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4월 18일 롯데자이언츠-LG트윈스 서울 잠실 원정경기 도중 1루 주자로 나가 있던 임수혁 선수가 부정맥(일종의 심장마비)으로 갑작스레 쓰러졌다. 부정맥은 초기에 심장마사지나 전기충격 등의 간단한 응급치료만으로도 뇌사상태까지 이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임선수가 쓰러졌을 때는 초기대응이 이미 늦었다. 당시 잠실구장에는 응급시설이나 전문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임수혁 선수는 뒤늦게 병원에 후송됐으나 일어나지 못했다.
그후 6년. 식물인간으로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생명을 이어갈 수 없는 임수혁 선수는 최근까지 병원신세만 지다 지금은 병원비가 없어 집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기자는 임수혁 선수의 부인 김영주씨를 만나 임선수의 근황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는가.
“당시 LG와의 원정경기라 부산에 있었다. 그날은 박정태 선수 아들의 생일이라 박정태 선수 집에 있었다.”
-처음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기분이 어땠는가.
“처음에는 그저 현기증으로 쓰러졌을 거니 했다. 사고 소식도 박정태 선수의 부인에게 전해 들었다.”
-응급실에서 임수혁 선수를 처음 보았을 때 심정이 어땠는가.
“당시 야간 경기라 서울에 도착하니 새벽녘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 그냥 며칠 있으면 아무렇지 않게 깨어나겠거니 했다.”
-임수혁 선수와 어떤 인연으로 만났나.
“대학교 1학년 때 소개팅으로 만났다. 여담이지만 소개팅해 준 친구가 대학 동기인데 집 근처에 살고 있다.”
-결혼 몇 년 차에 일을 당했는가.
“큰 아이가 일곱 살 때니 결혼한 지 7년만이었다. 그 후로 6년은 누워있는 남편과 함께 했다.”
-지난 7년 동안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
“생활고다. 남편이 선수시절 당시 나는 전업주부였다. 사고를 당한 이후에 2년은 그동안 남편이 선수시절 벌었던 돈으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달 600만원에 달하는 입원비를 내기란 너무 빠듯했다. 그 후 3억여 원의 보상비가 나왔지만 그것으로 세 식구와 한 명의 환자가 먹고 살기에는 턱없었다.”
-임수혁 선수의 현재 몸 상태는 어떤가.
“늘 한결같다. 사고 이후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4년 정도면 깨어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솔직히 모르겠다.”
-병원에서 자택으로 병실을 옮긴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병원에 있는 동안 누적된 치료비가 많았다. 솔직히 쫓겨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깨어난다는 확신만 있다면 빚이라도 져서 병원에 있었을 것이다.”
-2004년 보상 당시 KBO는 책임이 없다고 판결나고 롯데 2억원, 엘지 1억원으로 보상이 결정되었는데 KBO에 대한 불만은 없는가.
“KBO나 롯데 구단은 언급하기조차 싫다.”
-그럼 다시 한 번 소송을 걸 생각은 없는가.
“지난 소송 때 롯데프런트 직원들조차 나를 말렸다. 롯데란 그룹이 어떤 그룹인지 아느냐고. 그 정도 받은 것도 다행스럽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변호사선임비도 없을 뿐더러 더 이상 계란으로 바위를 칠 용기도 없다.”
-그때 당시의 보상액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 당시 한 달 입원비만 600만원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1년에 남편 병원비만으로 1억원 가까운 돈이 들어간다. 그럼 몇 년이나 간단 말인가.”
-현재 생활의 어려움은 없는가, 있다면 어떤 점이 어려운가.
“생활의 어려움과 사람들의 시선이다. 돈은 항상 쪼들리는 상황이다. 병원에서 현재 집으로 옮겼지만 간병인을 비롯해 남편 약값으로 300만원 정도의 돈이 들어간다. 아이들 교육비를 비롯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작은 미술학원을 하나 하고 있다. 또 현재 살고 있는 전세를 줄여서 근처에 다른 전세를 알아보고 있다. 그런데 정말 웃기는 일이 있다. 이 집을 내놓은 게 6개월 전인데 사람들에게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재수 없는 집’이라고 입주를 안하려 했다. 결국 임수혁 선수가 누운 방문을 잠그고 ‘이 방은 아가씨가 혼자 사는 방이라 열어줄 수 없다’고 해서 겨우 집이 나갔다.”
-자녀들은 임수혁 선수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나.
“큰 아들은 사고 당시 일곱 살 때라 나를 따라서 야구장도 다니고, 함께 야구도 하고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작은 딸은 네 살 때라 항상 누워 있는 아버지의 모습만 기억한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2년 전 여러 언론에 나온 중국 도피설 기사로 마음의 상처는 없었는지, 그때 배경이 무엇이었나.
“아마 3년 전 쯤이었을 것이다. 당시 4년 동안 나는 거의 매일 남편 병실을 지켰다. 나에게는 오로지 그가 깨어나리란 희망뿐이었다. 삶의 초점이 그에게로 맞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깨어나지 않았고 아이들은 한창 부모사랑을 받을 나이에 그러지 못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일단 현실을 받아들이자는 마음뿐이었다. 더 이상 남편은 야구선수가 아니라 환자일 뿐이라는 현실. 그리고 방에 있는 남편의 트로피와 상장, 글러브와 베트를 다 정리했다. 당시 나는 조울증 증세까지 왔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아이들과 기분전환 차 중국을 다녀왔다.”
