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마공원 야전사령관 발주전문위원

서울경마공원 장내아나운서의 낭랑한 목소리로 ‘마권발매’의 마감이 전해지면 곧 경주가 시작된다.
서울경마공원을 처음 찾은 경마팬이라면 한번쯤 고개를 갸우뚱 할 만 한 장면의 주인공이 있다. 경주 시작에 앞서 중계화면에 나타나는 한 사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멋들어진 중절모를 쓰고 등장하는 그는 화려한 음악연주와 함께 힘껏 파란색의 깃발을 흔든다. 동시에 발주기의 문이 일제히 열리면서 경주마들은 모래를 흩날리며 힘차게 달려가기 시작한다. 초보 경마팬들의 호기심을 사로잡은 이는 다름 아닌 발주전문위원이다.
그렇다면 발주위원들이 하는 일은 뭘까.
간단하게 말하면 발주전문위원들은 출주마들을 발주기에 정렬시키고 경주의 시작을 알리는 최일선의 야전사령관이라 할 수 있다.
발주전문위원들이 하는 일은 ‘육성조교 검사’, ‘새벽조교 관찰 및 지도’, ‘경주마 조교검사’ 등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경마 당일 발주업무’를 총괄하는 것.
“시작이 절반”
각 단계를 조금 더 자세히 보자.
발주전문위원들은 월 1∼2회 장수 육성목장으로 내려가 초보 조교들의 기초적인 자질을 검사한다. 그리고 새벽에는 경주마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파악한다. 이는 경주에 나서게 될 말들의 특징을 미리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경주마 조교검사’는 경주마가 경주에 투입될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는지를 시험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선 발주기 진입과 발주기 안에서의 자세, 문이 열려 출발할 때의 상태와 100m 가량 질주 여부를 집중적으로 본다.
가장 중요한 임무는 경마일에 담당한다. 발주업무 총괄은 경주가 이뤄지기 전 가장 첫 번째 단계라 “발주 없으면 경마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경주에서의 발주는 경주마의 발주기 진입, 발주기에서의 주립상태 등 모든 부분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발주기 문을 여는 것으로 이어진다. 발주기 문이 열리고 경주마가 출발하는 순간 경주는 시작된다. 그 동안의 업무과정에서 얻은 말들의 특성이 유용하게 사용되는 순간이다.
“24년간 늘 긴장”
24년간 발주업무를 해 온 이해영 위원은 “그저 깃발이나 흔드는 것으로 알지만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늘 긴장상태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상상황 발생 때 모든 판단을 혼자 해야 하는 만큼 고독한 일이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발주기 주변은 경주마와 함께 하기 때문에 언제나 위험이 도사린다. 지난 2월 유창완 위원은 발주업무 도중 큰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경주마가 발주기 안에서 갑자기 일어나 요동을 치는 바람에 오른팔에 골절상을 입은 것.
그때 유 위원이 오른팔을 다친 상황에서도 왼팔로 말을 잘 보조해 무사히 발주를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발주위원들은 경주마와 가까운 거리에서 업무를 하는 탓에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워낙 고도의 기술과 경험을 요하는 데다 주말에도 쉬기 힘들어 어려움이 적지 않다.
하지만 힘든 만큼 보람 또한 크다. 이 위원은 “모든 경주를 마친 뒤 신발의 모래를 털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번 주말에는 경마장의 야전사령관을 보기 위해 서울경마공원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정리=남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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