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추태와 관중 난동으로 연이은 악재에 시달려온 축구계가 또다시 추문에 휩싸였다. 지난달 29일 민영 통신사 뉴시스는 ‘7월 아시안컵이 열린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한국 대표팀 선수들 4명이 숙소를 무단이탈해 룸살롱에서 술판을 벌였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대표팀 최고참인 모 선수를 비롯한 선수 4명이 총 두 번에 걸쳐 한국인 업주가 운영하는 유명 룸살롱에서 접대부를 대동하고 새벽까지 술자리를 가졌다는 것. 파문이 커지자 대한축구협회(KFA)는 이튿날 바로 사과 성명을 내고 수습에 나섰지만 술자리에 동석한 네 명의 선수 실명이 드러나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지난 2일 이동국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에 대해 상벌위원회가 열린 것과 함께 이번 파문의 핵심 의혹을 짚어보자.
지난10월 30일, 축구협회의 공식 사과가 있은 후인 오후 6시 30분. 사건의 당사자로 나선 이운재(수원·34)와 우성용(울산·34)이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죄의 뜻을 밝혔다. 팀 전지훈련과 해외진출로 자리를 함께하지 못한 김상식(성남·30)과 이동국(미들즈브러·28)은 서면으로 진술서와 사과문을 제출했다.
당시 팀의 주장이던 이운재는 연신 눈물을 훔치며 “어떤 변명도 필요 없다. 이번 사태를 일으킨데 대해 너무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떤 의도로 술자리를 가졌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운재와 우성용은 “바레인에 1:2로 역전패 당하며 예선 통과마저 어려워졌고 선수들끼리 단합하자는 짧은 소견으로 자리를 만들었던 것”이라 말했다.
덧붙여 “그러나 취지가 무엇이든 그런 행동을 저지른 자체가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해 반성의 뜻을 분명히 했다. 특히 이운재는 “주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 다른 선수들은 아무 잘못도 없다”며 “협회의 징계를 달게 받겠다”고 밝혔다.
우성용 역시 “국가대표로서 명예를 실추시켜 죄송하고 속상하다”고 말했다. 축구협회는 지난 2일 상벌위원회를 개최하고 해외에서 활동하는 이동국을 제외한 이운재, 우성용, 김상식에 대해 의 중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문제의 보도 이후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당사자와 협회는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여론에서 떠도는 진실게임의 논란은 여전하다. 대표적인 의혹은 크게 세 가지다.
‘2차’에선 무슨 일이?
첫째는 선수들끼리 단합의 의미(?)로 나선 술자리의 규모다. 이운재는 7월 13일 오후 10시경 숙소를 혼자 이탈해 지인과 함께 유흥업소에서 새벽 1시 30분까지 술을 마셨다. 이후 업소 접대부와 지인의 집으로 자리를 옮겨 새벽 5시까지 ‘2차’를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16일 밤에는 우성용, 이동국, 김상식 등이 합류해 역시 2차를 즐긴 것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10월 31일, 2차 진상조사를 마친 협회의 모 관계자는 “광란의 술 파티는 없었다. 보도 내용이 선정적으로 부풀려진 것”이라며 못을 박았고 이운재 역시 “룸살롱에 간 것은 사실이지만 술 이외의 요소는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부인과 자녀를 둔 네 선수가 연루된 ‘2차 술판’ 보도의 진위 여부는 상반된 주장만이 남아 향후 대표팀 자격 논란의 불씨가 될 전망이다.
“홍명보 코치도 몰랐다”
둘째는 함께 생활한 코칭스테프가 아무도 사실을 몰랐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협회는 보도가 나간 직후 홍명보 당시 대표팀 코치를 불러 그가 선수들의 무단이탈을 전혀 몰랐다는 진술을 받았다. 해외 원정을 나간 선수단의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하고 감독해야할 ‘로드매니저’인 홍명보 코치의 영향력이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이다.
더구나 모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문제의 네 선수가 아침식사에 한꺼번에 불참한 사실을 놓고 일부 눈치 빠른 후배들은 이들의 지난밤에 대해 대충 감을 잡았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팀 내부에서도 고참급 선수들의 일탈을 덮고 넘어가려 했다는 의혹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협회, 알면서도 쉬쉬?
마지막 셋째는 이미 지난 7월 관련 사건에 대한 제보를 받은 대한축구협회가 이를 무시했다는 정황이 발견된 것이다. 파문이 커진 후 네티즌들은 KFA 팬 발언대에 올라온 두 개의 게시물에 주목했다.
‘박운철’이라는 실명으로 올라온 고발성 글은 아시안컵 도중 협회 임원들이 골프를 쳤으며 선수들이 숙소에 여성 접대부를 불러 유흥을 즐겼다는 내용이다. 당시에는 아시안컵 졸전을 펼친 선수단에 대한 루머로 치부되었으나 석 달이 지난 지금 일부가 사실로 밝혀지며 대한축구협회측이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대표팀 자격 1년간 상실
파문이 일어난지 불과 5일여만에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2일 이들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서둘러 개최했다. 현행 협회 상벌규정에 따르면 ‘각급 국가대표단 또는 협회의 명예를 손상시킨 자’에 대해서는 출전 및 자격정지 1년 이상의 중징계를 내릴 수 있다. 2일 징계위는 문제의 네 선수에게 1년간 대표팀 자격을 박탈했다. 또한 이운재는 대표팀 주장이라는 위치와 주동자라는 점을 감안해 3년간 축구협회 주관 대회의 출전금지 징계와 80시간의 봉사활동을 명령받았다. 이운재 등 4명의 대표팀 선수들은 협회 주관의 FA컵 경기에서는 징계가 적용되지만 K리그 출전에 대해서는 징계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수영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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