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대전의 행운아로 부활
비운의 천재,대전의 행운아로 부활
  • 이수영 
  • 입력 2007-10-24 13:55
  • 승인 2007.10.24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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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수, 부활 이유 3

지난 14일. 기적의 드라마가 펼쳐진 대전월드컵 경기장은 함성의 도가니에 빠졌다. 대전은 강적 수원과의 정규리그 최종라운드를 1:0 승리로 이끌며 6강 진출에 극적으로 성공했다. 5위를 달리던 FC서울이 대구에 발목을 잡히며 7위로 주저앉았고 ‘가난한 시민구단’ 대전은 팀 창단 후 처음으로 가을잔치 초대장을 거머쥐었다.
이날 대전이 일군 기적의 중심에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감격을 못 이겨 그라운드로 내려온 팬들을 친형처럼 꼭 안아주며 고마움을 전하는 사람. 등번호 10번을 단 ‘돌아온 풍운아’ 고종수다. 비운의 천재에서 대전의 행운아로 돌아온 고종수. 그가 부활 할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본다.


2007년 대전시티즌의 앞길은 순탄치 않았다. 고질적인 재정 부담은 여전한데다 전임 최윤겸 감독이 코칭스텝과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사표를 냈다. 당시 대전의 성적은 13개 팀 중 10위. 6강 진출은커녕 내부 단속하기도 버거운 시간이었다.

마지막 기회로 대전을 선택한 고종수 역시 악재의 연속이었다. 20개월 동안 운동을 쉰 탓에 불어난 몸을 줄이느라 야채만 먹으며 하루 4번의 훈련을 소화했다. 무리한 감량으로 허벅지며 사타구니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몰려왔다. 고종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정말 괴로웠다. 좀 몸이 된다 싶으면 잔부상이 와 경기를 뛸 수 없었다”며 당시의 심정을 토로했다. 그렇게 시즌의 절반은 허무하게 흘렀다. 천재의 부활을 외치던 언론도, 팬들의 기대도 내려앉았다. 2005년 전남에서의 악몽이 되풀이 되는 듯 했다.


이유1
김호 감독의 든든한 믿음


고종수의 부활을 이끈 첫 번째 키워드는 영원한 스승 김호 감독과의 재회다. 지난 7월 대전의 새 사령탑으로 자원한 ‘그라운드의 노신사’ 김호(63) 감독. 그는 수원삼성의 초대 감독으로 94년 미국 월드컵을 이끌었고 과거 고종수의 천재성을 절정에 올려놓은 명장이다. 김호 감독은 시련 끝에 돌아온 제자를 위해 복장부터 훈련스케줄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직접 챙겼다. 경기를 조율할 플레이메이커가 절실한 대전에 고종수의 부활은 필수였고 그는 고종수를 팀이 필요한 재목으로 ‘만들어’쓰기로 마음먹었다. 8월 12일, 포항과의 홈경기에서 정식 복귀전을 치른 고종수는 이후 홈경기마다 교체출전하며 경기 감각을 익혔다. 한 달 후인 9월 15일 서울과의 원정경기에서 처음으로 전후반 90분을 모두 소화했다. 45분도 버티지 못할거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를 철저하게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마침내 지난달 22일 대구와의 홈경기에서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2년 3개월 만에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30일 자신과의 재계약을 포기했던 전남을 상대로는 골까지 기록하며 팀 창단 사상 5연승을 이끈 주인공 대열에 올라섰다.


이유2
대전 시티즌의 적극 지원



11명이 한팀이 되는 축구경기에서 고종수 역시 1/11을 차지하는 일원이다. 고종수의 부활을 자신하는 두 번째 키워드는 대전을 구성하는 동료들의 배려다. 특히 대전의 용병 3인방 중 한명인 브라질리아는 자신에게 온 슈팅 찬스를 고종수에게 연결해 그의 재기 골을 도운 장본인이다. 또한 팀의 주장이자 중앙 미드필더인 강정훈은 고종수의 선전으로 자신의 출장 기회를 놓쳤지만 시종 웃음으로 팀의 훈련 분위기를 이끌었다. 아직 체력적으로 완벽하지 못한 고종수의 뒷공간은 측면 윙플레이어인 김창수와 나광현 등 후배들이 받쳐주고 있다.

물론 이들이 고종수의 부활을 위해서 자기 몫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팀의 승리와 대전시티즌이라는 소속감. 그 안에 고종수의 부활의 열쇠가 들어있다.


이유3
헝그리 정신으로 중무장



한 지역 언론이 공개해 큰 파장을 일으켰던 고종수의 연봉은 2400만원. 대졸 신입 사원의 초봉 수준에 불과한 돈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이미 전남과의 재계약 실패 후 1년 7개월간 무적 선수로 방황하며 자살까지 떠올렸다는 그. 고종수는 그라운드로 다시 설 기회를 준 대전에 아예 연봉을 백지위임했다.

절치부심, 대신 자신이 경기장에 나서 팀을 승리로 이끌 경우 더 많은 수당을 달라고 부탁했다. 전후반을 모두 소화했을 때 출장수당 700만원, 골 등 공격포인트를 기록했을 때는 300만원, 팀이 승리하면 250만원을 보너스로 지급받는다. 철저히 자신의 가치를 경기장에서 보여 주겠다는 각오다.

최근 대전의 지방 언론이 그의 연봉을 거침없이 공개해 마지막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마저 다 잊었다.

고종수는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물론 연봉은 생각하지 않고 대전에 왔지만 보란 듯이 재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기사화되고 나니 서운했다. 물론 나를 위한 기사였다는 것은 잘 안다. 지금은 괜찮다”며 통 큰 속내를 드러냈다.

바닥까지 떨어졌던 자신의 축구 인생에 다시금 불을 당길 촉매는 높은 연봉도, 초특급 대우도 아닌 처절한 헝그리 정신이라는 것을 20대의 마지막에 깨달은 것이다.

창단 후 첫 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룬 후 김호 감독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고종수가 원한다면 발목을 잡을 생각은 없다.

더 좋은 팀으로 가서 활약할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제자의 부활을 기다리는 사람이 김호 감독이다. 물론 고종수는 “나를 받아준 팀과 감독님에 대한 의리를 지키겠다. 여건이 된다면 대전에서 은퇴 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종수가 부활하고 있다. 온갖 루머와 “고종수는 끝났다”며 비웃던 이들 앞에 가장 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그의 날갯짓 시
작됐다. 시즌을 마치고 김호 감독 아래서 동계훈련을 통해 더 완벽한 천재의 모습을 갖추고자 뛰는 고종수의 내일은 분명히 밝다.


이수영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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