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인 메이저리그 맏형 박찬호는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의 강속구에 야구의 본고장 미국 타자들이 헛스윙을 연발하면 국민들은 덩달아 환호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박찬호가 위기를 맞았다. 지난 2000년 1차 FA당시 각 구단의 1, 2선발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텍사스와 5년 계약에 6,500만 달러라는 연봉대박을 터뜨린 박찬호. 그러나 2007년 2차 FA 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현재까지도 그를 찾아주는 팀이 없다.
지난 1월 20일 박찬호의 소속구단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FA 왼손투수 데이비드 웰스와 1년 계약에 합의했다. 샌디에이고는 에이스 제이크 피비에 이어 크리스 영, 그레그 매덕스, 클레이 헨슬리에 이어 선발진의 남은 한 자리마저 갖추어 박찬호의 선발자리는 사실상 사라졌다는 게 중론이다.
박찬호는 지난 시즌 종료 후 여러 차례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 남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실제 박찬호는 이달 초 서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현 소속팀 샌디에이고 등 세 개 팀과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는 FA로 이적 시장에 나온 배리 지토를 영입했고, 애리조나 역시 랜디 존슨을 영입해 선발진을 보강했다. 결국 박찬호가 FA로 풀리면서 가능성을 열어둔 세 팀 중, 남은 팀은 원 소속구단 샌디에이고 한 팀뿐이었다.
그러나 이마저 이 날의 합의로 힘들어지게 되었다. 2001년 첫 FA에서 5년 계약에 7,000만 달러의 대박을 터뜨린 6년 전과 판이하게 다른 박찬호의 입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인 메이저리그 맏형 박찬호, 그간 걸어온 길을 따라가 보았다.
국민 영웅서 스포츠 재벌로
박찬호는 1994년 1월 13일 6년 계약에 계약금 120만 달러 연봉 10만9,000달러를 받고 LA다저스에 입단했다. 그는 역대 17번째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했지만 2게임에 나와 4이닝 동안 안타 5개와 홈런 1개 등 방어율 11. 25를 기록, 마이너리그로 강등됐다.
1995년, 시즌의 대부분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낸 박찬호가 첫 풀타임메이저리거가 된 것은 1996년. 그는 선발과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48게임에 등판, 108이닝 동안 5승 5패, 방어율 3.64를 기록했다. 1997년은 유망주 박찬호에게는 특별한 한해였다. 박찬호는 그해 톰 캔디오티를 제치고 5선발로 처음 선발로테이션에 진입했다.
그해 32경기에 나온 박찬호는 8월 12일 첫 완투승을 포함, 14승(8패)을 올렸다. 팀 내 다승 공동 1위에 올랐고 방어율은 불과 3.38, 피안타율은 2.13으로 내셔널리그 2위였다. 비로소 유망주가 아닌 팀내 선발투수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것이었다.
1998년 박찬호는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IMF로 나라경제가 술렁이고 더불어 국민들이 시름에 잠긴 1998년, 당시 25살에 불과했던 박찬호가 뿌리는 일구, 일구에 국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해 박찬호는 34경기에 선발 등판해서 220이닝을 던져, 15승(9패) 방어율 3.71을 올리며 팀내 다승, 방어율, 최다이닝 1위를 차지했다. 또한 방콕아시안게임에 출전해서 금메달을 획득, 그에게 큰 짐이었던 병역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1999년에 들어서 박찬호는 4월 24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전에서 메이저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1이닝 동일타자 만루홈런 2개를 허용했고, 6월 6일 에너하임 전에서는 태권도 발차기로 아직도 가십거리가 되는 팀 벨처와의 몸싸움으로 7경기 출장정지를 받기도 했다.
