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 베테랑 파이터로 자리매김
7전 7승 5KO승으로 차세대 여성 격투가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는 여고생 격투가 김지연(18ㆍ인천웅비체육관)이 역시 같은 여고생인 정나리(19ㆍ진무종합체육관)를 1R 11초 만에 TKO로 꺾고 화려한 신고식을 장식했다. 지난달 11일 수원 M.A.R.C체육관에서 열린 제10회 스피릿 아마추어 리그에서 맞붙은 김지연과 정나리는 두 선수 모두 여고생 신분으로 남자들도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종합격투기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특히 종합격투기는 기술면에서 위험할 수 있고 무엇보다 여고생이 1라운드 3분씩 모두 2라운드로 진행되는 사각의 링에서 홀로 버티기도 쉽지 않아 출전 자체가 주변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막상 시합이 시작되자 두 선수의 기량차이는 컸다. 여성 종합격투기 경기가 드문 탓에 출전선수들의 기량도 일천하지만 공이 울리자 마자 김지연은 정나리에게 펀치 러시를 퍼부으며 몰아붙였고, 코너에 몰린 정나리가 더 이상 저항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레퍼리가 시합을 중단시켰다. 기대에 비해 경기가 빨리 끝나 아쉬움을 남기긴 했지만, 김지연은 멋지게 승리했다.
격투기 경기보고 격투가 꿈 품다
일약 SAL 스타덤에 오른 김지연은 현재 이희진, 김현성, 이수연, 이영주 등이 활약하고 있는 여성 종합격투계에 새바람을 일으킬 만한 재목으로 꼽히게 됐다. 격투기 운동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이때부터 격투가로서 김지연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김지연 선수는 방송을 통해 “중 2때 TV에서 종합격투기를 처음 봤는데 남자경기 밖에 없더라”며 “저 운동을 여자가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여자지만 이상하게 경기장면을 보면 볼수록 재미가 있었고 깊게 빠져 들면서 나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고 한다.한마디로, ‘도전정신’ 때문이었다는 얘기. 더불어 “굉장히 매력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부모님께 운동을 하고 싶으니 체육관에 보내 달라고 말씀을 드렸다고 한다. 하지만 김지연 선수의 어머니 김말례(42)씨는 “무슨 남자도 아니고 여자 아이가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느냐”며 반대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한 고집한다는 김지연 선수… 몇칠이 지나고 간신히 부모님을 설득하여 체육관에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김씨는 “지연이가 그냥 호기심에 몇칠 다니고 말겠지 생각하고 체육관에 보냈는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니더군요. 체육관 다니는 동안 솔직히 마음이 조마조마 했어요. 딸 가진 부모 마음 아시잖아요.” 하지만 지난달에 지연이가 참가했던 ‘스피릿 아마추어 리그’ 경기를 보고는 지연이 부모님들도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다고 한다.
김씨는 “지난달에 처음으로 지연이 경기를 보러 수원에 갔어요. 지연이가 승리했는데 저도 직접 경기를 보니깐 링 위에서의 뭔가 모를 매력이 있더군요. 그래서 지연이가 그 매력에 운동을 하는 것 같아요”라며 “솔직히 부모로서 지금도 그렇게 썩 맘이 내키진 않지만 지연이가 좋아하고 운동을 하면서 자기 몸에 대한 소중함도 배우고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되었다. 이제는 반대하는 것 보다 지연이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밀어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격투기도 여성에게 매력적인 스포츠
여고 2학년 격투가 김지연 선수에게도 운동을 하면서 어렵고 힘들 때가 있었다. 여자의 몸으로 격투기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 김지연 선수는 “부모님이 운동을 반대할 때 보다 더 힘들 때가 있다. 운동을 할 때마다 육체적으론 항상 힘들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술적인 면에서 힘들다는 것을 항상 느낀다”며 “운동이나 시합할 때 내 마음은 이때 이 기술을 쓰고 싶은데 몸이 따라 주질 않을 때가 있다. 마음만 앞서고 몸이 전혀 따라 주질 않을 때 너무나 속상하고 마음이 힘들어진다”고 고백했다.
