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자하면 흔히 깐깐해 보이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싶다. 넥타이를 매고 3시간여 동안 객관적 입장에서 경기에 대한 이해를 돕는 해설자. 그러나 허구연위원(이하 허위원)을 KSN(Korea Sport Network)사무실에서 만나본 첫 인상은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호탕함이 있었다.
“비시즌이라도 요즘 많이 바빠. 캄보디아에 야구장비도 오늘 보내야하고.”
얼마 전 이대교수가 선교사로 캄보디아에 갔다가 현지 학생들이 희망이 없어 보이는 것을 보고 야구를 통한 선교를 하기 시작했다는 기사를 보고 허위원은 야구장비며 도구일체를 지원했다고 한다.
허위원은 사실 7년 전부터 ‘허구연야구장학회’를 열어 매년 1,000여 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국내 야구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해외에도 눈을 돌리게 되었다는 허위원.
“일본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 등 몇몇 나라에 야구선교를 시작했지. 그런데 우린 아직 관심조차 부족해. 우리 역시 선교사 질레트가 야구를 전해줬잖아. 받은 것이 있으면 돌려 줄줄도 알아야지.”
단지 야구가 좋아서 야구를 했다는 허위원은 어느덧 야구로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허위원은 야구명문 경남중, 경남고를 거쳐 고려대에 진학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내내 팀의 4번 타자였다. 현재 국내야구뿐 아니라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도 2루수 출신 슬러거는 극히 드물다. 허위원은 고려대에 재학 중인 지난 71년 대학야구연맹전에서 홈런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2루수 중 장타자가 없었어. 그런데 내가 그랬어 (웃으며). 일본대학선발팀과 매년 벌어진 친선경기에서 홈런 한 두 방은 꼭 터뜨렸지. 힘만 좋았나, (웃으며) 대학 때 도루 성공률이 거의 100프로였어. 100m를 11초대에 뛰었으니 발도 빨랐지.” 한창 잘나가던 야구선수 허위원이 선수시절에 일찍 종지부를 찍은 것은 치명적인 부상 때문이었다. 76년 한일 실업야구 올스타전 때였다. 허 위원은 더블플레이를 처리하던 중, 1루에 있던 주자의 스파이크에 왼쪽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했다. 무려 네 차례의 대수술로 1년여 선수생활을 연장할 수 있었지만, 부상이전의 기량을 회복할 순 없었다. 그러나 허위원은 비록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내 인생 좌우명이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자거든. 그때 현실에선 야구를 더 이상 할 수 없어서 공부를 시작했지.”
허위원은 1년여의 투병생활 중 하루 10 시간이상 책을 붙잡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허위원은 고려대 법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
“지금 생각하면 호기였지만, 법학과에 입학하면서 나에겐 꿈이 있었어. 야구를 하면서 사법고시에 패스하는 거였어.”
허위원은 사실 대학 입학 때까지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경남중 재학시절까지 전교 석차에서 상위권을 달렸다고 한다. 야구를 포기하는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학문이라는 새로운 길에 충실한 허위원은 이후 31살의 나이로 동아방송 해설위원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 당시 최연소 해설위원이었다.
“일본식 야구용어를 바꾸다”
허위원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야구에 대한 공부에 열중, 당시 큰 논란이 되었던 사건을 만든다.
“내 인생에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지. 당시에는 야구에 일본식 용어들이 많았거든. 이걸, 내가 한국식으로 적용해서 썼지. 어차피 야구는 미국에서 들여온 것인데 우리말에는 요즘도 그렇지만 일본식 잔재들이 많았거든. 해설하는데 그런 것이 거슬렸지. 그래서 원문으로 된 ‘야구 백과사전’의 용어들을 한국어로 풀어서 해설 한 거지.”
이제는 정착된 그런 용어들은 당시에는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그때 말들이 참 많았지. 다들 나보다 훨씬 연배가 많은 분들이 해설했는데 젊은 내가 그러니 오죽하겠어. 신문사설에도 자주 내 해설용어의 문제가 거론되었지. 지금은 결국 내 용어들이 쓰이지만 말이야.”
야구해설과 대학 강의 등으로 한창 바쁜 시기를 보냈던 허 위원의 인생에 다시 전환점이 찾아온다. 허위원은 당시 MBC 이웅휘 사장에 의해 프로야구 MBC 청룡의 감독직을 부탁받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극구 부인했다.
“몇 번이나 찾아와서 부탁했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어. 당시 대학 강단에서 강의도 하고 여러 일들을 하느라 힘들었거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거절했는가 싶었지만 시즌이 끝나자 프로야구팀 청보에서도 감독직 제의가 들어왔다. 석 달 동안 거절했지만 계속되는 제의를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때는 집안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한 번 해보라고 했어. 그때까지만 해도 내 인생은 승승장구였거든. 비록 야구선수로 치명적 부상을 당해 야구를 그만두게 되었지만 이후 나름대로 해설자로 자리도 구축하고 있었지. 그런데 집에서 그러더군, 젊었을 때 실패도 한 번 해보라고.”
결국 감독제의를 받아들인 허위원. 당시 나이 35세, 현재까지 깨어지지 않은 국내최연소감독이었다.
“집안사람들 때문에 한번쯤 생각했지만 결정은 내가 한 거야. 이런 생각이 들었어. 프로야구 해설가인데 나는 사실 부상 때문에 프로구단에서 활동을 못했거든. 그래서 프로야구의 실정을 알기 위해 직접 경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판단했어.”
