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복싱 유망주에서 ‘조폭’의 ‘밤의 황제’로, 다시 이종격투기 선수로…마흔의 나이에 현역으로 링을 지키며 지도자로도 명성을 날리고 있는 ‘불사조 파이터’ 박현성 관장. 박 관장은 전신 화상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뒤, 링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재활에 성공하면서 후배 양성을 위해 다시 링으로 돌아온 투혼의 파이터.
그리고 ‘권도(拳道)’라는 무술을 만들기도 한 그는 올 하반기 중에 처음 실시될 권도 대회를 위해 몸을 만들고 있다. 최근엔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주제로 한 소설 ‘박현성-불사조라 불리운 사나이’라는 책이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오며 지금은 이종격투기의 상징적인 인물로 각인돼 있는 ‘피닉스 박’ 박현성을 만나기 위해 양평동에 위치한 ‘21세기복싱체육관’을 찾았다.
국내 격투기계에 ‘불사조’란 별명으로 통하는 박현성(39)은 복싱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으로 현재 양평동에 위치한 ‘21세기 복싱체육관’ 관장과 종합격투기 팀인 ‘팀 피닉스’를 이끌고 있는 수장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아킬레스건이 끊기고 몸 전체 93%에 화상을 입고도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재활에 성공한 뒤 2003년부터는 직접 종합격투기링에 올라와 팬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며 화제를 모았었다.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건 나 자신”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난 박 관장의 얼굴과 몸은 한 눈에도 평범하지 않았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의 화상은 분신자살을 기도하면서 얻은 것이었다.
그 동안 살아 온 삶에 대해 후회가 없느냐는 질문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나 자신이다. 내 인생에 대해 후회는 없다. 그 동안의 잘못에 대해 반성은 하겠지만 내 인생을 사랑한다”고 박 관장은 말한다. 그는 1997년부터 복싱 감독으로 고교 선수들을 최강으로 키웠고 2003년 이종격투기에 뛰어들어 어떤 상황에서도 항복하지 않아 ‘불사조’란 별명을 얻게 됐다.
불사조라는 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박현성이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 많지만 불사조 박으로서 나는 항상 링 위에서 포기하지 않는 떳떳한 모습을 보여왔다. 나는 팬들이 붙여준 그 이름이 너무 좋다. 제2의 이름으로 생각하며 그 이름에 맞게 부끄럽지 않도록 살려고 노력한다”고 박 관장은 자신 있게 얘기했다.
요즘 이종격투기 지도자 생활과 권도 협회를 창립하는 일로 박 관장은 바쁘다. 이종격투기 지도자 생활은 어떤 지에 대해 물었더니 “‘21세기복싱체육관’을 운영하며 종합격투기팀인 ‘팀 피닉스’를 이끌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며 “앞으로 복싱, 격투기 등 여러 장르에서 후배 양성을 하고 싶다. 지금도 권경환이라는 재능 있는 제자를 키우고 있다. 내년 4월쯤 첫 대회에 내 보낼 계획이다. 그리고 항상 제자들에게 내 인생을 닮지 말라고 얘기한다”고 박 관장은 말한다.
박 관장은 잘 쥐어지지 않는 왼손을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만들었고 이를 ‘권도(拳道)’로 명명했다.
박현성 관장, ‘권도’ 협회 창립 추진
권도는 어떤 운동인가라는 질문에 “실전에서 권투가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한번이라도 싸워본 사람은 안다. 태권도, 유도, 합기도, 무에타이 등 웬만한 격투기 고수들도 권투를 배운 사람에게는 판판이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권도는 권투를 실전용으로 업그레이드 시킨 것이다. 신문지를 손바닥 크기만 하게 겹쳐 접은 상태에서 구멍을 낼 만큼 권도의 펀치는 위력적이다. 권도는 9월초쯤 사단법인 설립을 완료한 뒤 올해 안에 첫 대회 개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권도 교본도 만들고 있다. 앞으로 권도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다”고 박 관장은 말한다. 그의 인생 스토리가 알려지면서 그가 운영하는 권도 카페(cafe.daum.net /21cboxing)엔 회원 1만3,000여 명이 참여해 응원하고 있다.
글러브가 너무 친숙하다는 박 관장은 그가 항상 추구하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링에 설 때 살아있다는 느낌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언제나 긍정적으로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박현성의 굴곡진 삶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그의 이야기는 소설이 나오자마자 드라마와 영화 제작 제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조만간 영상을 통해 박현성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국가대표복싱 유망주 ‘박태현’
박 관장은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란다’는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남자다. 그는 박종섭(광산업)씨의 장남으로 충남 장항에서 태어나 성장기 대부분을 대천에서 보냈다. 초등학교시절 모범생이었던 그는 집안 사정으로 전학을 다섯 번이나 다니면서 친구 없는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했다.
