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순간도 나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잊은 적이 없었다. 일본에서의 농구는 모두 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온 하은주, 신한은행에 입단하면서 새 출발 새 각오를 밝혔다. 지난 2003년 한국 여자 농구를 이끌어 갈 차세대 선수로 주목받던 그가 갑작스레 일본으로 귀화, 농구 관계자들과 팬들에게 충격과 실망감을 안겨 주었던 하은주. 하지만 그녀는 3년만에 다시 고국의 품으로 돌아와 신한은행에서 제2의 농구인생을 시작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여자프로농구 신한은행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안산 와동체육관을 찾았다. 하은주는 무릎 부상으로 인해 재활 훈련 중이었지만, 하은주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아보였다. 하은주는 자신에 대한 얘기와 한국에 다시 돌아온 이유, 동생 하승진 등에 대해 솔직담백하게 얘기를 풀어놓았다.
일본 생활 완전히 청산 “전주원 선배와 뛰고 싶어”
WNBA 진출 빠르면 내년…신한은행 “적극 협조”
하은주를 만나기 위해 신한은행 여자프로농구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안산 와동체육관을 찾았다. 최고참 선수 전주원을 비롯해 선수들이 체력 훈련에 한창이었지만 신한은행의 새 얼굴 하은주(23·202cm)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하은주, 신한은행 입단 새 출발
하은주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인해 첫 훈련부터 동료들과 함께 하지 못한 채 체육관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웨이트장에서 재활훈련에 한창이었다.
하은주는 지난 1일 신한은행에 전격 입단했다. 계약 기간은 5년이며 연봉은 1억2,000만원으로 결정됐다. 이로써 지난 6월초 일본에서 한국으로 국적 회복을 한다고 발표했던 하은주는 신한은행 34번 유니폼을 입고 내년 1월5일 개막 예정인 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에 뛰게 됐다.
신한은행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 하은주는 “이번 여자 프로 농구 플레이오프전을 보면서 신한은행이 눈에 띄었다. 팀 분위기가 너무 좋아 보였다. 또 중학교 대선배인 전주원 선배와 함께 뛰어보고 싶었다. 최고의 가드인 전주원 선배와 호흡을 맞추면 더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집이 구단과 가까운 점도 하나의 이유”라고 설명하며 “신한은행에 들어와 정말 기쁘다. 저를 뽑아 준 신한은행에 감사하며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또 배운다는 자세로 열심히 하겠다”고 입단 소감을 밝혔다.
“일본 대표로 뛸 생각은 없다”
선일중 농구부 시절, 무릎 수술로 더 이상 농구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던 하은주는 당시 학교 측에 전학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오랜 실랑이 끝에 “다른 학교에서는 절대 농구를 하지 않겠다”는 ‘선수 포기각서’를 써야만 했다. 어린 마음에 당시의 일은 큰 상처가 됐고, 결국 일본행을 선택하는 원인이 됐다. 이 때문에 지난 2003년 하은주가 일본에 귀화했을 당시 주위에서는 “일본 대표로 뛰면서 한국을 상대로 분풀이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아닌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하은주는 “한국에 복수하겠다는 식의 기사를 보고 놀랐다”며 “2003년 제가 일본으로 귀화했던 이유는 한국에서 농구를 할 수 없어 일본 실업팀 입단을 하기 위해서였다. 일장기를 단 일본국가대표가 되려한 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환경 속에서 농구를 배우고 경험을 쌓아 미국 여자 프로 농구(WNBA)에 진출하기 위해서 일본에 귀화했지만 일본 대표로 뛸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여자프로농구(WNBA)로 진출하려 하자 일본여자농구협회와 일본 샹송화장품이 반대하면서 일본국가대표 선수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하은주는 가족과 조국을 배반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하은주는 한국으로의 국적 회복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를 “일본 대표로 뛰지 않기 위해서”라는 답을 내놓았다.
하은주는 일본 생활에 대해 “차별도 없었고, 모든 것이 다 좋았다”며 “그러나 끊임없이 일본 국가대표에 합류하라는 요청을 받았고 거절하는 과정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털어놨다. 하은주는 “일본에 귀화하면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identity)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는데 계속되는 일본농구협회의 요청에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어 한국으로 돌아올 것을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더 큰 그릇이 되기 위한 과정”
하은주의 가족은 농구 가족이다. 아버지는 70년대 후반 대표팀 센터를 지냈던 하동기(48·200㎝)씨, 동생은 ‘공룡센터’ 샤킬 오닐을 동경하다 같은 코트에서 뛰게 된 한국 유일의 미프로농구(NBA) 선수인 하승진(21·223cm)이다. 바로 농구엘리트 가족인 셈. 하은주는 이미 초등학교 4학년 때 1m60cm의 큰 키로 한국여자농구의 될성부른 꿈나무로 낙점 받았다. 농구선수로서 타고난 체격조건에 좋은 머리는 플러스 알파였다. 하승진에게 누나인 하은주의 존재는 특별하다. 승진이 농구를 시작하게 된 것도 초등학교 때부터 선수로 뛴 누나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요즘 들어 하은주는 누나로서 동생 하승진에 대해 안쓰러움 마음이 든다.
