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민속씨름, “뒤집기를 보여다오~!”
위기의 민속씨름, “뒤집기를 보여다오~!”
  • 구명석 
  • 입력 2006-10-13 11:21
  • 승인 2006.10.13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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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추락하는 민속 씨름 날개가 없다!


씨름의 인기는 몇 년째 내리막길이다. 1983년 닻을 올린 민속씨름은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스포츠답게 전국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만기, 이준희, 이봉걸 등 굵직한 스타들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면서 프로 스포츠다운 ‘스타성’도 야구와 축구 등 타 종목에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90년대로 접어들면서 씨름은 이 같은 인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23년이 지난 지금 씨름판이 몰락하면서 우리의 씨름 유망주들도 희망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한때 국민들의 성원과 사랑에 힘입어 ‘한민족의 전통 스포츠’라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던 씨름인들의 사기는 이제 땅바닥에 떨어졌다. 올해로 출범 23년째를 맞고 있는 민속씨름, 한가위를 맞아 무너진 민속씨름의 현실태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조명해 보았다.


1983년 첫선을 보인 민속씨름은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스포츠답게 전국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씨름팬들은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TV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한 때는 ‘인산인해’
씨름이 열리는 체육관은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뤘다. 미처 들어가지 못한 팬들은 체육관 밖에서 진을 쳤다. 이들을 위해 주최 측에서는 마이크를 통해 실시간 중계를 하기도 했다. 설날이나 추석 때는 씨름 보는 재미에 명절의 즐거움은 한껏 더 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씨름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고 프로씨름단이 8개로 늘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조금씩 사그라지던 씨름은 1997년 IMF 위기로 해체되는 팀이 늘어났다. 한보, 청구, 일양약품 등이 줄줄이 팀을 해체했고 2000년부터는 현대중공업, 신창건설, LG투자증권 등이 3개만이 남았었다. 그리고 결국 LG카드 경영난으로 2004년 LG마저 씨름단을 해체했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신창건설마저 해체를 선언하게 됐다.
환란에 따른 긴축 경영의 최전선에 각 기업들은 홍보 효과가 미진한 프로씨름단 해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고 한때 8개팀에 이르렀던 프로씨름단은 2006년 현재 현대 삼호중공업 하나만 남게 되었다. 연맹은 고육지책으로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한 새로운 대회를 구성했지만 이 역시 각 이해 당사 주체들의 갈등으로 쉽게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씨름인들은 80년대 인기스포츠로 자리매김했던 씨름을 살려나가지 못한 씨름연맹의 행정력을 비판하고 나섰고 이에 따라 현장 씨름인들과의 갈등은 커져갔다. 또한 민속씨름은 호황기 때 전문경영인을 도입해 발전시켜 나갈 것이냐, 아니면 선수 출신이 행정을 맡아야 하느냐를 놓고 소모적인 대립 속에 뚜렷한 방안을 찾지 못해 쇄신의 기회를 놓쳤다.
2004년 5월 취임한 현 김재기 총재 체제 하에서 위기는 더욱 심화됐다. 연맹의 김 총재는 외환은행과 주택은행장을 지냈을 정도로 정ㆍ관계에서 이른바 ‘마당발’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만큼 업무 추진력에 대해서는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씨름계 내부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의견 을 수렴하지 못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04년 LG씨름단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연맹은 거의 무관심에 가까운 대응 방식으로 일관했다고 씨름인들은 말한다.
하지만 연맹 관계자는 “그것은 말도 안 된다. 그 당시 연맹측은 문화관광부에 직접 찾아가서 LG씨름단 해체에 관해 얘기하고 부탁을 드렸다. 문화관광부가 직접 나섰지만 결국 해체되고 말았다”고 반박했다.