그해 33게임에 나와 13승(11패)을 달성, 박찬호의 기록이 잠시 주춤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는 더 높이 뛰어오르기 위한 일보 후퇴에 불과했다. 2000년 박찬호는 18승(10패) 방어율 3.27을 기록한다. 특히 일본특급 노모 히데요가 세운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고승인 17승을 넘어섰다는데 의미가 있다. 또한 탈삼진 2위 (217개)를 비롯해서 피안타율 3위(.216), 퀄리티 스타트 26회(NL리그 2위)를 기록하는 등 투수 전 부문에서 상위권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다.
2001년 역시 박찬호는 최초로 올스타전에 진출하는 등 다양한 커리어를 쌓았다. 에이스 케빈 브라운의 부상이란 이유가 있었지만, 최초로 개막전에 선발 등판하는 등 그해 15승(11패) 방어율 3.50으로 무난한 활약을 펼쳤다. 특히 그해 첫 FA에서 아메리칸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에 입단, 5년간 7,000만 달러의 연봉 대박을 터뜨린다. 바야흐로 스포츠 재벌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시련의 계절
아메리칸리그 데뷔 첫해인 2002년부터 박찬호는 완연한 하강 곡선을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부진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2001년 다저스 시절 그는 팀의 실질적인 에이스였던 케빈 브라운의 부상으로 에이스 역할을 떠맡아야했다. 또한 2001시즌 종료 후 있을 FA계약에 대한 부담감으로 그는 허리가 좋지 않았으나 약점을 노출시킬 수 없었다.
그해 그는 시즌 중 서너 번 허리 통증을 호소하면서 마운드에서 주저앉기도 했다. 2002년 박찬호에게 에이스 역할을 기대했던 텍사스는 그에게 실망하게 된다. 유독 하체 이용이 많은 다이내믹한 폼으로 공을 뿌리는 그의 투구 폼이 2001년의 과도한 등판으로 부상을 불렀다. 결국 그는 9승 8패 방어율 5.75의 성적으로 부진한 한 해를 보내게 된다.
한 번 시작된 병이 쉽게 낫질 안듯 그의 부진은 계속되었다. 2003년은 그에게 있어 최악의 나날들이었다. 허리 부상 등으로 박찬호는 고작 7경기에 출전, 1승 3패 방어율 7점대의 형편없는 기록을 만들었고,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아야했다.
언론은 박찬호를 ‘최악의 먹튀’로 규정하고 그에게 7,000만 달러를 안겨 준 텍사스를 맹비난했다. 특히 일부 언론은 그가 부상을 숨긴 채 장기계약을 맺었다며 2년 연속 부진으로 팬들의 기대를 져버렸다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2004년 그는 감독과의 불화 및 허리부상으로 몇 차례 선발기회를 잃었지만 괜찮은 활약을 펼치던 중 갑작스레 이적을 하게 되었다.
2004년 7월 30일 그는 한때 30개의 홈런을 기록했지만, 타율 2할 5푼 대의 평범한 선수로 전락한 네빈과 1:1 맞트레이드되는 처지가 되었다. 구단으로서는 고액연봉자인 박찬호의 부담을 덜 수 있었고, 오랫동안 뛰어 적응이 된 서부리그에 이적한 것은 박찬호에게는 긍정적인 효과였다.
지난 3년간의 부진을 딛고 박찬호는 서서히 회복세를 찾았다. 박찬호는 샌디에이고 이적 직후 텍사스 언론의 ‘트레이드 회의론’을 불러일으키는 등 초반 활약에 성공했다. 그러나 여전히 높은 방어율이 문제였다. 박찬호는 2005년 12승(8패)을 올렸으나 방어율은 5.74였다. 박찬호는 더 이상 150km 후반의 강속구로 타자를 압도했던 다저스시절의 젊음이 없었다. 맞춰 잡기 위주의 투구로 전향한 박찬호는 제구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어김없이 큰 것 한 방을 맞아 팬들을 실망시키곤 했다.
위기를 기회로
2006년은 박찬호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한 해였다. 2006년 1월 WBC(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자신의 명성을 되찾는 활약을 보여 올스타에 선정됐다.
