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 골리앗’ 최홍만의 전력분석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26)이 K-1 월드그랑프리 결선대회 리저브 매치에 출전한다.
상대는 ‘뉴질랜드의 흑표범’ 레이 세포다. 지난 9월 30일 제롬 르 밴너(프랑스)에게 패해 결선 진출이 좌절된 최홍만은 리저버 신분으로 2회 연속 월드 그랑프리 결선 무대에 나서게 됐다.
리저버 파이터는 4강 진출자 가운데 부상자가 발생했을 경우 대신 4강 이상에 올라갈 자격을 획득하는 선수를 의미한다.
리저브 매치 가운데서도 제 1리저브 매치, 제 2리저브 매치로 나누어진다. 제 2리저브 매치에 출전하는 최홍만의 경우, 부상자가 생기더라도 무사시와 피터 아츠(제 1리저브 매치)의 승자 이후에나 토너먼트 출전 자격을 노려볼 수 있다.
최홍만이 다시 찾아온 기회를 살려 월드 그랑프리 정상에 우뚝 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 때문에 최홍만은 월드 그랑프리 우승 보다는 세포와의 대결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팬들의 관심도 온통 ‘최홍만이 세포를 꺾을 수 있느냐’에 쏠려있다. 최홍만은 과연 세포를 잠재우고 K-1전적 10승을 달성할 수 있을까?
우선 최홍만과 대결하는 세포는 K-1 초창기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베테랑 파이터라는 점에서 쉽게 승리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세포는 특히, 파이팅 넘치는 경기 운영과 쇼맨십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수많은 경기를 통해 보여준, 프로복서 같은 강력한 펀치와 복싱 테크닉은 K-1 내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력에 비해 상복 없는 선수” 평
그러나, 전문가와 팬들의 평가에 비해 성적은 썩 좋지 않다. 지난 2000년 월드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뒤, 2002년 3위에 오른 것이 전부다. 실력에 비해 상복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묵직한 펀치를 가진 세포는 우승까지 노려볼 수 있지만 경기 때마다 찾아온 불운이 발목을 잡고는 했다.
하드 펀치를 소유한 세포는 최홍만을 어떻게 상대할까?
일단 ‘작은 체구’의 핸디캡을 안고 있는 세포가 레미 본야스키나 제롬 르 밴너를 벤치마킹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홍만에게 각각 1패씩을 안긴 본야스키와 밴너는 똑같이 링 외곽을 돌며 로킥으로 최홍만을 괴롭혔다. 킥 기술이 좋은 세포 역시 끊임없이 최홍만의 하체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
세포가 노리는 것은 그 다음 동작이다. 로킥이 적중되면 최홍만의 자세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자연히 타점이 낮아지게 될 것이고, 세포는 이 타이밍을 노려 최홍만의 안면부를 공략할 수 있다. 사실 218cm의 최홍만을 180cm의 단신 세포가 직접 공략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주먹을 쭉 뻗는다면 닿기야 하겠지만 체중이 실린 펀치가 나올리 만무하다. 따라서 펀치가 매서운 세포는 로킥으로 상대의 타점을 낮춘 후 카운트펀치인 ‘라이트 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높다. 이 전략은 ‘괴수’ 밥 샵이 최홍만과의 경기에서 실제로 활용한 바 있다. 결국 무위로 끝났지만 전략은 탁월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반대로, 최홍만은 세포를 잡기 위해 그의 전략적 노림수를 피해야한다.
일단, ‘무더기’ 로킥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최홍만은 이전 본야스키나 밴너 전에서도 로킥을 적절히 막지 못해 패배를 맛봤다. 물론 격투기 입문 2년째인 최홍만에게 정상급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방어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상대의 하체 공격 타이밍 때 오히려 펀치를 날리는 식의 전략은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상대의 로킥 때 다리를 들어 충격을 흡수하는 등의 순발력도 필요하다.
또 다른 문제는 발이 느린 최홍만이 슈가레이 레너드를 연상케 하는 세포의 현란한 풋 워크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 최홍만은 지난해 월드그랑프리 8강에서도 본야스키의 빠른 발을 잡지 못해 잦은 로킥을 허용하고 말았다.