“그 어린 애가 미국에 혼자 가서 외국 선수들과 어울리려고 애쓰고 그 힘든 훈련을 소화하는 것을 지켜보면 정말 안쓰럽다”라는 하은주는 “그래도 모든 과정을 잘 견디고 있는 승진이를 보면 대견하다”며 “사람들은 결과만을 가지고 쉽게 이야기하는데 그 뒤에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포틀랜드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최근 밀워키로 트레이드된 데 대한 주위의 실망스럽다는 듯한 시선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하승진을 “강한 아이”라고 표현한 하은주는 동생과 자신을 ‘그릇을 만드는 과정’에 비유했다. “동생과 저, 지금은 많이 부족하고 미약한 그릇이지만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담고 품을 수 있도록 좀 더 큰 그릇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말하며 “크리스천인 승진이와 제가 외국에서 생활할 때 어렵고 힘든 환경을 잘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기도와 신앙의 힘”이었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하은주는 일본에서의 농구는 이제 모두 잊어버리겠다는 선언을 했다. 신인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 재활을 위해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하은주는 이미 새로운 출발선의 스타트를 끊었다.
신한은행에 입단한 하은주가 빠르면 내년 상반기에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에 진출할 수도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만약 하은주가 내년에 WNBA에 진출한다면 이미 NBA에서 뛰고 있는 동생 하승진과 함께 두 남매의 웅비가 더욱 세계무대에서 주목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WNBA 진출 빠르면 내년
신한은행은 지난 6일 ‘하은주가 원한다면 WNBA 진출에 적극 협조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하은주는 지난 2월 미국 LA스파크스와 2년 계약을 맺었으며 그 계약은 여전히 유효하다.
신한은행 에스버드 농구단의 김동윤 사무국장은 “WNBA는 5~8월에 정기 리그가 열리므로, 하은주가 WNBA에 참가하더라도 국내 겨울리그에는 전혀 지장이 없고, 여름 리그도 플레이오프 때부터 뛴다면 신한은행이 4강에 들 수 있어 괜찮다”고 말했다. 특히 하은주의 WNBA 진출에 있어 긍정적인 것은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이 세계선수권 대회 참가를 위해 여름·겨울의 연중 2번의 리그를 겨울리그만으로 단일화하도록 의견조율을 해나가는 분위기 때문이다.
하은주의 아버지 하동기씨는 “WNBA는 은주가 지금까지 꿈꾸어온 것이다. WNBA에서 한번 뛰어 봤으면 하는 바람은 지금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 장기적으로 뛰겠느냐”며 “우리나라처럼 미국에선 숙소도 없고 연봉도 많지 않으니 한번 가보면 본인도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미국프로농구 진출과 관련한 질문에 하은주 역시 “아무리 내 꿈이 WNBA 진출이긴 하지만, 일단 신한은행에 입단한 이상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최대한 공헌할 생각이다. 공헌도를 팀에서 인정받으면 그 다음 미국 WNBA 진출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
그녀는 올 연말이전에 국적을 회복, 12월의 아시안게임 출전을 희망하고 있다.
신한은행 농구단 김동윤 사무국장이 말하는 하은주 선수
“그에게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하은주는 지난 1일 서울 중구 명동 로얄호텔에서 아버지 하동기씨와 오상영 신한은행 단장, 이영주 감독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신한은행 입단식을 가지고 여자프로농구 신한은행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안산 와동체육관에서 재활 훈련 중이다.
하은주 선수의 몸 상태와 컨디션은 어떠냐는 질문에 신한은행 에스버드 농구단 김동윤 사무국장은 “현재 하은주 선수는 무릎이 좋지 않은 관계로 구단 선수들과 함께 훈련에 임하지 않고 따로 재활훈련에 들어갔다. 점차 몸 상태도 좋아지고 있다”며 “현재 컨디션도 좋고 마음도 많이 편안해 보인다. 일본에서의 농구도 재미있었고 팀도 좋았지만 국적 문제로 인한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온 하은주 선수는 이제야말로 농구의 참맛을 느낀다”고 얘기했다.
“하은주에게는 다른 여자농구선수들에 비해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여자농구선수로서 우선 국내 최고의 최장신이라는 큰 장점이 있다. 또 머리를 이용한 지능적이면서도 민첩한 플레이를 한다. 그리고 리더십과 성격이 좋아 선·후배관계 속에서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하은주에 대한 김 사무국장의 평가다.
“하은주는 한국과 일본에서의 두 번의 좌절과 상처 속에 어렵게 신한은행에 정착했다. 재활을 잘 받도록 해서 하은주가 오래 선수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구단으로서 할 일이고 하은주가 WNBA 진출에 대해 원한다면 언제든지 신한은행은 적극 협조 할 것이다” 라며 “앞으로 신한은행이 하은주 선수의 미래를 향한 기반이 되도록 할 것이다. 이것은 구단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멀리 봤을 땐 국가대표팀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라고 김 국장은 전했다.
마지막으로 김 국장은 “과거의 모든 아픔과 상처는 잊고 활기차게 새 출발하길 바라고 한국 여자농구발전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힘써주는 선수가 되길 바란다”며 하은주 선수에 대해 격려의 말을 전했다. <석>
구명석 gms7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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