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석으로 뛰어든 반지의 제왕 ‘안 풀리네~’
관중석으로 뛰어든 반지의 제왕 ‘안 풀리네~’
  • 이수혁 
  • 입력 2007-09-19 10:31
  • 승인 2007.09.19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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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남자 안정환

‘반지의 제왕’ 안정환(수원·31)의 축구인생이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1군 주전경쟁에서 밀려 2군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은데다 최근 벌어진 2군 경기에서는 관중들의 야유를 참지 못하고 관중석에 뛰어드는 돌출행동을 벌인 것이다. 가뜩이나 경기력이 회복되지 않아 노심초사하고 있는 그에게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까지 심리적 압박감을 주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정점으로 화려하게 꽃폈던 안정환의 축구 인생이 클럽 무대에서는 좀처럼 빛을 보지 못한 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90년대 후반 혜성과 같이 그라운드에 등장한 안정환은 그야말로 국내 프로축구의 구세주였다.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던 그는 프로무대에서 국내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화려한 개인기로 많은 팬을 끌어모았다. 당시 안정환은 이동국, 고종수와 함께 K리그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국내무대가 좁다고 느꼈던 그는 2000년 이탈리아 세리아A의 페루자에 전격 입단해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당시 세계 최고의 리그였던 세리아A 진출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2002년 월드컵이 ‘터닝포인트’

2002년 열렸던 한·일월드컵은 그의 축구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됐다.

대표팀에 발탁되기 전만해도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혹독한 길들이기를 당했다. 히딩크 감독은 “아무리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라도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다. 안정환의 기량이 뛰어날지는 모르나 팀에서 정기적으로 경기를 소화해야 베스트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으니 그때쯤 소집 하겠다”고 말했다. 때로는 “안정환은 소속팀에서 베스트11로 뛰지 못하므로 완전한 세리에A 선수가 아니다”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이러한 히딩크의 ‘채찍’이 그에게는 ‘약’이 됐다.

조별리그 미국과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기록하며 오노의 헐리웃 액션과 효순·미선 사건으로 인해 당시 한국인들 사이에 가득했던 반미감정을 다소나마 씻겨줬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는 극적인 연장전 골든골을 터뜨려 일약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정작 그가 뛰던 무대인 이탈리아에서는 ‘공공의 적’이 돼버렸다. 이탈리아인들의 불붙은 감정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페루자의 구단주였던 루치아노 가우치였다. 그는 “이탈리아 축구를 망친 녀석(?)에게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 안정환이 다시는 페루자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 “초라한 염소같은 몰골의 안정환”, “길 잃은 양을 돌봐줬더니 늑대가 됐다” 등등의 망언을 일삼으며 안정환을 내쫓다시피 했다. 어쩔 수 없이 페루자를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 안정환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노렸지만 끝까지 이적금을 요구하는 페루자에 발목이 잡혀 첫 번째 ‘무적선수’의 설움을 맛보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의 매니지먼트사 PM과 계약을 맺으면서 J리그 시미즈와 요코하마에서 재기의 칼날을 갈았다. 그리고 2006독일월드컵을 앞두고 다시 유럽 무대 재진출을 시도했다. 어렵게 그가 정착한 곳은 프랑스의 FC메츠. 그러나 미드필드진이 취약해 골잡이로서의 임무에 충실할 수 없었던 데다 월드컵을 앞두고 잦은 국가대표 차출로 감독과 의 불화설까지 터져나오면서 1년만에 다시 짐을 꾸렸다. 프리미어리그를 뒤로 하고 안정환이 새로 정착한 곳은 독일 분데스리가의 뒤스부르크. 2부리그 강등이 유력했지만 2006독일월드컵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분위기에 적응하기 위해 과감하게 ‘도전’을 선택했다.

그의 의도대로 월드컵 무대에서는 토고전 역전 결승골을 터뜨리며 활약했지만 2부 리그로 떨어진 뒤스부르크는 물론 유럽의 빅리그와 J리그 팀들과의 협상도 모두 무산되면서 또다시 ‘무적선수’가 되는 아픔을 겪었다. 소속팀이 없어지면서 국가대표에서도 제외되기까지 했다.


