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우리의 ‘거인 4번 타자’
지난 2004년 지바 롯데 마린스에 둥지를 틀며 일본 무대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 이승엽(30·요미우리 자이언츠). 하지만 2년간 성적 부진으로 인해 자신의 과거 명성에 금이 간 것은 사실이다. 일본 진출 3년째인 200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거인 유니폼으로 새롭게 갈아입은 ‘거인 4번이승엽’은 올 시즌 최고의 타격감을 선보이며 다시 한번 일본 언론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타율 2위(0.414)와 타점 3위(15), 득점 1위(20)등 센트럴리그 타자 전 부문에서 ‘이승엽’이라는 이름을 톱 리스트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확실하게 타격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팀 내에서도 4번으로서 확실한 중심 역할을 하며 요미우리를 센트럴리그 1위로 이끌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라 다쓰노리 감독 또한 이승엽에 대해 전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지난 15일 요코하마 에이스 좌완 도이 요시히로가 선발로 등판했을 때 하라 감독은 좌완투수에 대비해 이전과 다른 타선을 배치했다. 좌타자를 빼고 모두 우타자로 기용했는데 이승엽만은 4번 자리에 그대로 남겨뒀다. 이것은 하라 감독의 이승엽에 대한 믿음이 충만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승엽 또한 2루타 2방으로 감독의 신뢰에 화답했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자동차도 타이어가 터지면 고꾸라지듯 잘 나갈 때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지난 16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 이승엽은 첫 타석과 두 번째 타석에서 일주일 만에 홈런포와 안타를 터트리며 7경기 연속 멀티 안타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 조금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나머지 세 타석에서 범타로 물러났다는 점이다. 특히 득점권에 주자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아쉽다. 만루상황인 세 번째 타석에서는 조급함 때문인지 상대투수의 견제성 나쁜 볼에 방망이가 나가는 등 조금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한껏 물오른 타자라면 누구나 치고 나가고 싶어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어떤 공이라도 치고 나갈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승엽이 알아야 할 것은 상대투수들은 그를 견제하기 시작했고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승엽이 타석에서 조급함이 보인다는 것이 단지 기우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한번 무너지면 회복하기 힘들 수 있기 때문에 잘 나갈 때일수록 조급함을 피하고 더욱 신중하고 집중해야 한다.
단백질 섭취에도 신경써
지바 롯데에서 뛰었던 지난 2년은 이승엽에게 요미우리를 위한 ‘연습경기’로 여겨질 정도로 요즘 그의 활약이 눈부시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5홈런, 10타점으로 2관왕에 오른 뒤 차오른 자신감, 그리고 요미우리 벤치의 전폭적인 믿음이 시즌 초반 폭발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지난 1월 13일. 이승엽이 전 소속팀이던 지바 롯데에서 자유계약 선수로 공시됐다. 지난 2년간 롯데에서 뛰었고, 직전까지도 “롯데에 남겠다”고 말해 왔던 이승엽이었다. 그런 이승엽이 그날 롯데를 떠나기로 최종 결정했다. 행선지는 바로 일본 최고의 명문 구단, 일본인들에게 ‘국민의 구단’으로 불리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였다. “요미우리 구단은 외국인 선수에게 배타적이고 그 팀은 한국 선수들의 무덤이다” 라는 반응에 주변 사람 모두가 반대했다. 과거 조성민, 정민철, 정민태 등이 요미우리에 진출했다가 꿈을 펼치지 못하고 보따리를 싸야했다.
이승엽은 침묵했고 공개적으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이승엽은 주변 사람들에게 e-메일로 심정을 전했다. 그는 “모든 건 올해 성적이 말해 줄 것이다. 성적이 내 선택의 옳고 그름을 가려 줄 것 아니겠느냐”고 자신의 의사를 전했다. 소신 있게 도전해 보겠다는 의미였다.그는 요미우리로 옮기면서 연봉이 깎이는 것도 감수했다. 지난해 롯데에서 2억엔(약 16억2,000만원)을 받았던 그는 그 연봉을 보장해 준다는 롯데를 뿌리치고 1억6,000만엔(약 13억원)에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었다. 이승엽이 적은 돈을 받아가면서까지 갈망한 것은 단순했다. 경기에 나가는 것이었다. 롯데에서의 이승엽은 지명타자나 대타로 뛰는 반쪽 선수일 수밖에 없었다. 주전 1루수 후쿠라가 있었고, 밸런타인 감독은 이승엽에게 왼손 투수를 상대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승엽은 요미우리로의 도전을 선택했고 그것은 모험이었다. 일단 선택을 내린 이승엽은 앞만 보고 달렸다. 지난겨울 고향인 대구의 세진헬스클럽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 파워를 키웠다.
