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박 감독이 이끄는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최종 엔트리 발표 후 그동안 대표팀의 4번 타자로 활약해온 김동주가 WBC에서 당한 부상의 보상책 미비를 이유로 들면서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김동주는 선수의사와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KBO의 대표 선발 과정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김재박 감독은 김동주가 빠진 자리에 대해 아직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정성훈과 이범호가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사령탑 김재박 감독과 국가대표 자진 반납을 놓고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김동주 선수 이 둘의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3회 연속 우승을 노리는 김재박 감독이 이끄는 야구대표팀이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오는 12월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최종엔트리에 포함된 두산 거포 김동주(30)가 태극마크 반납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선수 의사와 상관없이 대표팀 주축 선수를 뽑았다가 헛물을 켠 김재박 대표팀 감독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대회 준비 초반부터 곤경에 처하게 됐다.
“태극마크 반납. AG 뛰지 않는다”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어깨 부상을 당한 뒤 5개월간 재활 끝에 8월 중순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던 김동주는 “먼저 뽑아주신 김인식, 김재박 감독 등 많은 분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몸이 완쾌되지 않은 상황에서 팀의 4강 진출이 걸려 있어 무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베스트 몸 상태로 나가도 잘할까 말까 한 국제무대인데 이런 상태에서 나간다면 오히려 팀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국가대표가 얼마나 큰 영광인지. 태극마크가 얼마나 소중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팬들이 나를 욕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대표팀에서 뛰고 싶지 않다”면서 “이제 팀에 복귀한지 채 한달도 되지 않아 구단에 미안할 정도다. 몸도 아직 완전하지 않다”고 밝혔다.
“프로 선수에게 프리에이전트(FA)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모든 사람이 다 알 것이다. 나는 3월 WBC 때 국가를 위해 뛰다 부상을 당했지만 (KBO가)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 얻은 건 상처뿐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나에게 또다시 대표팀 유니폼을 입으라니 말이 되느냐”고 김동주는 되물었다.
그는 또 “나 뿐만 아니다. 이번 대회에서 또 다른 부상 선수가 나오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나 같은 선수가 또 나온다면 어떻게 하겠단 말이냐”면서 이어 그는 “KBO에서 내 의사를 물은 것은 한번도 없다. 다만 어제 오전 구단 매니저에게 전화가 와 ‘나가도 되고 안 나가도 된다’고 말을 했다. 잠을 자다 전화를 받아서 정신도 없었다. 적어도 엔트리를 발표하기 전에 그런 것에 대한 사전 준비 작업이라도 있어야 했는데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걸로 알고 있다. 사전 연락 한번 없이 대표팀을 선발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그리고 해외파와 국내파 다 똑같은 선수들인데 입장이 다른 것도 아쉽다. 해외파들은 미리 본인 의사와 메디컬테스트 결과를 점검하는데 반해 국내파들은 명단이 나오면 무조건 뛰어야 한다”고 얘기 하며 태극 마크 반납 이유를 설명했다.
5개월간의 부상 공백으로 최근 완전한 몸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김재박 감독과 KBO는 사전 조율 없이 김동주를 최종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해외파의 경우 몸 상태와 선수 의사를 점검하는 공식적인 절차를 밟은 반면, 국내 선수에겐 이런 절차가 없어, 형평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WBC 4강도 상처뿐인 영광”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드림팀 I’ 시절부터 대표팀 4번 타자를 맡았던 김동주는 WBC 1라운드 첫 경기였던 대만전 부상 당시에도 4번 타자를 맡는 등 10년 가까이 ‘대한민국 4번 타자’로 명성을 쌓아왔다. 김동주는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만전에서 1루로 슬라이딩 하다 왼쪽 어깨가 골절되고 인대가 손상되는 부상을 당했다.
이후 미국과 국내에서 5개월간 재활 치료에 힘쓰다 지난 8월10일 1군에 복귀했지만 아직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다.