김지연 선수도 운동량에 따른 육체적인 어려움을 부인하지 않았다. 쉽지 않은 기술 습득 과정도 힘든 부분이란다. “제가 기술 습득 속도가 좀 느려요” 지연양의 말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그를 어렵게 하는 것은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 “여자가 무슨 격투기냐?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아직도 많다”는 그의 목소리에 아쉬움과 서운함이 배어 있다.
여기에 “남자경기에 비해 여자 경기는 사람들의 관심도가 낮은 것도 힘든 점”이라고 덧붙이는 김지연 선수. 그녀는 “격투기도 충분히 여성에게 매력적인 스포츠일 수 있다”라고 말한다.어렵고 힘들 때 김지연 선수는 김진희 사범을 찾는다고 한다. “사범님은 마음이 따뜻하고 고마운 분이다. 항상 제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운동도 항상 열심히 하시는 분이기에 부족한 저로서 많이 배우고 닮아 가려고 노력한다”고 김지연 선수는 말한다.
김지연 선수의 트레이너 김진희 사범은 “신체적 조건은 타고 났다. 리치가 길어 복싱기술에 능하고 몸이 유연해 서브미션에 잘 걸리지 않는다”며 김지연 선수에 대해 평가했다. 그를 더욱 파이터로서 느낄 수 있게 하는 대목이자 왜 7전 전승의 무패행진을 벌이고 있는지 알게 해준 부분이기도 하다.
맞아도 그냥 웃어요
경기 중 상대선수와의 기 싸움에 관한 것이 궁금했다. “상대가 째려보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김지연 선수는 “그냥 웃는다”고 바로 답했다. 심지어 “맞아도 웃는다”고 말했다. ‘소리 없이 강한’ 면모를 드러내는 이 같은 대답에 “웃는 게 더 무섭다”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격투기가 어떠한 매력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김지연 선수는 “충분한 매력이 있다. 시합 때의 링 위에서의 스릴감과 승부욕은 경기를 직접 뛰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른다. 그리고 링 위에서는 적이지만 경기가 끝난 후 링 아래에서 상대선수를 만나면 같은 길을 가는 선수로서 동질감, 친근감을 갖는다. 바로 이것이 격투기의 매력이다”라고 말했다.
“최고의 여자격투가, 경찰관이 꿈”
인터뷰를 하다가 대뜸 김지연 선수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 두 가지의 대답이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격투계에서 최고의 프로 여자격투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 경찰관”이 되는 것. 전자는 그렇다쳐도 후자에 대한 궁금증에 이유를 물어보니 되돌아오는 대답이 걸작이다.
운동을 시작하기 전 다소 비행청소년이었던 자신의 경험을 살려 아이들이 움직이는 동선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하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만은 철저하다. 최근 들어 김지연 선수는 경찰행정학과라는 목표를 세우고 운동 못지않게 학업에도 열성을 보이며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간다고 한다. 경찰행정학과를 목표로 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물론 우슈 또한 배우고 있다.
운동 실력만큼 요리도 잘해요
격투가로서의 생활은 18세 여고생으로서의 평범한 삶과는 분명 다르다. “평일에는 학교, 집, 체육관이 전부다”라는 그의 말이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그에게 주말은 재충전을 위한 시간. 김지연 선수는 평일엔 소홀할 수밖에 없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주말을 통해 회복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독실한 크리스천인 김지연 선수에게 남다른 신앙이 있다. 가족들 모두 일요일이면 교회에 나간다. 일요일엔 교회에 가서 예배도 드리고 아이들을 좋아해서 유치부 교사로 봉사를 한다고 한다.
