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나쁜 오일달러’ 대한민국 핸드볼 투혼 죽였다

‘돈이면 다 된다’는 후진국식 발상에 한국핸드볼이 또 수모를 당했다. 지난 6일 일본 교도통신은 아시아핸드볼연맹(AHF)이 국제핸드볼연맹(IHF)의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 재경기 지시를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AHF는 ‘예선 재경기에 참가하는 회원국은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또 회원국에 재경기 개최와 출전 자체를 금지하는 조치를 내릴 것으로 전해졌다. 상급기관에 대한 명백한 도발이다.
지난해 AHF회장국 쿠웨이트와 카자흐스탄에게 올림픽 본선 티켓을 ‘눈 뜨고 도둑 맞은’ 한국 남녀 대표팀. 끈질긴 노력으로 결국 오는 25일부터 31일까지 일본에서의 재경기를 성사시켰지만 AHF 태도는 여전히 안하무인이다. 막대한 오일달러로 올림픽 티켓까지 사들이는 중동의 전횡과 그 음모를 파헤친다.
“일본에서 재경기 열리지만…”
가장 중요한 재경기 성사는 이뤘다. 대한핸드볼협회는 지난 10일 “국제핸드볼연맹이 스위스 바젤에서 집행이사회를 열고 올림픽 예선 재경기를 일본 도쿄에서 치르기로 했다”고 전했다.
기간은 오는 25일부터 31일까지 일주일이며 경기장은 도쿄 시내 중심에 있는 요요기 국립실내체육관이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는 지난 8일 최상급 기관인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공개서한을 보내 재경기 개최를 독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IOC가 지난 12월 ‘핸드볼을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빼버리겠다’는 초강수를 앞세워 IHF의 재경기 결정을 이끌어냈듯 이번에도 여론몰이에 성공한 셈이다.
다만 잃은 게 너무 많다. 다행히 IHF가 원래 약속했던 1월말 경기가 열림에 따라 윤경신(35), 조치효(38) 등 유럽에서 뛰고 있는 해외파 선수들이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다. 그러나 AHF의 ‘무조건 버티기’로 일정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대회준비시간은 보름뿐이다. 특히 여자대표팀은 당장 11일 현재 선수명단조차 나오지 않은 상태다.
여자대표팀 사령탑 임영철 감독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외국에 나가있는 선수들을 부르는 게 최우선이다. 협회에서 최대한 행정력을 발휘해 하루라도 빨리 선수들이 팀에 합류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못 이기면 망신살, 속 타는 한국
때문에 일각에선 재경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AHF가 한국의 경기력을 떨어뜨리려 ‘꼼수’를 부렸다는 음모론이 불거졌다. 한 핸드볼관계자는 “재경기 일정을 최대한 미뤄 한국의 전력을 약화시키려는 AHF의 속내가 보인다”며 음모설을 거들었다. 또 경기일정과 장소까지 나왔지만 편파판정으로 지난해 8월과 9월 기존 예선에서 올림픽 티켓을 손에 넣은 두 나라(남자부 쿠웨이트, 여자부 카자흐스탄)는 대회에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을 조종하는 AHF가 회원국 출전금지를 내리고 보복하겠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는 것도 문제다.
여기에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 역시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만약 질 경우 ‘실력도 없으면서 편파판정을 운운해 일을 크게 벌였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형균 핸드볼협회 상임부회장은 “재경기는 국제연맹이 심판배정부터 모든 사항을 총괄한다. 편파판정은 없을 것”이라고 밝혀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선수들의 심리적 부담감까지 완벽히 지울 수는 없는 상황이다. 결정적으로 경쟁국인 일본에서 열리는 대회라 보이지 않는 판정시비도 무시할 수 없다.
‘핸드볼 전횡’ 원흉은 쿠웨이트 왕자
핸드볼을 쥐락펴락하는 중동의 전횡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중동권 심판의 ‘장난’으로 한수아래 카타르에게 28 대 40으로 분패했던 ‘사건’은 큰 상처로 남았다.
베이징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지난해 9월 경기 때도 쿠웨이트와 맞선 한국은 20 대 28로 졌다. 역시 중동권인 요르단심판이 경기흐름을 좌지우지 했다.
AHF회장은 다름 아닌 아메드 알파하드 알사바 쿠웨이트 왕자. 그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의장직도 맡고 있다.
쿠웨이트는 국민소득이 1만8천 달러에 이르는 석유부국이다. 특히 알사바왕자는 막강한 오일머니를 손에 쥐고 25년째 아시아핸드볼의 수장으로 군림하고 있다. 특히 핸드볼에서의 영향력은 국제연맹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성역에 가깝다.
단적인 예로 국제핸드볼연맹 회장인 이집트출신 하산 무스타파는 알사바왕자의 오일달러를 지원 받아 북유럽 후보들을 따돌리고 회장자리를 거머쥐었다. AHF의 상급기관인 IHF가 알사바왕자의 전횡에도 숨죽인 이유다.
일각에선 이런 혼란이 ‘사필귀정’이란 의견도 있다. 지난 88서울올림픽 여자핸드볼에서 금메달을 딴 우리나라 역시 국제핸드볼계로부터 “홈 어드벤티지로 금메달을 땄다”는 의혹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런 비난은 4년 뒤 바르셀로나올림픽을 재패하며 수그러들었지만 국내 핸드볼계가 인정하는 부끄러운 과거인 것만은 틀림없다.
20년 간 수혜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넘나든 한국 핸드볼은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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