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명가’ 차붐열기 ‘여전’
축구 ‘명가’ 차붐열기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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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03-14 09:00
  • 승인 2006.03.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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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독일 월드컵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전국민들은 또한번의 ‘신화창조’를 기대하면서 눈과 귀를 독일쪽으로 열어놓고 있다.G조에 속해있는 우리나라는 아트사커로 세계 최강의 자리를 넘보고 있는 프랑스, 압박축구의 대명사인 스위스와 상대해야 한다.물론 토고도 만만하지 않지만 16강 진출을 위해서는 유럽축구를 넘어야 한다. 따라서 본지는 유럽축구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축구전문 칼럼니스트인 서형욱씨의 <유럽축구기행·살림출판사>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2001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여섯 시간을 체류한 게 이 도시에 관한 내 첫 번째 기억이다. 부푼 꿈을 안고 떠난 삼 주 간의 배낭여행은 런던과 파리, 루체른, 그리고 이탈리아의 로마와 페루지아를 거쳐 밀라노에서 끝나기로 되어 있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멀리 프랑크푸르트 공항까지 이동해야 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공항 면세점 언저리 벤치에 앉자마자 그간의 긴장이 풀리며 온몸이 축 늘어졌다. 비행기가 뜨려면 아직도 한참을 기다려야 해 일행들과 함께 공항 안쪽의 레스토랑에 앉아 간단하게 요기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또 하나의 인상적인 기억을 담아가게 된다. 기억의 주인공은 레스토랑 반대편 테이블에 앉아있던 노신사. 그는, 내가 칼로 자른 소시지를 포크로 찍어 입 안에 넣을 즈음 우리쪽 테이블로 다가왔다. 게르만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가 던진 영어는 꽤나 어이없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할망구랑 내기했거든. 당신들 중국인이오, 일본인이오?”라니. 입에 다 들어간 소시지를 빼낸 나는 심퉁맞은 말투로 답했다. “한국에서 왔어요. 코리아. 알겠어요?” 머쓱한 표정으로 등을 돌린 노신사를 향해 눈을 한 번 흘긴 뒤 먹던 음식을 계속 집어먹는데 이 아저씨, 부인까지 끌고와 다시 말을 건다. ‘취미 한 번 별나시군.’ 못 본 척 하며 케첩을 찾던 내게 싱글싱글 웃는 표정으로 다가선 노신사는 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졌다. “차붐은 요즘 뭐해요?” 한국사람인 거 몰라줘서 심통 나 있던 우리 일행의 표정은 순식간에 환하게 바뀌었다.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우리는 바이에른 레버쿠젠 구단의 연고지에서 오래 살았다는 할머니와 반갑게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이 한국에 관해 아는 것은 김치와 차범근이 전부라며, 차범근은 자신이 지켜본 가장 ‘나이스’한 축구선수라고 했다. 또다른 차붐신화 만들어야
그가 레버쿠젠 유니폼을 입고 챔피언(1988년 UEFA컵)에 오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추억에 잠긴 표정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는 할머니 옆에서 우리도 느릿느릿한 영어로 맞장구를 치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여행 막바지에 기진맥진한 상태로 서울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나는 뜻밖의 손님 덕에 반가운 기억을 안고 유럽을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 뒤 유럽 곳곳에서 확인한 ‘차붐’의 흔적을 가장 처음으로 맞닥뜨린 순간이기도 했다. 다시 프랑크푸르트를 찾은 건 2년 반이 지난 2003년 9월이다. 리버풀의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여정을 짜던 내게 프랑크푸르트는 빼놓을 수 없는 목적지다. 또 다른 차붐이 분데스리가에서 활약 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이 도시는 두 해 전 짧게 스친 공항에서의 작은 만남으로 인해 더욱 강하게 나를 끌어당겼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프랑크푸르트 팀에 입단한 차두리는 인간적인 매력이 폴폴 나는 친구다. 아버지의 꿈을 선망하던 그는 이제 ‘또 다른 차붐’이 되어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었다. 넓은 집에 혼자 사는 그의 일상은 조금은 따분해 보였지만 꿈꾸던 유럽 리그에서 남은 꿈을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해 뛰는 모습에선 일말의 후회나 아쉬움도 느낄 수 없었다. 주위의 기대가 크고 그로 인한 부담 때문에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을지 모르지만 태어난 도시로 돌아와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한 20대 청년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K리그 프로팀 유니폼도 등장