실패가 준 교훈
허위원은 이렇듯 야구감독으로 잠시 다른 삶을 경험한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청보 핀토스는 그해 하위권에 맴돌았다. 사실 청보는 당시에도 약체로 평가받던 팀이었다. 게다가 그해에는 선수보강도 이루어지지 않는 등 많은 고충이 있었다고 한다.
“감독생활에 후회는 없어. 그 덕에 많은 것을 배웠는걸. 무엇보다 선수의 입장에서 야구를 중계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나 프런트들의 입장도 알게 되었다는 거지.”
허위원은 프로야구감독 경험 때문에 명해설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야. 한 선수가 술을 마셨어. 그래서 감독이 그 선수를 기용하지 않았어. 그러나 관중들은 몰라. 선수를 내보내라고 하지. 해설자 역시 마찬가지겠지.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내가 감독직을 해보니 그게 아니더군. 분명한 사정이 있어서 못 내보내는 거거든. 그 사정은 감독이나 프런트가 아니면 모르는 거지. 이런 것으로 해설자가 이 기회에는 저 선수를 내보내야 하는데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건 주관적 판단이 개입된 거지.”
허위원의 이런 해설관은 뚜렷했다. 객관적 사실만을 전달하는, 기본에 충실한 해설이 허위원이 추구하는 해설자의 덕목인 것이다. 그 이후에도 허 위원에게 국내굴지의 재벌구단에서 감독제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허위원은 마지막으로 요미우리자이언츠의 4번 타자로 성공적 한 해를 보낸 이승엽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실력뿐 아니라 예의도 바르고, 자신이 해야 할 것과 안 할 것을 구별할 줄 안다. 기본적으로 인격이 훌륭하다. 가끔 경기 후 멘트를 하는 것을 보면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겸손하다.”
기본적인 자질이 뛰어나도 인격의 문제가 있으면 선수생활을 평탄하게 할 수 없다는 허위원.
“대학에 강의를 나가면 항상 강조하는 것이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격이 중요하다’고 말해. 흔히 운동선수가 운동만 잘하면 끝이라는 생각은 잘못됐다고 봐. 미국에선 어렸을 때부터 운동선수도 학업을 병행하지. 학업뿐 아니라 기본적 인성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해. 선수의 가치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팬들에 대한 배려 등 인성을 바탕으로 한 자기관리가 이뤄져야 선수의 값어치가 높아지는 거라고 생각해.”
허구연 야구해설위원 일문일답
“힘 압도 못한 게 도하 참패 원인”
-올해 야구를 정리한다면.
▲함성으로 시작해서 탄식으로 끝났다. 월드베이스볼 4강이라는 대업으로 시작한 한 해였지만,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대만과 일본에 내리 눌려 안타까웠다. 프로야구는 LG, 롯데 등 대표적 인기구단이 시즌 내내 하위권을 맴도는 바람에 관중동원에 실패했다. 해외파로 본다면 이승엽이 요미우리자이언츠의 4번 타자로 맹활약한 것을 들 수 있다.
-도하참패의 결정적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 힘이 상대를 압도할 정도가 못되었다. 특히 국내파로 이루어진 선수들 중에서도 실상 병역문제로 인해 병 미필자를 뽑다보니 베스트멤버로 구성되기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국제흐름에 뒤처진 것도 큰 원인이라 할 수 있겠다.
-프로야구 스토브리그가 유난히 잠잠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기본적으로 우리야구는 자원이 부족하다. 또한 야구단을 주로 대기업이 운영하다보니 그룹의 자존심대결이 펼쳐진다. 이 상황에서 자칫 잘못하면 상대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트레이드를 누가 하려 하겠는가. 다들 몸을 조금씩은 사리게 된다. 또한 내년은 유난히 예비역들이 많이 돌아올 해이다. 병역파동으로 인한 선수들이 내년에 일제히 돌아온다. 이로 인해 각 팀들은 선수수급에 여유가 생겼다.
-2007 프로야구 4강팀을 전망한다면.
▲현재 프로야구에서 용병의 비중이 워낙 크다. 현재 각 구단의 용병들이 완전히 뽑히지 않은 상태라 장담하긴 힘들다. 그러나 스토브리그가 거의 끝나가고 있는 시점까지 보건대 아무래도 지난해 우승팀 삼성의 4강 진출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 팀들은 엇비슷한 전력이라 생각된다. 굳이 뽑는다면 전력보강이 이루어진 LG와 SK등이 타 팀들에 비해 가능성이 조금은 높아 보인다. 한화 역시 구대성의 계약여부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전체적으로 안정된 팀 구성이다.
-2007년 돌아올 예비역선수 중 주목할 선수들을 꼽는다면.
▲우선 박명환이 빠진 자리를 메워줄 두산의 구자운이 있을 것이다. 꾸준히 3할 타율을 올려 줄 한화의 이영우도 있고 LG의 김상현이나 롯데의 임경완, 삼성의 윤성환 등도 기대할 만하다. <수>
허구연 해설위원은…
경남고 졸업, 고려대법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법학석사
1976한일은행야구단 은퇴
1982~1990문화방송 야구해설위원
1985~1986청보핀토스 감독
1987~1989롯데자이언츠 수석코치
1990~1991토론토블루제이스 마이너리그팀 코치
1991~ MBC야구해설위원
2001~ 프로야구선수협회 자문위원회 회원
2002~ KSN 대표이사
배수호 4477b@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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