아직도 대천 바닥에서는 ‘박현성’ 이름 석자를 알아준다.타고난 몸에 운동신경까지 뛰어나 어려서부터 골목대장 노릇을 했다. 그러던 그가 학교 폭력사건에 연루돼 “잘못에 대해 용서해주는 대신 복싱을 하라. 그렇지 않으면 부모님께 말하겠다”는 체육교사의 말에 대천중 2년 때 처음 글러브를 끼었다. 박 관장은 “처음에 부모님 모르게 운동을 시작했다. 나중에 아버지께서 아시고 화를 내셨지만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운동을 계속하고 우승 못 하면 운동을 포기하라’고 하셨다”고 얘기했다.
3개월 운동하고 나선 83년 전주소년체전 우승을 필두로 또래 최고의 중량급 강자로 명성을 떨쳤다.84년 대전체고에 입학, ‘무적 대전체고’ 멤버로 전국을 제패했다. 청소년대표로 85년 세계청소년선수권 우승, 86년 고3 때 국가대표가 돼 킹스컵에서 동메달을 따는 등 국제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체육명문’ 한체대에 입학해 전국체전 우승, 88올림픽대표선발전 준우승 등으로 장래를 약속받기도 했다.
그러던 그해 여름 돈의 유혹을 못 이겨 대천에서 건달생활을 시작했고, 조직 돈 500만원을 빌려 썼다가 어둠의 세계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 이후 박관장은 암흑세계와 복싱판을 오갔다.양지에서는 용인대로 학교를 옮기기도 하고 88년 가을 프로로 전향해 당시 심영자 회장의 88프로모션 소속으로 데뷔해 5전전승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다 세계타이틀전을 기다리는 게 지루해 스스로 포기했다.
‘밤의 황제’에서 ‘격투기 지도자’로
음지에서는 대천 최고의 주먹으로 악명을 떨쳤다. 휘하 조직원만 50명에 달하는 보스, 고급승용차에 양주, 밤마다 환락가를 누볐다.여러 차례 상대파와 ‘전쟁’도 치렀다.나이트클럽,성인오락실, 카바레, 해수욕장 이권사업 등으로 스무살을 갓 넘긴 나이에 큰돈도 만져봤다.‘별’을 하나 달아야 된다는 말에 몇 차례 옥살이까지 경험했다.박 관장은 “낮에 쓰는 주먹과 밤에 쓰는 주먹이 그렇게 다른지 그때는 정말 몰랐다. 주먹을 어떻게 쓰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도 완전히 바뀌는 것을 그때 알았다”며 그때를 후회하는 듯 말했다. 링 안에서 써야 할 주먹을 밖으로 잘 못 휘두르게 되면서 20대 초반 나이에 그는 대천에서 ‘밤의 황제’가 됐다.
그러다 92년 상대파의 기습으로 아킬레스건이 잘리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때는 불구가 되는 줄만 알았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고 나에게 희망이 없었다. 술로 허송세월하다 집 옥상에서 분신자살을 기도했다”며 “사람이 좋은 생각을 계속하면 좋은 행동을 하지만 나쁜 생각을 하면 행동도 나쁘게 하는 것 같다. 그 당시 머릿속에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분신자살이라는 결과까지 갔던 것 같다”고 박 관장은 얘기했다.
전신 3도의 중화상. 식물인간부터 시작해 4년여간 투병했다. 서울대병원에서 대수술만 27차례 받았고 피부학계에도 유례가 없는 재활에 성공했다. 불사조의 전설은 이처럼 밑도 끝도 없을 것 같은 구렁텅이에서부터 시작됐다. 사랑하는 이, 가족들 걱정에 그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적처럼 몸을 회복한 뒤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상대파를 찾아가 복수하고 다시 구치소 신세를 지다가 신체장애로 1년 후 보석된 것을 마지막으로 복싱지도자로 변신했다.97년 3월 충남 복싱의 명가 ‘대천복싱체육관’ 대표사범으로 부임한 이래 전국체전 충남코치로 종합우승 2회, 준우승 1회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올렸다.2000년 부산체전의 스타인 ‘교도소 복서’ 서철(당시 헤비급 준우승)은 영화 ‘주먹이 운다’에서 류승범의 실제 모델로 그의 제자다. 한국판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불리는 여성복서 민현미도 그가 배출했다.
