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의 절반을 소화한 올 시즌 프로농구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팀이 있다. 울산 모비스는 시즌 초반 두 차례 3연패를 당해 하위권을 맴돌았다.
그러나 2라운드 중반 이후로는 안정적인 1위를 지키고 있다. 최근 7연승과 홈 12연승을 달리는 울산 모비스. 2년 연속 정규시즌 1위를 향해 달릴 수 있는 모비스만의 비결은 무엇일까.
올해도 역시 대형 신인은 나오지 않았다. LG의 이현민이나 삼성의 이원수, 전자랜드 전정규 등은 꾸준히 제 몫을 다하고 있으나 경기를 지배할 정도는 아니다. 이에 반해 노장들은 투혼을 발휘했다. 문경은(SK)과 우지원(모비스), 김병철(오리온스), 양희승(KT&G), 현주엽(LG) 등 노장들은 팀의 살림꾼 역활을 톡톡히 해내며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이 모든 요인들이 어우러져 올 시즌 전반기 프로농구에서는 유례없는 혼전이 펼쳐졌다.
시즌 초반 LG가 5연승을 달리며 2라운드 중반까지 단독선두를 고수했으나 이후부터 KTF, 모비스 등과 맞물려 한 경기의 승패로 순위가 확 바뀌는 양상을 보였다.
중반, 모비스 질주채비
이런 혼전 와중에서 중반부터 모비스가 서서히 힘을 내어 독주체제를 갖추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정규시즌 1위를 향해 달리는 울산모비스. 그들의 질주는 시즌 전부터 예상되었던 일이었다. 양동근을 비롯해 윌리엄스, 김동우, 우지원 등 1위를 차지했던 지난해의 멤버로 전력의 손실 없이 시즌을 시작한 모비스. 그러나 개막전에서 주득점원인 윌리엄스의 부상으로 삐걱대기 시작했다.
모비스는 평균 79.03득점으로 10개 팀 가운데 8위에 지나지 않는다. 84.49점으로 이 부문 1위에 올라 있는 LG와는 6점 가까이 차이가 난다. 득점만 보면 도저히 1위를 할 수 없는 팀이다. 하지만 모비스는 실점에서 73.7점으로 72.11점의 원주 동부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적게 먹고 적게 주는 ‘지키는 농구’가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실점과 함께 실책도 가장 적다. 모비스는 경기당 턴오버 11.48개로 가장 적다. 턴오버 1위 서울 SK(경기당 16.18개)와 비교하면 모비스의 실책이 얼마나 적은지 알 수 있다.
유재학 감독의 다양한 전술
윌리엄스의 부상공백과 아쉬운 1점차 패배 등으로 3연패에 빠진 모비스를 살린 것은 유재학 감독의 전술이었다. 선수시절 가드출신이었던 유재학 감독은 ‘여우과(科)’에 속한다. ‘여우’ 유 감독은 변화무쌍한 전술로 상대의 기를 빼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비스 농구’를 말할 때 조직력을 빼놓을 수 없다. 조직력도 유감독의 작품이다. 새 시즌 전만 하더라도 모비스는 만신창이였다. 특히 조직력은 모래알에 가까웠다. 유 감독은 2004∼2005 시즌을 앞두고 모비스 지휘봉을 잡자마자 체계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패배 의식이 팽배하던 팀에 근성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공격보다는 수비를 강조하며 선수들에게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을 요구했다. 이름보다는 성실성을 보고 주전을 뽑았다. 그렇게 수년간 다진 조직력이 이제 완벽에 가깝다.
이번 시즌 전 구단을 통틀어 연봉 3억원이 넘는 선수는 10명. 모비스엔 이번 시즌에도 3억원대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 특급 스타와 인연이 없는 유 감독은 ‘재활공장 공장장’을 자처해 좋은 선수들을 키워 낸다.
신인 가드 김학섭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김학섭은 한양대 시절 벤치 신세에 불만을 터뜨리며 자주 숙소를 벗어나 쫓겨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 감독의 지도를 받고 농구에 새롭게 눈을 떠 도하아시안게임 동안 양동근의 빈자리를 잘 메웠다.
재미교포 출신인 김효범은 지난 시즌 부상으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 주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시즌엔 유 감독의 조련으로 팀플레이에 충실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또 ‘비운의 기대주’ 정상헌도 유 감독 밑에서 재기의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유 감독은 “(양)동근이가 빠진 동안 이들이 잘해 줘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상대의 스타일에 따라 김동우, 우지원, 이병석, 김효범, 김학섭 등을 적절히 기용했다. 국내 선수 가운데 붙박이 주전은 양동근 밖에 없다. 또한 유 감독은 느슨한 플레이를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선수의 움직임이 조금만 느슨하다 싶으면 곧바로 벤치로 불러들인다.
우지원의 마당쇠 변신
올 시즌 우지원의 닉네임이 ‘황태자’에서 ‘마당쇠’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간 우지원 선수의 플레이를 보면 팀플레이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팀의 고비 때마다 어이없는 턴오버로 팀의 사기를 저해시켜 패배를 자초하는 일도 많았다.