체형도 메이저 리거급
삼성 시절만을 기억하는 팬들이 오랜만에 이승엽을 만나면 먼저 불어난 몸집에 깜짝 놀란다. 지바 롯데 시절과 비교해도 훨씬 ‘메이저리그 체형’에 가까워졌다. 몸무게는 8㎏(92㎏→100㎏.요즘은 96㎏ 유지) 늘렸고, 허벅지 둘레는 웬만한 여자 허리보다 굵은 28인치에 이르고 있다. 이승엽은 스토브리그서 상체 근육 단련에 매달렸다. 지난 2년간 지바 롯데에서 뛰면서 공 끝이 좋고 컨트롤이 정교한 일본 투수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상체의 순발력과 힘이 중요하다는 점을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팔뚝이 16.5인치로 삼성시절보다 2인치 이상 늘어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신 방망이는 910~930g에서 900g의 가벼운 것을 사용하면서 힘보다는 방망이 스피드를 끌어 올리는 데 신경을 썼다.단백질 섭취를 위해 달걀을 하루 20개씩 먹었고 보양을 위해 장어탕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이승엽은 지난 2년간 롯데에서 좌절과 재기의 반전을 맛보며 더욱 강해졌다. 첫 해 일본 투수들의 패턴에 적응하지 못해 형편없이 고전했고, 시즌이 끝난 뒤 하루 2,000개의 스윙 훈련으로 다음 시즌을 대비했다. 손바닥은 껍질이 벗겨졌지만 가슴에는 자신감이라는 새살이 돋아났다. 그 노력의 결실이 지난해 30개의 홈런이었다. 일본 야구에의 적응, 자신감, 그리고 치밀한 분석에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무장한 이승엽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이라는 뜀틀을 만나면서 최고의 타격감각까지 보탰다. 그 절정의 타격감각으로 WBC에서 5개의 홈런을 때리고 일본 캠프에 합류한 이승엽을 요미우리 하라 감독은 ‘팀 역사상 세 번째 외국인 4번 타자’로 예우했다. 요미우리 4번 타자는 곧 ‘일본 야구 최고의 타자’로 인정하는 징표다.
자신을 인정해 주는 구단은 이승엽에게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 줬다. 그는 개막전(3월 31일)부터 홈런포를 가동했고 이후 매주 일요일에 홈런을 한 방씩 보태고 있다. “지금 감이 좋다. 일본에서는 힘을 앞세우면 결과가 좋을 수 없다는 걸 2년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가볍게, 타이밍을 맞추는 스윙이 답이다. 홈런은 그 과정에서 따라올 뿐”이라고 이승엽은 말한다.지바 롯데 마린스의 바비 밸런타인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떠난 이승엽을 “세계적인 타자”로 극찬하면서 앞날에 영광이 있기를 축복했다. 또한 밸런타인 감독은 최근 일본내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요미우리신문 영문판 ‘데일리 요미우리’ 온라인판 존 알렌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승엽은 롯데가 싫어 떠났다기 보다는 더 좋은 기회를 잡기 위해 이적한 것”이라며 “이승엽을 그리워할 것”이라며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했다.
‘이승엽-술레타’ 엇갈린 행보
이승엽과 훌리오 술레타는 지난해 비교가 자주 됐다. 둘은 나란히 퍼시픽리그에서 라이벌팀인 지바 롯데와 소프트뱅크의 외국인 간판타자로 활약했다. 특히 2년 연속 퍼시픽리그 올스타 투표에서 접전을 벌이면서 자연스럽게 라이벌이 됐다. 지난 2년간 이승엽은 꾸준히 선두를 달리다 투표 마감을 앞두고 역전을 당해 스타팅 멤버 출전이 무산됐다. 그리고 지난해 올스타로 선발됐지만 그것은 감독추천이었다. 그동안 일본에서의 활약은 술레타가 이승엽을 훨씬 앞선다. 이승엽이 일본 진출 2년간 평균타율 2할5푼1리에 통산 44홈런 132타점을 기록한 반면 술레타는 같은 기간에 무려 80홈런 199타점을 올렸다.