박 관장은 “그 세계는 사람으로서 발을 디딜 곳이 못 된다. 종말이 처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유혹에 젊음이 쉽게 무너진다. 특히 청소년들은 나와 같은 실수를 해선 안된다. 청소년들을 밤의 주먹이 아닌 건전한 낮의 주먹으로 돌리는 것을 천직으로 삼고 싶다”고 밝혔다.링 위의 불사조’ 박현성 관장의 일대기가 소설(글쓴이 유병철)로 출간됐다.
서 철, 이재선, 민현미 등 숱한 명선수를 양성해 낸 박 관장의 삶은 이미 TV나 온라인 매체 등에서 여러 차례 다뤄진 바 있어 국내 격투팬들에게 상당부분 알려져 있다. 이번 소설은 그 동안 밝히지 않았던 이야기나 박 관장 본인의 생각과 느낌을 좀 더 담아 새로운 느낌으로 편집해 출판됐다.
‘불사조’ 박현성 일대기 소설로 출간
사실, 박 관장의 삶은 영화나 소설 등으로 다시 보기에 너무나 알맞고 훌륭한 소재였기 때문에 관계자들은 나올 것이 나왔다는 반응. 또 언제나 사심 없이 자신의 일에만 열중하는 그의 모습과 자신의 전철을 후배들이 밟지 않기를 바라는 모습 등을 통해 ‘인간 박현성’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박 관장은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것 이상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이다. 실제로 기자가 만나 본 박아내 정정임씨가 말하는 박성현 관장 관장은 험난하기 그지없었던 삶과는 반대로 인간미 넘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책이 발간된 것에 대해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아들 기형이가 책이 나오고 나서 ‘아빠! 밤의 황제가 뭐야?’라고 물어 봤을 때 정말 난감했다. 책이 나오고 꼼꼼히 읽어봤다. 죽으려고 결심하고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에서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젊은 시절 나는 자기 통제력이 부족했고 가족의 소중함과 아내의 가치를 너무나 과소평가했다. 이제는 돌아보고 싶지 않다.”
발간된 소설에서는 끝까지 자신의 편이 되어 주었던 아내(본명 정정임)에 대한 애정에서 ‘가장 박현성’의 모습을, 그리고 제자들을 친자식처럼 아끼는 모습에서 ‘지도자 박현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소설속 주인공 ‘엄지’는 지금의 내 아내다. 나에게 아내는 ‘공기’하고 ‘물’ 같은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내가 아버지이자 남편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해줬다. 분신자살을 기도해 삶을 마감할 처지에 놓였을 때 나를 건져 올려줬다. 나는 이제 죽을 용기가 없다. 왜냐고? 자식이랑 마누라 때문이다. 이젠 좋은 아빠, 좋은 남편 되고 싶다. 고생시킨 마누라 웃는 거 보면 용서받는 거 같다. 그리고 자식들한테 더 이상 ‘쪽’팔리고 싶지 않다”고 박 관장은 말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대응할 수 있는 펀치 기술인 ‘권도’를 창시하고, 직접 선수를 양성하면서 이름을 날려온 박현성. 한국 MMA계에서는 “펀치를 배우려면 박현성을 찾아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펀치 테크닉에 관한 최고의 귀재인 박 관장이 소설을 통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아내 정정임씨가 말하는 박성현 관장
“그에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박 관장이 좌절과 절망스러운 상황을 극복하고 이 자리에 서기까지 항상 옆에서 변함없이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사람이 있다. 바로 정정임(39)씨. 박관장의 아내다.
박 관장은 운동을 하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우선 운동선수로서 박 관장은 타고난 몸과 운동 신경이 뛰어나다. 보통사람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체격이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건 박 관장을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보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정상인의 몸이 아닌 장애인데 항상 노력하는 것을 보면 제가 봐도 대단해요. 정말 노력하는 사람이고 운동에 대한 열정이 강한 사람”이라고 아내 정 씨는 박 관장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 동안 박 관장 옆에서 함께 살아오면서 많은 고생을 해온 것으로 아는데 삶에 대해 후회는 없느냐는 질문에 “주변의 반대를 무릅 쓰고 박현성을 선택한 것은 저의 선택이었어요. 어렵게 선택해 놓고 그 길을 포기했다면 아마도 주변의 비웃음을 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전 그러고 싶진 않았어요. 그때는 정말 많이 어렵고 힘들었죠”라며 “지금 본인이 가장 잘 하는 것을 하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고 저 또한 기뻐요.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항상 옆에서 박 관장 일을 도우며 살아야죠”라며 한 때 삶을 포기할 뻔 했던 그에게 삶의 의욕을 불어 넣어준 정 씨는 웃으면서 말한다.
구명석 gms7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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