월등히 긴 리치 이용해야
로킥만 최소한으로 막아낸다면 최홍만에게 충분히 승산이 있다. 38cm의 신장 차는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수치다. 제 아무리 강한 펀치를 가진 세포라도 정타를 만들어야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체중을 실어 주먹을 날리면 간신히 최홍만의 복부를 두드릴 정도다. 따라서 최홍만이 로킥으로 인해 다리만 꺾이지 않는다면 이길 확률은 매우 높아진다.
최홍만은 ‘거인’의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신장 차에 따른 무릎 공격은 굉장히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며 월등히 긴 리치는 상대를 압박하기에 제격이다. 이는 세포의 전례에서도 드러난다.
세포는 지난해 월드 그랑프리에서 212cm의 장신 세미 슐트에게 호되게 당했다. 자신의 주무기인 ‘부메랑 훅’은 좀처럼 적중하지 않았고 경기 내내 슐트의 페이스에 말렸다. 당시 세포는 일방적인 수세 끝에 판정패를 당했다.
게다가 최홍만은 1년 전에 비해 급성장한 파이터다.
지난달 30일 밴너와의 2006 K-1월드그랑프리 개막전 16강 토너먼트에서 연장 접전끝에 아쉽게 패했다. K-1 데뷔 이후 2번째 패배였지만 패자의 흔적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밴너는 경기가 끝난 뒤 “최홍만을 상대해본 결과 뼛속까지 단단한 느낌을 받았다”며 “2년 뒤면 누구라도 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최홍만을 칭찬했다. 립 서비스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실제로 최홍만은 많이 달라졌다. 펀치는 한결 날카롭게 변했다. 끊어 치는 펀치의 묘미를 터득한 듯 잽과 스트레이트가 한결 세련된 맛을 풍겼다. 특히 전무하다시피 했던 킥 기술이 일취월장했다. 단골 메뉴였던 무릎차기 뿐만 아니라 상대가 떨어져 가드를 내리고 허점을 보이면 순간 용수철처럼 뛰어올라 차는 ‘플라잉 니킥’(공중 무릎차기)까지 선보였다. 또한 펀치의 잽처럼 툭툭 던지는 앞차기를 새로운 무기로 장착했다. 세포가 분명 강한 상대지만 해볼만하다는 얘기다.
전세계 팬 매료시킬 듯
K-1 격투기 입문 2년만에 부쩍 성장한 최홍만. 정상급 선수들과 계속 맞붙으면서 기량이 향상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홍만은 한 때 ‘K-1의 생존을 위협하는 거인’이라는 누명까지 썼다. 심기일전한 최홍만은 실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이제는 일류급 선수들도 함부로 깔볼 수 없는 위치에 올라섰다.
대우나 인기도 여느 정상급 파이터에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만족하고 안주할 최홍만이 아니다. 그는 레이 세포와의 경기를 통해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각오다. 설령 지더라도 성장에 밑거름만 된다면 개의치 않겠다는 생각이다. 오는 12월 2일. 최홍만이 세포를 어떻게 상대할지 전세계 격투기 팬들의 관심이 모아진다.
# 전문가들이 바라본 ‘최홍만-세포전’
“초반 상대 압박이 승리 관건”
K-1 월드 그랑프리에서 펼쳐질 최홍만과 레이 세포의 경기 결과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됐다. 전문가들까지 승리를 쉽게 점칠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접전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민 격투기 칼럼니스트는 최홍만과 세포의 관전 포인트와 관련해 “최홍만이 초반 러시를 얼마나 빨리, 자주 들어갈 수 있느냐가 경기의 키포인트가 될 것 같다”면서 “초반부터 상대를 압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세포의 전략에 대해서는 “세포는 클린치 상태에서 떨어지는 순간 KO를 많이 뺏어내는 파이터”라면서 “클린치 이후의 상황을 적극 노리고 들어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일정한 거리가 있더라도 발 빠른 세포가 최홍만의 거리 안쪽으로 넘나들면서 괴롭힐 것 같다”며 각별한 주의를 요구했다.
세포가 강한 상대이긴 하지만 승산은 충분하다.