특히 지난해에는 타율 3할1푼9리에 43홈런 99타점으로 세 부문 모두 리그 2위에 올랐다. 하지만 올해는 입장이 달라졌다. 요미우리로 이적한 이승엽은 연일 맹타를 휘두르며 타율 4할1푼4리에 4홈런 15타점으로 질주하고 있다. 센트럴리그 타율 2위고 타점은 공동 3위다. 7경기 연속 멀티히트를 기록할 만큼 활약이 꾸준하다.하라 다쓰노리 감독이나 팀 동료들 역시 이승엽에게 무한한 신뢰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승엽 효과’라는 말도 나올 정도로 외국인 4번타자에 대해 곱지만은 않았던 시선도 싹 사라졌다. 반면, 술레타는 일본 진출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일단 타격에서 시즌 초반 5홈런을 몰아쳐 퍼시픽리그 홈런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최근 극심한 타격부진에 빠져있다. 최근 3경기 11타수 1안타에 8타수 연속 무안타다.
타율도 2할5푼4리까지 떨어졌다. 특히 술레타에게는 최근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지난 15일 니혼햄과의 경기에서 상대 투수 가네무라의 공에 왼쪽 옆구리를 강타당한 뒤 마운드로 달려가 주먹질을 해댄 것이다. 이 사건으로 가네무라는 머리, 다리, 등 쪽에 타박상을 입고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퍼시픽리그측은 술레타에게 10경기 출장정지에 제재금 30만엔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10경기 출장정지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제재. 지난해 주니치의 타이론 우즈는 빈볼을 던진 상대 투수에게 주먹을 날려 같은 징계를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피해자인 니혼햄측은 법적조치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술레타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자칫 문제가 더 커질 수도 있다. 이승엽과 술레타. 지난해 퍼시픽리그 최고 외국인타자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였던 두 주인공의 올 시즌은 이처럼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 이승엽 일본 언론 황태자 ‘등극’연일 대서특필 ‘귀하신 몸’
메이저리그 공식 사이트 mlb.com이 지난 19일(한국시간) 일본프로야구 라운드업 기사를 통해 “센트럴리그에서는 강력한 마운드와 폭발적인 타선의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팀 역사상 가장 좋은 출발을 했다”면서 지난 오프시즌 동안 요미우리에서 새로 가세한 선수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사나이 이승엽을 주된 요인으로 꼽아 눈길을 끌고 있다.일본 ‘재팬 타임즈’의 기자이자 메이저리그 공식사이트 MLB.com의 필진인 스테픈 엘세서는 지난 19일 시즌 개막 후 12승1무2패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요미우리의 소식을 전하며 “도쿄돔이 일본 야구의 중심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요미우리의 선수들 가운데 이승엽을 가장 주목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승엽과 투수 도요다 기요시, 유격수 코사카 마코토를 영입했을 때부터 기대가 높았다”면서 “WBC에서 맹활약했던 이승엽이 올해 오프시즌의 최고 수확물답게 초반의 성공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이승엽은 지바 롯데를 떠나 도쿄돔에 상쾌하게 안착했고, “이승엽은 개막전 날 도쿄돔에서 홈런을 때린 이후 지난 17일 현재 타율 4할1푼4리에 4홈런, 15타점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세 부문에서 1위를 달리는 선수는 따로 있다.
타점과 홈런에선 고쿠보 히로키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요미우리가 승승장구하는데 이승엽과 고쿠보의 맹타가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했다.이 밖에도 그가 높이 평가한 선수는 센트럴리그 타점 선두를 달리고 있는 3루수 히로키 고쿠보와 투수 코지 우에하라, 마쓰미 구와타다. “강한 투수들과 폭발적인 타자들이 있어 연승 행진이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어 일본 야구계에 불어 닥친 용병 열풍을 설명하면서 요미우리의 투수 제레미 파웰, 개리 글로버 등을 언급한 뒤 “19년만에 처음으로 요미우리의 개막전 4번타자로 나섰던 이승엽도 잊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구명석 gms7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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