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듯했다. 아니, 잊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코칭스태프간 주먹다짐으로 축구계에 큰 충격을 던져준 대전 시티즌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폭행을 가한 최윤겸 감독은 팀을 이끌고 있지만 이영익 수석코치는 조용히 벤치를 떠났다. 자리를 비운지 벌써 한 달이 넘었어도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대전 구단과 최 감독은 더 이상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 꺼리는 눈치다. “언론에 그만 언급됐으면 한다”는 무책임한 답변만 반복할 뿐이다. 또다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의혹들. 대전 시티즌은 언제쯤 안정을 되찾고,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까.
아물지 않은 상처
지난 3월 말, 축구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대전 시티즌의 최윤겸 감독이 술자리 도중 이영익 수석코치를 맥주잔(?)으로 때린 것. 작년 하반기부터 들려온 ‘이영익 코치, 감독 내정설’이 오해를 불러와 이같은 폭행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 폭행으로 오른쪽 눈썹 부위를 20여 바늘이나 꿰맬 정도로 큰 상처를 입은 이 코치는 치료를 위해 2주간 짧은 휴식을 가진 뒤 팀에 복귀했으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가족이 더 큰 문제였다. 남편이 맞는 모습을 지켜본 이 코치 부인은 큰 충격을 받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고, 우울증 판정을 받았다. 결국 이 코치는 부인의 병수발을 위해 복귀한지 2주도 안돼 다시 휴직을 신청했다.
지난 4월29일 성남 일화와 K리그 8라운드 경기부터 자리를 비운 이 코치는 5월27일 제주 유나이티드 홈경기까지, 8경기 째 벤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본래 이 코치는 25일까지 팀에 재합류하기로 돼 있었으나 부인의 상태가 심각해 복귀할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코치는 “다른 어떤 것보다 가족이 최우선이다. 여행을 다녀왔다.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며 “아직은 돌아갈 시기가 아니다”라고 당분간 복귀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지난 22일 오전, 이윤원 대전 시티즌 사장을 만나 면담을 가졌다는 이 코치는 “사장께서 대책없이 무조건 복귀하라고 해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밝혔다.
이 코치는 또 “지금 복귀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여러 문제로 복잡한 구단 사정은 이해하지만 개인사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마디 해명없는 구단
이영익 수석코치가 가장 서운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대전 구단과 최윤겸 감독이 자신이나 가족의 안부를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홍보비 유용사태’ 등 안팎의 여론이 좋지 않을 때만 관심을 기울이다 잠잠해지면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것.
이 코치는 “구단이 너무 실망스럽다. 토사구팽이란 느낌이 든다”고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지금껏 최 감독으로부터 가족 안부를 묻거나 ‘잘해보자’는 한마디조차 듣지 못했다는 이 코치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섭섭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최 감독은 “안부를 묻거나 먼저 전화한 적은 없다”면서 “다 끝난 일을 왜 다시 끄집어내는지 모르겠다”고 역정을 냈다.
한편 구단에서도 아무런 해명이 없다. 이 코치가 벤치를 떠난 뒤 구단 사무국에서는 어떠한 관련 정보도 흘리지 않았다. 사건 이후 이 코치가 처음 복귀했을 때 떠들썩한 행사를 벌이던 모습은 찾기 어렵다. 구단 관계자들은 이 코치와 관련된 얘기만 나오면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피하기 바빴다.
지난 4월 중순, 이윤원 사장은 이 코치의 복귀 당시 최 감독에게 ‘선수단에 전후사정을 충분히 설명할 것’ ‘환영회를 열어 화합 분위기를 조성할 것’ 등을 주문했지만 지켜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축구계는 당초 구단의 태도가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상벌위 출신 한 원로는 “최 감독이 이 코치를 폭행했던 시점에서 확실히 책임을 물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한 프로팀 감독도 “파벌론, 감독론 등 여러 의혹들이 제기됐는데 여론에 떼밀려 화해를 연출해 불신만 키웠다”고 어설픈 사후조치를 꼬집었다.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대전 구단의 불화설. 그럭저럭 살아나고 있는 성적과는 달리, 뒷맛은 영 개운치 않다.
대전구단 홍보비 유용 의혹 내우외환에 휩싸인 구단
코칭스태프간 불화로 뒤숭숭한 요즘, 대전은 홍보비 유용 사태까지 불거져 내부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올 초 프로연맹이 구단에 지급한 홍보비 6,500여만원을 프런트 고위 관계자 K씨가 개인 계좌로 관리해온 것이 밝혀지며 회계 및 사용 내역에 대한 의혹이 불거진 것.
지난 4월 중순 대전의 한 지역 일간지를 통해 이같은 사실이 처음 보도된 이후 대전 구단은 남은 잔액을 빼내 법인 통장으로 관리하고 있지만 의혹은 끝없이 제기된다.
구단 내부 고발자에 의해 이번 사건을 접수한 경찰은 대전으로 이첩해 올해뿐만 아니라 지난 2년간의 내역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중이다.
내우외환에 휩싸인 대전 시티즌. 이들에게 올 시즌은 정말 최악의 한해로 기억될 것 같다.
대전=남장현 yoshike3@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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