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아이스하키협회가 여자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비와 장비구입비 등 수천만원대의 공금을 유용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또 여자 국가대표팀의 장비구입비 일부를 유용한 것에 대해서도 담당부서인 경기운영부의 조사 결과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대한아이스하키협회에 대해서 감독 기관인 대한체육회가 감사에 착수했다. 체육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산하 50여개 단체에 대해서도 공금유용 여부를 캐기 위해 전면적인 감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여자 국가대표 선수단 식비, 장비 구입비마저 유용
대한체육회, 혐의사실 밝혀질 경우 전액 환수 계획
“운동하고 싶으면 호소문 철회하라”
여자 국가대표팀의 훈련비와 장비구입비, 선수들 식비 일부를 유용한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는 대한아이스하키협회에 대해 대한체육회가 지난 10일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다. 또 아이스하키 원로와 지도자들도 가칭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정확한 사태 파악에 나섰다.
5년 넘게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던 선수들이 땀과 젊음을 바쳤던 빙판을 갑자기 떠나야 할 처지에 놓였다. 아이스하키협회 집행부의 공금 횡령 의혹을 제기한 호소문에 사인은 했다는 이유로 협회측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최보영 선수는 “사인 하나 한 것에 운동 그만둬야 하나… 그만둬야겠다 생각도 했지만 한편 너무 억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 7년 이상 국가대표팀에서 운동을 해온 한애리 선수는 “운동하고 싶으면 호소문을 철회하고, 하기 싫으면 나오지 말라고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고 많이 고민했다. 협회에서는 선수들이 사인한 것에 대해서 보영언니가 선수들을 선동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선수들이 직접 자발적으로 사인을 했다. 저도 비록 선수 생활을 못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사인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선수들이 먼저 협회의 비리 의혹을 제기한 부분은 자신들의 식비에 대해서다. 대한체육회 규정에 따르면 훈련 기간에 선수들에게 하루 2만4,000원씩의 식비가 지급된다. 이에 따라 지난 11월부터 대한체육회가 선수들의 식비 명목으로 협회에 지원한 금액은 7,000여만원에 달한다. 그러나, 선수들은 자신들이 사용한 금액은 3,000만원이 채 안된다고 밝혔다. 협회는 영수증을 첨부해 체육회에 정상적으로 보고했다고 변명하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 국가대표 선수를 해온 황보영 선수는 “팀에서 제명 시킨다는 얘기는 협회로부터 직접 들은 것은 아니고 주변사람들을 통해 들었다. 장비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감독님께 여러번 말씀 드렸지만 달라지는 것이 전혀 없었다. 예전에 입던 얇은 팬츠는 스틱에만 맞아도 많이 아팠다. 때문에 직접 사비로 사서 입었다. 대부분 선수들이 장비가 오래되고 망가져서 각자 자기 돈으로 장비를 구입했다”고 실정을 폭로했다.
협회는 선수들이 장비교체를 계속 요구하자 체육회에 지원을 요청해 구입비 2,500여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협회가 선수들에게 지급한 것은 고작 400만원 상당의 골키퍼 장비 한세트. 결국 나머지 2,000여 만원을 협회가 유용한 것이다.
“편법은 인정 …횡령 절대 없다”
사태가 불거지자 감독기관인 대한체육회는 실태파악에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대한체육회로부터 지원받은 여자 국가대표 선수들의 장비 구입비와 식비를 유용했다는 보도에 대해 “식비를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스하키협회는 장비 구입비를 유용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환규 협회 전무이사는 식비에 대해 “편법을 쓴 건 사실이다”며 “횡령 같은 건 절대 없다. 아마추어 종목이라 살림살이도 어렵고 해서 식비의 일부를 떼어 남은 훈련에 쓰려고 따로 저축을 해뒀다”고 말했다. 이 전무는 선수 식비를 받은 뒤 가짜 영수증을 발급받아 제출해 정산하는 편법으로 ‘비자금’을 만들어온 점도 시인했다. 다음 달에 예정된 일본과 연습경기 등 한일 친선교류 등에 쓸 자금으로 모아뒀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수 식비로 규정된 지원금을 자체행사 비용으로 돌린 데다 빼돌린 차액의 용처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징계를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을 관장하는 백현섭 태릉선수촌 훈련부장은 “우선 감사실에 의뢰를 해서 감사에 들어갔다. 조사를 해서 문제가 드러나면 감사 결과에 따라 훈련비 환수 및 관련자 문책 등을 건의하겠다”고 했다.
한체육회, “유용 사실 적발되면 지원금 전액 환수”
체육회는 경기단체가 선수촌 밖에서 치르는 대표팀 훈련에 대해 선수당 한 끼 8,000원씩 날마다 2만4,000원의 식비를 제공하고 있다. 태릉선수촌 훈련지원부에 따르면 여자 대표팀은 공금유용 논란이 제기된 지난 해 11월부터 올해 1월, 2월, 5월, 6월 등 최근 5개월 동안 촌외 훈련을 치르며 서류상으로는 모두 5,246만462원을 썼다. 하지만 선수촌으로부터 지원받은 공금을 선수들에게 제대로 집행하지 않고 가짜 영수증을 발급받아 정산하는 편법으로 ‘비자금’을 마련한 것이다. 또한 협회는 장비구입 목적으로 2,500만원을 지원받았으나 이 역시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환규 전무는 “장비 구입비를 빼돌렸다는 말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체육회로부터 받은 장비 구입비 2,500만원은 공개입찰을 통해 선정된 장비점에 전부 맡겨 선수들이 필요할 때마다 장비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박태호 체육회 운영부장은 “감사를 실시해 유용 사실이 적발되면 지원금 전액을 환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에리사 태릉선수촌장은 “아이스하키협회가 언론에서 보도된 대로 훈련비 유용 여부에 대해 조사를 벌여 사실로 드러날 경우 유용된 훈련비 환수는 물론, 차후 훈련비 지급 중단 등의 조치를 내리겠다”고 밝혔다.
한편 2003년 대한우슈협회가 촌외 훈련비 600여만원, 2004년에는 대한요트협회가 4,800만원 가량의 훈련비를 유용한 사실이 적발됐으며 당시 체육회는 유용액 전부를 환수한 뒤 6개월간 훈련비 지급을 중단했었다. 이번 문제로 인해 대한체육회 감사실은 대한아이스하키협회를 포함해 산하 50개 경기단체들의 훈련 지원비에 대한 자료를 태릉선수촌 훈련부로부터 넘겨받아 전면적인 감사를 실시하고 있다
구명석 gms7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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