이 칼럼니스트는 “앞서 언급했듯이, 그간 중점적으로 연습해온 펀치 콤보로 초반부터 러시를 감행할 필요가 있다”면서 “리저브 매치뿐만 아니라 부상이 잦은 K-1 결승전 특성상 기사회생의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벤치마킹할 경기로는 슐트와 세포전을 꼽았다.
이 칼럼니스트는 “지난해 월드그랑프리 8강에서 세포가 슐트에게 처절하게 당했다. 가장 큰 이유는 세포의 펀치가 슐트의 무릎과 팔꿈치에 번번이 막혔기 때문이었다. 최홍만도 슐트의 전략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홍만이 세포를 꺾을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이 칼럼니스트는 “50%”라고 말한다. 일단 최홍만의 하드웨어에 높은 점수를 줬다. 이 칼럼니스트는 “세포에게 38cm의 신장 차는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전제한 뒤 “최홍만의 전략만 좋다면 충분히 해볼만한 경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철>
# ‘박치기 왕’김일 77세로 타계
전설, 역사 속으로 지다…
‘박치기왕’ 김일(사진)씨가 26일 낮 12시 17분경 서울 노원구 하계동 을지병원에서 타계했다. 향년 77세. 공식 사인은 만성신부전증 및 심장혈관 이상으로 인한 심장마비라고 의료진은 밝혔다. 프로레슬링의 ‘살아있는 전설’이었던 고인은 1960, 70년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였다. 그는 1967년 세계레슬링협회(WWA) 제23대 세계헤비급챔피언에 오르는 등 30년간의 현역 생활 동안 20차례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땄다. 그러나 1989년부터 긴 투병 생활을 해 왔고 1994년부터는 을지병원의 도움으로 병실에서 생활해 왔다.
마을에 흑백TV 한두 대가 고작이던 시절 고인(故人)이 호랑이와 삿갓, 곰방대가 그려진 가운을 입고 링에 올라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키와 자이언트 바바 등 거구들을 박치기 한 방으로 쓰러뜨릴 때, TV 앞에 모인 사람들은 쾌감을 느꼈다.
1929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한 김씨는 타고난 씨름꾼이었다. 금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열여섯 살 때부터 전국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다. 그의 운명을 바꾼 건 우연히 집어든 잡지 속 사진 한 장. 우람한 체격에 구레나룻을 한 사내가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프로레슬링 세계챔피언 역도산(力道山)이었다.
1958년 김씨는 일본으로 밀항, 역도산 문하에 들어갔다. 프로무대에 데뷔했지만 덩치 큰 상대에게 번번이 나가떨어졌다. 그때 역도산이 권한 필살기(必殺技)가 바로 박치기였다. 그는 재떨이와 골프채, 나무로 자신의 이마를 수없이 때리며 단련했다.
김씨는 생전에 “피가 나고, 기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박치기를 앞세워 김씨는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일본에서 활동하며 노스아메리카 챔피언 등의 타이틀을 차지했다. 미국에서 랩 마스터를 꺾고 첫 타이틀 벨트(세계프로레슬링협회 태그 챔피언)를 거머쥘 때, 공교롭게도 스승 역도산이 괴한의 칼에 세상을 떴다.
귀국 후 김씨는 백드롭의 명수 장영철씨와 함께 국내 프로레슬링 전성기를 이끌었다. 김씨 문하의 ‘해외파’와 장영철 계보의 ‘국내파’ 간 라이벌 경기가 열리던 장충체육관은 관중들로 늘 인산인해(人山人海)였다.
그러나 장씨가 “프로레슬링은 쇼”라고 폭로했다고 알려지면서, 두 사람의 사이는 급격히 나빠졌다. 덩달아 프로레슬링 인기도 하향세를 긋기 시작했다. 김씨는 지난 8월 장씨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원으로 서울 정동에 김일 체육관을 열며 천규덕·이왕표 등의 후배를 길렀다. 하지만 막내아들을 사고로 잃고 프로레슬링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1980년 제주도 경기를 끝으로 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인순(60) 씨와 1남 2녀가 있다. 영결식은 28일 오후 2시 을지병원에서 한국프로레슬링연맹이 주관하는 체육인장으로 열린다.
<현>
스포츠서울닷컴 배병철 skidrow97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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