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내 프로 농구계는 바람 잘 날이 없다. 비시즌임에도 끝없이 이슈를 만들어내며 팬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배구 인기에 밀려 자존심을 구겼던 프로농구다.
그러나 문제는 부정적인 관점이 더 많다는 데 있다. 얼마전 여자농구 우리은행의 박명수 전감독의 성추행 파문이 일더니 이번에는 남자농구 최고 인기스타 이상민(35)의 삼성 이적을 놓고 각종 설이 분분하다. KCC에서 삼성으로 옮기는 과정이 깔끔하지 못했다. 선수 본인은 물론, 농구인 및 팬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KCC와 삼성 구단의 행태는 물론, KBL이 규정한 보상 선수 제도도 도마에 올랐다. 이상민 이적을 둘러싸고 촉발된 논쟁.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신의를 저버린 KCC
"은퇴까지도 생각했지만 어쩔 수 있나요. 다시 시작해야지.“
어차피 원론적인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체념한 듯한 목소리. 늘 자신감에 넘치던 이상민의 표정에는 우울함이 가득했다. 믿었던 팀에서 버림받았다는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상민은 KCC에서만 10년간 뛰며 소속팀의 정규리그 3연패를 이끈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6년 연속 올스타 팬투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전국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 이상민이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희대의 ‘반전쇼’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사태는 크게 두 가지 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보호 선수 규정이다. KBL은 FA로 영입한 선수는 반드시 보호 선수로 분류하라고 규정짓고 있다. KCC는 올 여름 서장훈과 임재현을 영입해 원 멤버중 한명만을 보호 선수로 꼽을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추승균이 명단에 올랐고, 이상민은 제외됐다.
그러나 더 웃기는 것은 이상민이 지난 5월15일 이미 KCC와 ‘플레잉코치’로서 연봉 2억원에 재계약을 했다는 사실이다. 작년보다 연봉을 1억2000만원이나 삭감하면서까지 팀 잔류 의지를 불태운 이상민은 끝내 구단의 결정을 번복할 수 없었다.
KCC 관계자는 “추승균, 이상민 모두 잔류시키고 싶었다”며 “결국 부모중 더 좋은 사람을 꼽으라는 얘긴데 아주 곤혹스러웠다”고 토로했다. 또 “이상민은 KCC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선수였고, 재계약을 했으니 혹시나(삼성이 데려가지 않을 것이라) 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삼성측은 “한 팀의 상징을 데려온다는 결정이 쉽지는 않았다”면서 “우리도 프로다. 서장훈을 잃은 마당에 전력에 큰 도움이 안되는 선수를 지명하거나 보상금으로 받기는 어려웠다”고 밝혔다.
말 많은 보호 선수 규정
대체 보호 선수규정은 누구를 위한 제도란 말인가. FA제도는 왜 만들어졌는가.
명가 건설을 위해 오랜 시간, 최선을 다한 이상민을 내버린 KCC의 행태도 문제이고, 프랜차이즈 스타를 거리낌없이 영입한 삼성의 모습도 보기 좋지 않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KBL이 규정한 FA 제도에 내재된 오류와 모순이다.
KBL은 몸값 거품 현상과 어떤 특정팀의 선수 싹쓸이를 막겠다는 취지로 개인 최다연봉 상한선(6억8000만원)과 포지션별 랭킹 제한(동 포지션 랭킹 1~5위 2명 이상 보유 불가) 등 여러 제재를 가했다. 또한 FA 선수를 영입하는 구단은 해당 선수의 전소속팀에 전년 연봉300%를 지급하거나 보상 선수를 내주고, 연봉 100%를 지불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각 팀들의 자율적인 선수 선발과 FA를 통한 전력보강 차원이라는 취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에 KBL은 해괴망측한 보호 선수 규정까지 만들었다. FA로 영입한 선수는 반드시 보호 선수로 분류하라는 게 기본 방침. 하지만 3명에 한정돼 있어 선택의 폭이 좁다.
한편 이상민의 삼성 입단 공식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 5월31일 이후, 각종 스포츠 관련 인터넷 게시판에는 농구팬들의 비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당사자인 KCC와 삼성의 행태에 주로 집중되던 비판은 KBL이 마련한 FA 제도와 보호 선수 규정을 성토하는 내용으로 변하고 있다. 파장이 쉽게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KBL 관계자는 “선수에게는 미안하지만 각 구단 전체의 균형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규정”이라는 한심한 답변을 내놓았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대안 마련에 고심해야 할 KBL부터 이 모양이니, 제2, 제3의 이상민이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남장현 yoshike3@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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