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 야구’를 알리는 LG의 무패행진이 거세다. 그것도 9회말 극적인 뒤집기 승리로 짜릿함이 더했다. 지난해까지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던 LG다. 이젠 치욕을 씻고 명가 재건을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LG는 지난 29일 잠실구장에서 가진 SK와의 시범경기에서 5-6으로 뒤진 9회말 2사후 조인성의 동점타와 신예 박기남의 끝내기 안타로 7-6의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승리후 이순철(LG)감독은 “시범경기는 시범경기로 봐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감독의 승리에 대한 집념은 대단하다. 이날도 7명의 투수를 마운드에 올리며 승리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였다. LG는 SK와의 시범경기에서 절묘한 대타 작전과 투수 교체의 성공으로 7승 2무로 시범경기 단독선두를 질주했고 SK는 4연패를 당했다. LG 선발 좌완 서승화는 4이닝(2실점) 동안 안타는 한 개밖에 내주지 않았지만 사사구를 7개나 허용해 제구력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양팀은 9회까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였다.
안정된 마운드 ‘강점’
LG는 올시즌을 대비해 치밀한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탄탄해진 마운드를 앞세워 연일 무패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에는 시범경기에서 4승 1무 8패로 7위, 정규시즌 6위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LG팀이 무패행진과 함께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몰라보게 안정된 투수진이다. 시범경기 팀 방어율 2.14로 8개 구단중 1위. LG는 지난해 정규시즌 팀 방어율(4.90)이 8개 구단중 꼴찌였다. LG가 올해 9차례의 시범경기에서 내준 실점은 모두 25점. 한 경기당 평균 실점이 2.29점에 불과하고 특히 단 한 차례도 3점 이상을 내주지 않았다. 선발과 불펜진 모두 탄탄해졌다는 증거다. 여기에 시범경기 팀타율 1위(0.307)가 말해주듯 방망이도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전통적으로 ‘뛰는 야구’를 표방하는 팀답게 팀도루 1위(13개)는 물론이려니와 팀홈런 개수에서도 당당히 1위(9개)에 올랐다. 기존의 기동력에 파워까지 더해진 것.
기동력에 파워도 갖춰
선수 전력면에서는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다. 기아에 장문석 한규식 손상정을 내주고 마해영 최상덕 서동욱을 데려온 정도. 그러나 팀 관계자들은 변화의 원동력을 우선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에서 찾는다. LG는 2년 연속 정규시즌 6위에 그쳐 퇴진론에 시달렸던 이 감독을 유임시켜 힘을 실어 주었다. 이어 1990년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구단 전 선수의 연봉 계약을 지난해 12월 안에 끝마쳤다. 그 덕분에 다른 구단보다 먼저 전지훈련에 임할 수 있었다.
하와이 전지훈련 때는 투수 조련에 일가견이 있는 메이저리그 볼티모어의 레오 마조니 코치를 불러 1주일간 투수들을 지도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100승 이상을 거둔 세이부 투수코치 출신의 가토 하지메 씨를 투수 인스트럭터로, ‘부상방지 전문가’ 우토 히로유키 씨를 트레이너로 영입했다. 이렇게 공을 들인 덕분인지 지난해 불안했던 마운드가 눈에 띄게 안정됐다. 시범경기 팀 평균자책 2.13으로 8개 구단 중 1위. 팀 타율도 3할 9리로 1위다. 또 지난해는 ‘부상병동’이었지만 올해는 부상 선수들이 거의 없는 점도 고무적이다. 과연 LG가 시범경기에서의 무패행진을 본무대인 정규리그에서도 이어갈지 관심거리다.
고참선수들 솔선수범
프로야구 LG의 시범경기 ‘신바람’ 뒤에는 노병스타들의 활약도 힘이 됐다. 지난 정규시즌 6위로 일찌감치 퇴장했던 LG는 구심적 역할을 할 선수가 없다는 게 고심거리였다. 주장이던 조인성 (31)을 비롯해 고참 최동수(35), 김정민(36) 등 베테랑이 1, 2군을 오가는 통에 선수단의 사기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하지만 올해는 일찌감치 시범경기부터 주장 서용빈 (35), 이적생 마해영(36)과 최상덕(35) 등이 그라운드와 벤치에서 분위기를 다잡고 있다.
서용빈은 관례인 선수단 투표를 거치지 않고 이 감독의 특명을 받아 바로 주장 완장을 찼다. 지난 시즌에는 2군을 전전했지만 올 시범경기에서 10타수 4안타로 맹타를 휘두르는 데다 벤치에서도 “좋아∼좋아∼!” 등 추임새를 적기에 쏟아 후배선수들의 파이팅을 북돋고 있다. 서용빈과 더불어 스타이면서 동시에 팀 내 최고참인 마해영의 “좋아∼” 한 마디면 선수들이 순간 움찔 하면서 자극을 받는다는 게 구단 관계자의 전언이다.
마해영은 대타로 나오게 되더라도 호명을 받기 1∼2회 전에 일찌감치 더그아웃 앞으로 나와 배트를 휘두르는 등 솔선수범하고 있다. 마해영과 함께 기아에서 건너온 베테랑 투수 최상덕은 지난 29일 SK전에서 신인 김기표가 3-3으로 맞선 8회초에 등판하자 내야 관중석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는 김기표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관중을 가장하고 “김기표 잘 한다∼ 그런데 엉덩이가 바지 먹었다!”고 소리쳤다. 피식 웃은 김기표는 1이닝을 1안타 2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았고 공수교대 후 박병호의 결승타에 힘입어 승리투수 기쁨까지 누렸다.
감독 지도력도 빛나
시범 경기 1위를 질주중인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이 감독이 4월8일 정규 시즌 개막 전까지 ‘필승 방정식’에 대한 해법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여파로 아직 선발 요원을 확정 짓지 못한 팀들이 많은 가운데 올시즌 부활을 준비중인 LG로서는 분명 다른 팀에 비해 한 발 앞서가고 있는 분위기다. ‘필승 방정식’이란 선발에서 중간-마무리로 이어지는 필승 계투조를 의미한다. 지난해 삼성 라이온즈를 한국시리즈로 이끈 것은 탄탄한 선발진과 권오준(K)-오승환(O)으로 이어지는 KO 펀치의 무서운 존재 덕분이었다.
권오준 외에도 안지만과 박석진 등 두터운 허리를 보유하고 있던 삼성은 팀 컬러를 ‘공격 야구’에서 ‘지키는 야구’로 완벽하게 바꾸면서 통산 3번째 우승 타이틀을 안았다. 투수의 분업화가 정착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무리를 보좌하는 필승 계투조의 존재는 우승의 필수적인 요소로 꼽혀왔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왜 시범경기에서 이렇게 열심히 하느냐”는 질문에 이 감독은 “우리한테는 연습을 실전같이 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답했다. 이 감독은 “사실 우리가 3년 동안 성적을 못 내지 않았느냐”며 “올해는 외국인 타자도 없어 끈질기게 짜임새 있는 야구를 할 수밖에 없다. 선수들에게 이런 야구를 해야 한다는 걸 인지시키기 위해서라도 시범경기도 연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실전같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감독의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된 듯 SK와의 경기에서 이날 끝내기 안타를 친 박기남은 경기 후에 “시범경기지만 선수 개개인이 어떻게든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쳤고 시즌개막 후에도 그렇게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2년 이후 4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는 LG가 승리를 부르는 계투조를 어떻게 완성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구명석 gms7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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