당시 샌디에이고에서 발행되는 유력 일간지 ‘샌디에이고 유니온 트리뷴’은 WBC에서 맹활약한 박찬호에 대한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이 신문은 “WBC에서 박찬호가 보여준 자신감 넘치는 투구는 텍사스 레인저스, 샌디에이고에 이르기까지 지난 해 거의 볼 수 없던 내용이었다. 박찬호는 WBC에서 10이닝 동안 무실점에 볼넷이 한 개도 없었다. 이 대회를 통해 박찬호는 마무리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그는 2006시즌 초반 WBC의 활약을 이어가는 듯 전성기의 몸상태를 회복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장출혈이란 의외의 복병을 만나 7승 (7패)에 그쳤다. 그러나 방어율은 2005시즌에 비해 1점 가량 낮아진 4.87을 기록, 가능성을 인정받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장출혈로 수술을 받고 나서 예상을 뒤엎는 빠른 복귀에 모두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특히 박찬호의 생애 첫 FA에서 대박을 안겨주었던 슈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는 보스턴 레드삭스가 박찬호를 마무리로 쓸 가능성을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라스는 전 샌디에이고 감독이면서 샌프란시스코의 새 사령탑을 맡은 브루스 보치 감독이 “박찬호면 언제든지 우리 팀에서 대환영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지난 2005년 3년 간 2,100만 달러에 계약한 아만도 베니테스(35)가 있다. 그러나 베니테스는 지난 해 무릎 부상으로 4승 2패 17세이브에 그쳐 믿음을 주지 못했다.
스프링캠프의 각 구단 투-포수 소집 일(2월15일)까지는 앞으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선수 계약 및 근황을 전하는 스포츠웹사이트 로토월드(http://www.rotoworld.com)는 1월 21일(한국시간)자로 데이빗 웰스의 샌디에이고 1년 계약(300만달러+인센티브 100만달러) 사실을 보도하면서 “박찬호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제목으로 향후 가능성에 대해 전망했다.
박찬호가 40인 로스터가 보장되지 않는 캠프 초청선수로 입단할 경우 캠프에서 기회 자체가 적게 주어지는 데다 경쟁자들과 비슷한 성적을 보여도 팀은 젊은 유망주에게 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위기의 남자 박찬호, 1998년 IMF때 위기의 대한민국에 희망을 심어준 그의 행보에 국민들의 관심들이 집중된다.
#박찬호가 홈페이지에 남긴 글 전문
“제 마음은 편안합니다”
요즘 늦어지는 저의 진로에 대해 여러분들의 마음이 왠지 불안하다거나 조바심내고 있는 것 같아요.
정작 본인은 편안한데 여러분은 편안하지 못한가 봅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다음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어느 팀이든 결정이 나겠지요.
혹시 제가 어떠한 팀으로 가게 되는지가 궁금한 게 아니고 얼마짜리 계약을 하는지가 궁금한건 아니지요? 그렇다면 마음을 정리하세요. 저의 올 시즌 목표는 평범한 선수에서 발전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듯이 어떠한 선수가 되는지를 기대해주세요.
요즘 운동도 잘 되고 있고 변화된 투구 폼에서 더욱 강해지는 구질을 위해 훈련하고 있습니다. 집에서나 운동장에서나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보람을 얻을 수 있는 건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이지요. 그 최선을 다하는 것이 분명 내가 잘 알고 있고 조절할 수 있는 것이고요. 내 것이 아닌 것이거나, 남을 의식하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면 발전도 없고 즐겁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잘 알 수 있어야 하며 마음먹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늘 보람과 기쁨으로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여야 할 것입니다.
자 다시 한번 새해의 다짐을 되새겨 보고 두 주먹을 꽉 쥐고 파이팅 합시다. 늘 편안하며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여러분들을 기대합니다. 편안히 운동 잘하고 있는 찬호로부터….
PS:기다리는 여러분들의 마음을 잘 압니다. 하지만 엉뚱한 방향으로 불안해하지 않길 바랍니다.
배수호 4477b@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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