‘카타르시스’가 없다
올해 씨름의 주관방송사인 KBS 관계자는 “지금 프로팀이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전국의 지자체가 운영하는 팀들하고 함께 씨름대회를 열고 있지만 정상적인 씨름판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방송권을 줄 수 없다. 그리고 그동안 연맹에 지급했던 방송료 12억원을 더 이상 지급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며 씨름계는 더욱 위기를 맞게 되었다.
‘전통’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내밀어 보지만 냉정한 현대인의 관심은 이미 씨름에서 멀어졌다. 아무리 급격히 변하는 세상이지만 인기정상에서 위기 직전의 상황까지 오는 데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예전의 씨름은 화려함과 감동이 있었다. 한라급의 자그마한 이만기가 거구의 이봉걸을 쓰러뜨릴 때 국민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준희, 강호동 등 수많은 테크니션이 화려한 기술씨름을 선보였다. 하지만 점점 씨름선수는 대형화됐다. 이젠 140㎏ 이상이 되지 않으면 명함도 못 내밀 지경이다. 몸집이 커진 선수들은 지구력과 순발력이 떨어진다. 경기는 늘어지고 지루한 무승부가 속출했다. 최근 대회에서 5판3선승제의 결승에서 네 판 내리 무승부를 기록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기술은 점점 퇴화하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화려한 씨름의 이미지가 고루하고 지루한 것으로 바뀌었다.
국민대 스포츠산업대학원 신승호 교수는 “경쟁사회에서 스포츠도 예외는 아니다. 전투적인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씨름은 다른 스포츠에 비해 경쟁적 우위를 차지할 수 없고, 영원히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분만 지루하면 TV 채널을 휙휙 돌리는 현대인에게 지금의 씨름은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인기는 바닥을 기게 되었고 현역 선수들도 이런 부분을 인정한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선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한국 씨름의 부흥을 이끌었던 1980년대 간판스타 이만기 인제대 교수는 “프로씨름은 출범 이후 바뀐 게 아무것도 없다”고 씨름계 수뇌부를 성토했다. 그리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유도할 룰 개정도, 적극적인 마케팅 시도도 전혀 한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전 기업씨름단 차경민 감독은 “씨름연맹에서 적극성을 띠지 않고 홍보를 안했기 때문에, 씨름 팬들도 자연적으로 씨름을 외면하고, 기업에서도 씨름단을 운영하려는 기업도 없다”며 무너져 가는 씨름판의 현실을 말했다.

‘진흙탕’싸움 속 위기론 가속
이렇게까지 씨름판이 곪아 터진 데는 이른바 ‘야당’으로 불리는 한민족씨름위원회의 ‘투쟁 방식’에 대한 지적도 많다.
한민족씨름위원회는 2004년 말 신창건설 해체 뒤 정인길 전신창건설 단장을 중심으로 이 교수 등 민속씨름동우회원들이 참여해 만든 단체. 지난 7월 창립총회를 가진 이 단체를 씨름연맹은 명백한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씨름연맹의 민병길 사업국장은 “최근 총재가 바뀔 때마다 반대해 온 민속씨름동우회는 하나의 압력단체지, 순수한 동우회로 보기 힘들다”면서 동우회의 ‘전 씨름인이 함께 하는 공청회 개최’ 주장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할 얘기가 있으면 하면 된다. 연맹이 공청회 개최를 반대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교수 영구 제명 파동 역시 연맹의 ‘대안 세력’으로 눈총을 받고 있는 이 단체를 염두에 둔 조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민족씨름위원회가 연맹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는 방식에 대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도 많다.
2005년 김천장사대회에 등장한 ‘김재기 총재를 교도소로 보내라’는 현수막은 씨름연맹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중대한 도전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연맹측은 격분했고 이 행사에 주도적으로 참가한 이 교수를 ‘총재 모욕죄’로 영구 제명시키는 조치까지 취했다. 서로 간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포용이 부족했던 것은 연맹과 한민족씨름위원회 양쪽 모두 마찬가지인 셈이다.