6개월간의 무적선수

결국 지난 1월 6개월여의 무적선수 생활을 청산하고 7년 만에 K리그에 복귀했다.

그는 개막을 앞두고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www.terious.co.kr)에 무려 1년 1개월여 만에 글을 올렸다. ‘오랜만에 글을 올리려니까 쑥스럽네요.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네요’라고 글을 시작했다. 그리고 “K-리그 개막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열심히 훈련을 통해 좋은 경기모습 보여 드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라며 근황을 소개한 뒤 “100%의 좋은 모습은 보여드릴 수는 없겠지만 한 게임 한 게임 지날수록 좋은 모습보여 드릴께요”라고 각오를 밝혔다.

그렇지만 그의 앞길은 각오처럼 순탄치 않았다. 지난 3월14일 대전과의 컵대회 1라운드 홈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화려한 복귀신고를 하고서도 이후 살벌한 팀 내 경쟁에서 하태균 등 새파란 후배들에게 밀려나며 벤치신세로 전락했고 결국 2군 경기에서 자신에 쏟아지는 야유를 참지 못하고 관중석으로 뛰어드는 실수까지 저지르게 됐다. 안정환을 그토록 격분하게 만든 여성팬의 야유는 ‘반지의 제왕’이라는 멋들어진 별명을 안겨준 그의 반지 골뒤풀이를 비아냥거리는 내용이었다. 결국 연맹도 안정환에게 프로축구 사상 최대의 벌금을 부과하며 그의 과오를 지적했다.

프로축구연맹은 12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남궁용 상벌위원장 등 5명의 위원이 참석해 안정환 선수의 징계에 대한 상벌위원회를 열었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1시간 남짓 회의가 진행됐고 안정환 역시 이 자리에 참석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직접 소명했다.

남궁용 위원장은 상벌위원회를 마친 후 “선수가 K리그 구성원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했다. 연맹 규정 3장 19조 1항에 나타나 있는 선수는 경기장 내외에서 명예훼손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을 바탕으로 안정환 선수의 징계를 결정했다”며 “벌금 1000만원과 함께 수원 구단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는 것으로 징계를 마무리한다. 출전 금지는 내리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남궁용 위원장은 “관중에 대한 욕설이나 물리적 행위는 없었다. FC서울의 강명환 차장을 불러 그 부분에 대해 질문했지만 안정환 선수가 팬들에게 욕설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안정환 선수의 행동이 비신사적 행위까지 미치지 않았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이번 사건으로 안정환은 축구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과연 그가 이번 사건을 지혜롭게 넘어서 축구인생의 다시 한 번 전환기를 맞이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안정환 행동 찬반양론 ‘후끈’

안정환의 반응을 놓고 찬반 양론이 분명히 엇갈리고 있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나. 원인제공자의 명백한 잘못이다’는 옹호론과 ‘참았어야 했다. 프로 선수로서의 선을 넘었다’는 비판론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네딘 지단(프랑스)이 독일월드컵 결승전서 욕설로 도발한 마르코 마테라치(이탈리아)의 가슴을 머리로 강타했을 당시 지단을 옹호했던 의견이 다수였던 것처럼 안정환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의견이 수적으로 우위를 보이고 있다.

수원 삼성과 FC 서울의 갈등 등까지 겹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FC 서울의 홈페이지, FC 서울 서포터 홈페이지 등이 접속 폭주로 정지됐다.

또 안정환에게 야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권모씨의 미니홈페이지도 축구팬들의 맹공격을 받아 일시 폐쇄됐다. 또 권모씨의 사진까지 사이버세상서 떠돌아다니고 있다.

징계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징계안을 놓고도 갑론을박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미 온라인상에서는 ‘안정환에 대한 추가 징계에 반대한다’는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K리그 출범 이후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기 때문에 안정환의 이번 행동은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수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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