친구들도 이제는 자신의 생활을 알기 때문에 이해해주고 도와준다고 한다. 김지연 선수는 “이제 반 친구들도 나에 대해 알기 때문에 오히려 격려해주고 나를 자랑스러워해요. 한번은 친구가 TV에서 격투기 경기를 보고 와선 힘들진 않냐? 괜찮냐? 며 내가 멋있다고 말하더군요” 김지연 선수는 이어서 “수학여행을 갔는데 장기자랑 시간에 선생님들과 친구들 앞에서 격투기 시범을 보인후로 절 건드리는 남자아이들도 없거니와 제 옆에 잘 오지 않아요. 담임선생님도 제가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시고 많은 격려를 보내 주신다”고 말했다. 김지연 선수는 친구들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에 화색이 돈다. “수다도 떨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놀러도 많이 다녀요. 제 성격이 밝고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거든요.” 쉴 새 없이 여고생 특유의 수다가 뿜어져 나온다.
여기에 격투기 만큼이나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김지연 선수. 단단한 바위 틈 사이로 피어나는 한송이 야생화처럼 안 어울릴 듯 조화로운 그녀의 이중적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인터뷰를 모두 마치고 체육관을 나설 무렵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눈에 띈다. 김지연 선수의 체육관 후배들이라고 한다. 이들도 김지연 선수의 격투기 실력을 인정한 듯 “정말 잘 해요. 여자라고 무시하면 당해요”라며 그의 격투기 실력에 대해 칭찬했다.
# 김진희 사범이 말하는 김지연선수“그에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김지연 선수는 성인 남자들도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는 종합격투기에 도전, 여고생 최초로 현재 7전 7승(5KO)의 뛰어난 성적으로 여자 종합격투기의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다.하지만 그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항상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 해온 두 사람이 있다. 바로 웅비체육관의 정윤철 관장과 김진희 사범이다.
“김지연 선수에게는 다른 여자 선수들에 비해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여자 선수로서 김지은 선수는 체구도 좋고 입식 타격에서 펀치나 킥 실력이 수준급”이라며 웅비 체육관 사범이자 김지연 선수의 트레이너인 김진희 사범은 7전 7승의 경기 기록을 가지고 있는 김지연 선수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김진희 사범은 김지연 선수가 운동을 시작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운동을 해오며 인연을 맺어 오고 있다.
평상시 친근한 언니처럼 김지연 선수와 지내지만 운동에 들어가면 엄격한 사범의 모습으로 선수를 지도한다고 한다. 김 사범은 “지연이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함께 체육관에서 합기도를 수련하면서 서서히 격투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정윤철 관장으로부터 타격 기술도 배워 나갔다. 처음에는 입식 타격에 관심을 가졌지만 레슬링을 배우면서 넘어진 뒤에도 다른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종합격투기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며 김지연 선수와 함께 운동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말했다.
김 사범은 “격한 운동이라 쉽게 지칠 수도 있겠지만 김지연 선수는 167cm 62kg으로 안정된 체구를 갖췄고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운동을 해온 터라 체력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매일 체육관에 들러 2~3시간씩 운동을 해 온 김지은 선수는 펀치와 킥, 무에타이 기술 등을 차례로 터득했고 중학교 2학년이었던 2003년부터 입식타격 대회에 출전했다”고 말했다.김 사범과의 인터뷰 중 아직까지 패배를 경험해 보지 않은 지연이가 걱정스러웠는지 “저도 지금까지 여러 번의 경기를 통해 승자의 자리, 패자의 자리 모두 경험해 봤다.
하지만 패배를 했을 때의 그 충격은 뭐라 말할 수 없다. 많이 힘들었다. 그러나지연이는 아직까지 패배를 경험해보지 않고 쭉 승자의 자리만을 지켜왔다. 분명 훗날 그를 치고 올라오는 선수들이 있을 텐데 만약 패배를 경험하더라도 지연이가 좌절하지 말고 잘 이겨 냈으면 한다”며 지연이에 대한 김 사범의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석>
구명석 gms7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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