결국엔 밥그릇 싸움판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의 K-1 진출은 충격이었다. 천하장사 출신인 그가 샅바를 버리고 링에 올라 발과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당시 팬들은 찬·반양론으로 들끓었지만 최홍만은 단호했다. 씨름판이 더 이상 밥을 먹여줄 수 없고, 선수 생명이 짧은 만큼 뭉칫돈이 절실했다며 안타까운 현실을 강변했다. 최근 전격 프라이드로 진출해 한 달도 채 안돼 데뷔전에 나선 ‘모래판의 지존’ 이태현이 던진 충격은 더했다.
이 교수는 “어차피 진출한 상황에서 훌륭하게 잘 해주기를 바랐는데 경기 도중에 기권을 하더라. 더없이 가슴이 많이 아팠다. 가슴으로 피눈물을 흘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연맹이 모래판을 망친 탓에 간판스타가 엉뚱한 곳에서 뭇매만 맞았다는 것이다. 연맹의 무능함도 문제지만 이 교수 등 재야 씨름인들 또한 목소리만 높였을 뿐, 이 지경이 되도록 무엇을 했는지 자신들을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민속씨름동우회는 관계자와 언론, 팬들까지 망라해 씨름 부활을 위한 공청회를 열자고 수차 제안했다. 하지만 연맹은 헤게모니 싸움에서 밀릴 것을 우려했는지 이를 철저히 외면해왔다.
연맹과 재야씨름인의 이번 갈등과 반목은 결국 집행부를 둘러싼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지는 게 사실이다. 체육계의 고질적인 파벌싸움이 모래판에서 재현된 것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천하장사를 꿈꾸며 모래판에서 구슬땀을 쏟는 꿈나무들의 시선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전국 대회에서 2번의 우승을 차지한 진주남중학교 씨름부 우동진 선수는 “스모는 인기도 많고 일본 정부에서도 많이 도와주는데 우리 씨름은 점점 더 작아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라고 말했다.
또 경남대 씨름부 서영호 선수는 “씨름이란 세계는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니까요. 실업팀이 3년 계약이라고 해도 1년 아니면 2년에 끝날 수도 있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못 살아 남아요”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쳤다.
연맹을 비롯해 씨름 관계자들은 이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머리를 맞대고 씨름판을 살릴 묘수 찾기에 골몰해주길 기대한다.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인 민속씨름은 계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당국도 적극적 관심 가져야
민속씨름의 현 실태를 보면 최홍만, 이태현 등 모래판의 스타들이 하나 둘 씨름계를 떠났고 ‘씨름황제’ 이만기 인제대 교수는 자신의 모태인 한국씨름연맹으로부터 영구 제명이라는 최악의 징계를 받은 상태. 거기에 최근 김 총재는 개인사업상 저지른 문제로 인해 그 자신이 법원으로부터 징역 8월과 집행유예 2년이라는 실형 선고까지 받은 상태다.
이에 관련해 연맹 관계자는 “재심을 청구했기 때문에 총재직을 수행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만약 김 총재의 실형이 확정될 경우 씨름계의 내분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한때 국민들의 성원과 사랑에 힘입어 ‘한민족의 전통 스포츠’라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던 씨름인들의 사기는 이제 땅바닥에 떨어졌다.
이 교수는 지난 9월 11일 영구제명 조치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씨름이 다시 국민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새롭고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즉, 지역과 씨름이 함께 나갈 수 있고 토너먼트가 아닌 리그로 치러지는 대회방식, 그리고 관중들과 더 가까이서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새로운 ‘씨름 콘텐츠’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연맹이 함께 참가하는 공청회를 열어 국민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싶다는 것이 이 교수의 바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에 앞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서로간의 대화와 타협, 그리고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이다. 양측 간의 대화와 타협 없이는 아무것도 이뤄질 수 없다. 만신창이가 된 씨름판을 다시 살리기 위한 ‘묘수’는 양자간의 진정한 이해와 협력하고자 하는 자세. 바로 이것이 씨름을 사랑하는 팬들의 한결 같은 충고이자 지적이다.



# 대학씨름 연맹 박승한 부회장이 말하는 ‘민속씨름’

“씨름 지망생 급감, 후배들에게 부끄럽다”

“모든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연맹을 비롯한 씨름관계자들의 책임이 크고 바로 씨름계에 속해 있는 우리들의 잘못이다. 한 사람의 씨름인으로서 후배들 앞에 정말 부끄럽다.”
최근 씨름연맹의 이만기 교수 제명 사태로 ‘씨름 위기’ 논란이 거세지는 가운데 한 대학씨름연맹 관계자가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대학씨름연맹 부회장으로 있는 영남대 체육학과 박승한 교수는 인터뷰에서 “현재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각 학교 씨름 지도자들을 통해 알아본 결과, 씨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망하는 학생들이 급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씨름의 씨가 말라가는 게 보인다”며 “씨름이 이제 곧 박물관으로 가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씨름 후학 양성 지도자들 사이에 팽배하다”고 말하며 “그나마 열심히 땀 흘리고 있는 젊은 씨름 후학들도 지금의 사태에 크게 낙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프로선수들이 국민적인 영웅이 되고 실업팀들도 예전같이 많이 생겨나야 한다. 실업팀들이 죽으면 바로 대학도 죽는다”고 전했다.
또 “그동안 우리 씨름은 너무 시대 변화를 읽지 못 했고 게을렀다”며 “일본은 이종격투기를 띄우고 종목을 현대화할 뿐 아니라, 스모 경기 역시 전문경기장을 두고 수많은 이벤트를 벌인 반면, 우리 씨름은 전문 체육관이나 경기장 하나 없다. 옛 방식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연맹이니 동우회니 나눠서 싸울 때가 아니다. 모처럼 여론의 관심을 받게 된 지금이 씨름의 위기이자 동시에 최대의 기회”라며 “씨름계가 힘을 모아, 씨름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 씨름 경기 방식과 이벤트를 현대화하고, 특히 북한에도 씨름이 있다. 통일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로서 훗날 남북 씨름 장사 이벤트를 준비하고 벌인다면, 씨름 인기 회복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석>

구명석  gms7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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