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중 낙마 뒤 재도전으로 대상경주 우승 기회 되면 한국인 여자친구 사귀고 싶어

‘코리안 드림’ 향한 무한 질주
축구, 농구, 야구 등 인기 스포츠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주역들이 있다. 바로 외국인 선수들이다. 프로스포츠의 경우 외국인 선수 영입에 구단의 사활을 걸 정도가 됐으니 그들의 역할이 얼마나 큰 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외국인 선수는 프로스포츠 뿐 아니라 아마스포츠에도 숨어있다. 비인기 종목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지만 아이스하키에도 외국인 선수들이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선수들은 스미스 형제(팀 스미스, 버드 스미스)다. 이들이 한국에서 시간이 날 때 마다 하는 여가생활은 다름 아닌 경마다. 그들이 주말이면 찾아가는 경마공원에도 외국인 기수들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엔 4명의 외국인 기수들이 활약하고 있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의 베이커(호주), 서울경마공원의 이쿠야스(일본), 노조무(일본), 대니(호주)가 그들이다. 이들은 각자의 나라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수준급 기수들이다. 하지만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경주로를 질주하고 있다.
외국인 기수 중에서도 유독 빛나는 별이 있다면 이쿠야스 쿠라카네(1975년생·32세) 기수다.
이쿠야스는 ‘이쿠’라는 이름으로 경마팬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이쿠는 서울경마공원 외국인 기수 1호로 지난 6월에 입국, 7월 1일부터 경마공원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우리나라에 입국한 후 성실함과 빠른 적응력으로 현재까지 박태종 기수와 1~2위를 다투는 출주횟수를 자랑하고 있다. 같은 기간 승수 또한 전체 기수 중 5위를 차지하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경마팬들에게는 깊이 각인돼지 못했다.
“낙마는 일상적인 일”
그런 그가 경마팬들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된 사건이 생겼다. 지난 11월 18일(일) 이쿠는 두 건이나 사고(?)를 쳤다. 첫 번째는 경주 중 대형사고를 당한 것이고 두 번째는 서울경마공원 외국인 최초 대상경주 우승이었다.
당일 9경주 중 4코너를 돌 때였다. 그가 기승한 ‘비뢰소나타’(미·3세·암·40조·고옥봉 조교사)가 앞서가던 오경환 기수의 ‘매직사랑’(호·4세·암·1조 박종곤 조교사)과 충돌했다. 결국 그는 말과 함께 경주로에 넘어지는 대형사고를 당했다.
이를 지켜봤던 고옥봉 조교사도 크게 걱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쿠’는 바로 일어났고 걸어서 앰블런스를 탔다. 치료를 받은 그는 곧바로 다음 경주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 주위를 놀라게했다.
그는 사고 직후 인터뷰에서 “말에서 떨어지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고 주위를 안심시켜며 “떨어지면서 어떤 방향으로 떨어질지 생각했고 낙법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저 말이 자신에게 넘어지지 않기를 기도했다는 것.
그는 또 왜 쉬지 않느냐는 질문에 “나를 믿어주는 조교사와 경마팬들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하며 “더구나 다음 경주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대상경주였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다시 말에 올라탔다. 다음 경주인 10경주는 농협중앙회장배 대상경주였다. 그가 올라탄 말은 ‘필승기원’(한, 5세, 암, 53조 김문갑 조교사)이었다.
평소 이쿠에게 각별한 애정을 과시하는 김문갑 조교사의 말이었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보답하고 싶었다. 그는 능숙한 경주로 4코너를 돌면서 선두를 굳혔고 마침내 그토록 염원하던 대상경주 우승을 차지했다.
서울경마고원의 외국인 1호 기수이면서 첫 번째 대상경주 우승자가 된 것이다. 이 사건은 한국 경마팬들에게 이쿠라는 존재를 확실이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도전 위해 한국행”
그럼 이쿠 기수는 한국에 왜 왔을까.
그는 일본의 고치 경마장에서 주로 활약했다. 성적도 지방경마장 중 10위권 안에 드는 톱 기수였다.
그런 그가 편한 생활을 박차고 한국에 온 이유는 도전의식 때문이었다.
“일본에 있으면 편하게 기수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에 안주하는 것이 싫었다. 나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는 곳에서 처음부터 시작해 실력으로 인정을 받고 싶었다.”
한국 생활에 대해서도 그는 만족해했다. 그는 “말이 안 통하는 것만 빼고는 모든 것에 만족한다. 한국 음식도 좋다”고 만족해하며 “사람들도 모두 잘해준다”고 말했다.
한국 생활이 좋기 때문에 한국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한식은 삼겹살과 갈비탕, 김치찌개, 삼계탕 등 대부분을 즐겼지만 유독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게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소주다.
한국 음식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그에게 한국은 도전의 나라이자 꿈의 나라다. 코리안 드림을 향한 그의 질주는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정리=남석진 기자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