부상으로 인해, 올 시즌 최소 50억 원이 보장된 FA 자격을 얻는 데 실패했다. 정상적으로 올 시즌을 마쳤다면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어 일본 진출을 도모할 생각이었지만 현재로서는 FA 자격 획득이 난망한 상태다. 김동주에겐 WBC 4강도 결국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김동주는 그러나 아시안게임 불참과 FA 문제를 관련짓는 일각의 시선을 거듭 부인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부상으로 미국에서 재활할 때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면서 “더 이상 아프기 싫다. 부상이 재발할까 두렵다”는 속내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김동주는 이어 “정규시즌 5개월 동안 팀에 아무 보탬도 되지 못했다. 지금 팀을 위해 100% 힘을 쏟아도 부족한데 그렇지 못해서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그리고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다”면서 “내가 없다고 금메달을 못 따는 것은 아니다. 후배들이 잘 해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함께 국가대표로 선발된 두산 홍성흔 역시 “동주 형의 고민을 이해한다. 프로 선수들에게는 본인의 몸이 재산”이라면서 “누구보다 힘겨운 시간을 보냈기에 쉽게 참가를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거들었다.
한편, 김재박 대표팀 감독은 “대표팀 발표 전에 김동주의 입장을 확인했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지만 KBO와 코칭스태프가 선수의 몸 상태를 직접 점검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김동주는 뒤늦게 잠이 깬 뒤 ‘이게 아니다’ 싶어 매니저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매니저는 대표팀 선발 회의 시간이 지났다며 김동주의 뜻을 KBO에 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회의중에라도 김동주의 의견이 제대로 전달됐다면 지금처럼 상황이 커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김동주 "보상제도 반드시 필요하다"
김동주는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대만전에서 1루로 슬라이딩을 하다 어깨 부상을 당했고 이 때문에 지난달 10일이 돼서야 그라운드에 복귀할 수 있었다. 국가대표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평소에 하지 않는 슬라이딩까지 감행했던 김동주였기에 그 허탈함은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올 시즌만 채우면 FA(자유계약선수)가 되기 때문에 올해가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부상으로 모든 꿈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김동주의 부상을 놓고 보상책을 마련할 것이라 언급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은 상태. 이에 대해 김동주는 “국제대회에서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며 “앞으로도 국제대회는 계속 있고 후배들이 출전할 것이기 때문에 국제대회 부상에 대한 제도적인 조치는 필요하다. 더 이상 나 같은 선수가 없기를 바란다”고 제도적인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함을 주장했다.
김동주는 아직 자신의 FA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점에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이번 겨울에 정말 많은 땀을 흘렸다. FA가 되면 나름대로 꿈도 있고 계획도 있었는데 아쉽다”며 심경을 토로했다. 정상적으로 FA가 획득됐으면 일본 진출을 노렸을 것이라는 그는 “아직 해외 진출은 포기하지 않았지만 FA를 얻은 뒤 시도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해외진출은 모든 야구 선수들의 꿈이라 생각한다”면서 “우선 재활에 매달리겠다”고 덧붙였다. 김동주는 해외 진출에 대한 자신의 희망을 드러냈고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또한 FA 보상 문제가 해결되었어도 김동주의 결정은 마찬가지다. “올해만 야구를 할 게 아니기 때문에 몸 상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부상으로 FA 보상을 받았더라도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보상 문제 때문이 아니라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아직 몸 상태가 100% 온전한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타격감 회복에도 애를 먹고 있다.
김동주의 ‘국가대표 자진 반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가대표는 무한한 영광인 것은 사실이나 야구선수에겐 몸이 재산인 이상 부상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보상책이 없는 상태에서 선수에게 대표 출전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다. 김동주가 말을 꺼내자 일부 이병규 등 대표팀에 선발된 고참 급 선수들도 부상에 대한 보상책이 없는 현실에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병규는 “다른 선수도 김동주처럼 부상당할 수 있다.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박진만(삼성)은 보상 제도가 없으면 출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과연 이들의 의지대로 보상 제도가 마련될 수 있을까. 이제 KBO와 대한야구협회(KBA)의 결정만이 남아 있다.
구명석 gms7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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