-언론이나 팬들의 관심이 오히려 생활하는데 부담이 되지는 않았는지.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는 일이란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그 관심이 동정어린 눈빛이라면 사양하고 싶다. 나는 항상 그들의 눈에 남편이 식물인간이 된 불쌍한 여자여야 한다. 그래서 웃어서도 안 되고 항상 슬픈 눈빛을 하고 있어야만 한다. 물론 나를 비롯해 우리 가족의 상황은 어렵다.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항상 우울해야만 하는가.”
-롯데자이언츠 상조회에서 매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아는데 롯데 선수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이제 내가 아는 선수들은 프로에서 거의 은퇴를 했다. 염종석 선수를 비롯해 몇몇 고참선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편과 선수생활도 함께 하지 않았다. 함께 생활조차 하지 않은 남편을 도와주려 하는 것은 마음이 훈훈하다.”
-6년의 긴 세월동안 남편 병수발을 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언젠가는 깨어나리라는 믿음과 종교의 힘이다. 또한 저의 어머니가 임수혁선수를 깨어있을 당시부터 많이 좋아하셨다. 옆에서 항상 잘해주라, 잘해주라 이야기하신다. 어떤 때는 짜증도 나지만 참 고맙다.”
-본의 아니게 공인이 되었는데 공인으로서의 사생활에 어려운 점은 없는가.
“나는 현재 혼자 미술학원을 하고 있다. 원장이자 선생님이다. 그런데 나는 학원에서 가명을 사용한다. 혹시라도 내가 알려지면 원생들의 어머니들이 학원에 안 보내려하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 아니라 안타까운 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나를 많이 힘들게 한다.”
# 한국 야구 도하참패의 원인은?
추신수버린 김재박의 선택은 참패?
한국이 아마추어인 사회인야구와 대학야구팀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팀과 7:7로 팽팽히 맞선 9회. 아시아 세이브 신기록에 빛나는 마무리 오승환이 마운드에 올랐을 때 경기는 연장으로 흐를 것이라 예측됐다. 하지만 오승환은 3번 타자 초노에게 3점 홈런을 맞고 경기는 그대로 끝나고 말았다. 지난 달 30일 대만전 패배에 이어 연이은 패배로 한국야구는 당초 목표였던 금메달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메달의 색깔보다 중요한 것은 자존심을 구겼다는 점일 것이다. 지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미국, 일본, 대만을 연파하고 4강에 오른 것은 결국 기적으로 끝나는 것일까. 한국야구팀이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준 졸전을 분석해봤다.
이날 일본전 패배는 지난 2월 WBC 4강 당시 주역이었던 덕장 김인식 감독과 박찬호, 김병현, 서재응 등 해외파들이 총출전했던 당시와는 달리 베스트 선수들이 대거 빠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아시아에서는 야구강국을 자랑하던 한국이었기에 이날의 참패는 치욕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난 달 30일 대만전에서 2:4로 패한 한국 팀은 일본 아마추어 팀과의 경기에서 치욕적인 7:10 패배를 당했다.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팀 구성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우선 감독 선임부터 문제가 있었다. 당초 이번 아시안게임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4강 기적을 이룬 김인식 감독으로 내정됐지만 김인식 감독이 이를 고사하면서 2006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감독이 맡는다는 원칙이 세워졌지만 김재박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맡고 싶다”는 의사를 언론을 통해 먼저 흘렸다. 이에 한국야구위원회(KBO) 하일성 사무총장이 그에게 ‘명예훼복의 기회’를 주고 싶다며 지휘봉을 그에게 맡겼다.
감독뿐 아니라 선수 선발 과정에서도 잡음은 있었다. 선수선발의 전권을 쥔 김재박 감독은 특정 팀에 편중된 선수 선발로 전체 야구인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특히 올해 메이저리거로 손색없는 활약을 펼친 추신수(클리블랜드)에 대해서도 김 감독은 “검증이 안됐다”는 억지스런 이유로 무시했다. 물론 이번 대회는 지난 WBC 때와 달리 선수 선발의 초점이 병역에 맞추어져 있었다. WBC 당시에는 박찬호, 서재응, 김병현, 이승엽, 김동주 등 우리가 구성할 수 있는 최강의 선수들로 팀을 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선 병역특례가 걸린 만큼 주로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선수들에게 병역혜택을 주자는 의미에서 팀 구성이 이루어졌다. 아직 병역미필인, 풀타임 2년 차인 기아 이용규와 프로 4년 차 이택근을 추신수를 제외하고 넣었지만 그들의 활약은 사실상 없었다.
팀 구성보다 더 중요한 요소는 한국 선수들의 몸 상태였다. 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을 당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선수들의 경우 시즌이 끝난 뒤 한 달이 넘는 공백이 있었다. 결국 선수들은 짧은 기간 동안 몸을 만들어야 했지만 완벽한 몸 상태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전력분석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단기전으로 치러지는 국제대회에서는 전력분석이 승부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명한 사실. 김인식 감독은 WBC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전력 분석 팀의 역할이 컸다”며 대만과 일본을 격파하는데 정확한 전력분석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 대만전에서 9이닝을 나눠 던진 궈홍즈와 장첸밍은 메이저리그와 일본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임에도 분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두 투수 모두 볼이 많고 구위가 좋지 않았음에도 공략하지 못했던 까닭은 볼 배합 등 전력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사회인야구와 대학야구 선수로 구성되어 분석이 힘든 일본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적어도 프로팀 선수 및 해외파로 구성된 대만전에서는 제대로 된 전력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야구의 참패는 피할 수 없는 인재였다는 점이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새롭게 거듭날 한국 야구의 앞날을 기다려본다. <호>
배수호 4477b@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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