원 총재와 김운용 전 총재 쪽 인사들이 치열하게 맞서고 있다. 한편에선 모든 상황이 조정원 현 총재를 견제하기 위한 김운용 전 총재의 ‘철저한 각본’이라는 설이 돌고있다.

양 총장은 기자회견에서 돈이 오간 상황이 뇌물이나 로비와는 거리가 멀다고 호소했다. “도와주려한 순수한 뜻을 부총재란 사람이 이렇게 되받아쳐 어이가 없다”며 법적 대응을 통해서라도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 더욱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제기한 또 다른 의혹이다.


타이 출신 부총재가 노리는 것

양 총장은 “조정원 WTF 총재가 태권도 올림픽 종목 잔류를 위해 IOC위원 신청을 한 상태다. 다음 달 추천위원회의 1차 심사가 있다. 하필 이런 때 문제가 터진 것은 예사롭지 않다”고 말했다. 단순한 뇌물스캔들을 넘어 연맹수장인 조 총재를 상처 내려는 ‘모종의 라인’이 있다는
주장이다.

양 총장은 인터뷰를 통해 “인드라파나 부총재는 연맹업무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 연맹 심판교육의 실효성문제 등을 바깥에까지 퍼트리는가 하면, 한국에 있는 연맹사무실의 해외이전을 주장해왔다”고 밝혔다. 1990년부터 IOC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드라파나 부총재는 2005년 선출직 부총재 3명 중 한 명으로 뽑혀 WTF에서 일해 왔다. 타이 스포츠계 거물로 자크 로게 IOC의장과 돈독한 친분을 자랑하는 실력자기도 하다.

일각에선 그가 조 총재와의 주도권 싸움에서 기선을 잡아 태권도계를 장악할 속셈이란 분석도 내놓고 있다.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보장받은 태권도는 IOC로부터 중계권료로 1년에 15억원씩의 목돈을 지원받는 알짜종목이다.


노조 ‘썩어빠진 연맹 엎을 것’

조 총재의 최측근 인사인 양 총장의 뇌물스캔들이 불거진 것과 맞물려 ‘WTF노조’가 성립돼 활동을 시작했다. 김동민 경기부 계장을 지부장으로 민주노총 산하 ‘세계태권도 연맹지부’를 세운 WTF노조는 보도자료를 내고 “연맹의 무책임한 경영, 무원칙 인사, 경영진의 비리척결을
통해 연맹위상을 바로잡기 위해 노조를 설립했다”고 선언했다. 직원의 권익보호를 최우선으로 삼는 다른 노조와는 설립목표부터 다르다.

노조에 가입한 직원은 김동민 지부장을 비롯해 이상헌 마케팅부장, 유해민 부장 등 3명이다. 김 계장과 함께 노조설립을 주도한 이상헌 부장은 태권도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조정원 총재가 취임한 뒤 WTF가 조 총재를 중심으로 한 경희대 출신 인맥들에 의해 장악됐다. 조 총재 개인을 위한 사조직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렇듯 새로 만들어진 노조는 조 총재와 연맹지도부를 노골적으로 공격하고 있어 다툼의 핵이 될 가능성이 짙다.


부총재·노조 모두 ‘金의 남자들’

흥미로운 것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의 등장인물이 모두 김운용 전 WTF 총재와 인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양 총장의 뇌물스캔들을 문제 삼은 인드라파나 부총재는 김운용 전 총재와 절친한 친구 사이로 알려졌다. 특히 연맹 안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연맹간부가 공개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유래가 없다. 또 석 달이나 지난 일을 굳이 지금 들춰내는 것도 석연치 않다.

여기에 노조를 구성하고 있는 세 명의 직원들이 모두 김운용 계파로 구분되는 사람들이다. 특히 이상헌 마케팅부장은 김운용 총재 시절 경기부와 심판부를 담당하던 실세였지만 지금은 한직이나 다름없는 마케팅부장으로 밀려났다.

더불어 처음 양 총장의 ‘돈 봉투사건’을 수면위로 띄운 <스포르트 인테른> 보도도 우연이 아니라고 태권도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김 전 총재가 연맹에 있을 때 ‘김운용 총재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2위’란 보도를 여러 번 내보내는 등 매체자체가 김 전 총재에게 우호적이라는 것.

한 관계자는 “<스포르트 인테른>은 WTF부총재 중 한사람인 박 모씨가 운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박씨 역시 김 전 총재의 사람”이라며 보도자체에 김운용 전 총재가 개입됐을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전했다.


‘김운용 귀환’ 전초전?

김운용 전 총재는 2004년 공금유용 등 비리혐의로 WTF총재와 국기원장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국기원에서 특강을 하고 언론인터뷰에 응하는 등 체육계에서 아직까지 그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한편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각 단체장들의 자리이동이 본격 시작되면 김운용 전 총재를 간판으로 한 태권도계 ‘보수파’가 전면에 복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인드라파나 부총재가 직접 나선 ‘맨체스터 돈 봉투’사건은 조 총재 체제에 불만을 가진 세력들이 뭉친 연합작전의 시작이란 설이 설득력을 얻을 만하다.

조 총재 직계로 분류되는 WTF의 한 관계자는 “곧 또 다른 시비 거리를 만들어 조 총재를 흔들 게 분명하다”며 불안함을 드러냈다.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는 IOC위원직에 출사표를 던진 조 총재. 다음 달 열릴 IOC위원 추천 1차 심사와 4월 집행위 추천을 앞두고 지금의 위치를 지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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