또한 몸싸움을 싫어해서 키에 비해 리바운드 수가 현저히 낮았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팀이 정규리그 1위로 챔피언결정전에 올랐지만 우지원은 벤치만 지키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나 올 시즌 그는 달라졌다. 몸싸움을 싫어하는 ‘황태자’에서 최근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마당쇠’로 변신한 그는 득점은 예년과 별다르지 않지만 리바운드에서 지난해보다 두 배 가량 많은 평균 3.5개로 팀에 공헌도 높은 선수가 되었다.
또한 노장임에도 수비에 적극 가담하고 허슬플레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우지원은 최근 들어 무엇보다 경기에 임하는 자세에서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지원 역시 그에 대해 “올 시즌에는 식스맨 상을 노린다. 출전시간에 관계없이 성실하게 뛰겠다”며 그간의 스타의식을 버린 태도를 보였다.
소속팀 울산 모비스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우지원(34)은 생애 처음으로 월간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팀의 주축 양동근 선수가 도하아시안게임 참가로 빠진 12월 한 달 동안 우지원은 평균 9.0득점, 3.4리바운드 등 공수에서 고른 활약을 펼쳤다. 모비스의 12월 전적이 11승 1패로 급격한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한 것은 노장 우지원의 활약이 컸기 때문이다.
이런 우지원의 활약과 더불어 모비스의 선두경쟁에 힘을 실어주는 선수가 있다. 양동근은 지난해 정규시즌 MVP(최우수선수)가 우연히 아님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경기당 14.54점 6.54어시스트 3.62리바운드를 기록 중인 양동근은 가드로서의 경기운영과 해결사 능력을 겸비하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 선수 MVP 크리스 윌리엄스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팀 조직력이 ‘비결’
현재 국내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 중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꼽힌다. 여기에 올 시즌 가세한 205㎝의 크리스 버지스가 골밑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다. 작년시즌 푸에르토리코에서 뛰었던 버지스는 여러모로 다른 스타일의 한국농구에 적응을 못해 한때 퇴출설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유 감독이 “교체 없이 끝까지 간다”는 믿음을 준 이후 안정을 찾았다. 최근 오리온스 전에서 20점 14리바운드, 전자랜드 전에서 20점 14리바운드, 동부 전에서 29점 8리바운드 등 시즌 성적은 15.37점 9.56리바운드로 용병센터로서 합격점을 받고 있다.
이런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유재학 감독은 “조직력이 좋아서 그런 거죠. 뭐 특별한 게 있겠습니까”, ‘이번 시즌에도 팀이 잘 나가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간단한 대답을 했다. 그러면서 “우리 선수들이 지난 시즌 큰 경기 경험을 많이 쌓은 덕을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 시즌 프로농구에서는 특히 SK의 방성윤, KT&G의 단테존스 등의 에이스 1명을 중심으로 플레이를 하는 팀들이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무적의 기아를 이끌던 허재(현 KCC감독)의 곁에도 강동희와 김유택이 있었다. 결국은 5명의 끈끈한 조직력이 1명의 스타를 앞설 수 있다는 것을 올 시즌 울산 모비스는 몸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올 농구는 ‘수비농구’가 대세
모비스와 KTF, 끈끈한 조직력으로 안정된 수비 펼쳐
2006~2007년 프로농구. 이번 시즌에는 외국인 선수의 2·3쿼터 출전제한 규정 및 도하아시안게임 대표선수 차출 등으로 인해 프로농구 판도에 변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선수 차출과 외국인용병 2·3쿼터 제한 규정은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또한 도하아시안게임 농구대표팀 출전으로 양동근 선수를 내준 모비스와 삼성(서장훈 선수 착출)과 KTF(송영진 선수 착출)의 성적은 그대로 유지된 반면, 대표선수를 내주지 않았던 KCC와 KT&G는 하위권에 머물렀다.
또 외국인 선수 출전제한 규정으로 국내 토종 빅맨들의 활약을 기대했던 예상과는 달리 각 팀은 골밑을 여전히 외국인 선수에게 맡기고 있고, 투 가드나 스리 가드 시스템으로 속공을 위주로 한 빠른 공격에 중점을 뒀다.
올 시즌 프로농구에서의 또 하나 특징은 ‘수비농구’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선두 모비스와 2위 KTF는 끈끈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안정된 수비를 펼치고 있다. 전형적인 수비농구 스타일의 두 팀이다.
공격을 중시하던 김동광 전감독이 이끌던 KT&G는 12승15패로 8위에 머물러 있다. 김동광 감독은 시즌 초반 성적 부진으로 감독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최하위에 머물던 SK의 김태환 전감독도 시즌 초반 성적 부진으로 경질됐다.
공격 지향적인 팀은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안정된 조직력으로 수비진을 구축한 팀들은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배수호 4477b@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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