넉 달 만에 돌아온 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 구단이 운영하는 팬숍은 역전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역사 앞 찻길을 건너 직진해 10분 정도 걸어가면 40평 규모로 차려진 ‘아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구단의 마크가 박힌 하얀색 간판이 보인다. 현실은 2부 리그 강등 위기에 몰려있지만 과거는 언제나 화려해서 우승 당시의 감격을 담아낸 여러 개의 액자와 기념품들이 매장 곳곳에 늘어서 있다. 이제껏 들러 본 다른 구단의 팬숍에 비해 독특한 점은 다른 구단의 유니폼들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도 신기해 진열대를 뒤적이다 보니 익숙한 유니폼이 눈에 띈다. K리그팀 부천SK의 빨간색 유니폼이 한글로 된 광고 문구까지 앞쪽에 얹은 채로 한켠에 걸려있는 것이 아닌가. 프랑크푸르트 팀 용품 판매만으로는 먹고 살기 어려운 매장 주인의 발상인지, 독일 구단 전체가 이런 식으로 팬숍을 운영하는지는 끝내 알아내지 못했지만 어쨌든 기이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프랑크푸르트 한 가운데서 한국 프로축구팀의 유니폼을 맞닥뜨리게 될 줄이야. 잠시, 동대문 축구용품점에 온 기분이 든다. 유럽의 축구팬들은 이처럼 다른 도시에 원정응원을 나올 때면 단순히 축구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을 두루두루 둘러보며 여행하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고 한다. 축구를 통해 각 지역의 문화와 정서가 자연스럽게 교류하고 맞닿는 것이다. 요즘 동아시아 축구계가 추진하는 한국-중국-일본 3개국 간의 챔피언스리그도 길게 볼 때 축구만이 아니라 문화적 교류를 통해 서로 간의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차두리가 뛰는 프랑크푸르트는 독일 최고의 명문팀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홈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미하엘 발락, 올리버 칸, 로이 매카이 등의 걸출한 선수들이 즐비한 바이에른 뮌헨은 유럽 전역이 두려워하는 막강 전력의 팀이다. 더군다나 이 무렵의 프랑크푸르트는 강등권 탈출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하는, 그러니까 뮌헨과는 처지가 하늘과 땅 차이인 팀이다. 바이에른 뮌헨을 잡아라
‘원조 차붐’을 내세워 UEFA컵을 거머쥘 1980년 당시의 위풍당당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승부가 아니다. 또 하나의 한국 선수가 강팀의 쟁쟁한 선수들을 상대로 유럽 1부 리그의 그라운드를 내지르는 장면을 눈앞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이 소중할 뿐이다. 스타의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잇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2세의 성장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이만큼 흥미로운 화제도 없다. 아버지가 유럽컵을 들어올린 팀에서 유럽에서의 선수경력을 시작한 차두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축구스타의 2세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 중의 하나는 ‘스타’의 유전자가 그들에게 이식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서 축구스타의 아들이 아버지보다 뛰어난 선수로 성장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 축구 스타 대부분은 자신의 아들들을 축구선수로 데뷔시켰지만 객관적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은 경우는 많지 않다. ‘축구황제’ 펠레, ‘카이저’ 베켄바우어의 아들 역시 선수로 데뷔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펠레의 아들 에딩요는 산토스 팀의 골키퍼로 활동했으나 이름을 날리지 못했고 베켄바우어의 아들 스테판도 바이에른 뮌헨-뉘른베르크 등을 전전하며 선수생활을 했지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스테판 베켄바우어는 한동안 J리그 이적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슈퍼스타급 선수들 중에서 아들 육성에 성공한 케이스를 꼽으라면 네덜란드의 영웅 요한 크루이프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아들 요르디는 아버지만한 명성을 잇지는 못했지만 네덜란드 대표 유로1996에 출전했고 클럽팀을 이끌고 UEFA컵 결승전에 출전한 일도 있다.차두리도 ‘인기맨’
영국에서는 이안 라이트 부자를 빼놓을 수 없다. 명문 아스날의 전설적인 공격수 이안 라이트의 양아들인 숀 라이트-필립스는 맨체스터 시티의 오른쪽 날개로 뛰며 맹활약 중이다. 얼마 전 잉글랜드 대표팀에 발탁된 그는 멀지 않아 데이비드 베컴을 밀어낼 것이라는 극찬을 받고 있다. 한편, 숀의 동생 브래들리도 현재 같은 팀(맨체스터 시티) 1군에서 공격수로 뛰고 있어 ‘게리-필’ 네빌 형제에 이은 또 하나의 ‘형제 국가대표’ 탄생이 기대된다. 숀-브래들리 형제와 같은 팀에는 또다른 스타의 아들이 대물림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지난 19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3관왕을 이끈 걸출한 골키퍼 페테르 슈마이켈의 아들 캐스퍼가 그 주인공이다. 현재 맨체스터 시티의 2군팀에서 활약 중인 그는 아버지와 달리 아직 키가 182cm에 불과하지만 지금도 키가 계속 크는 중인데다 아버지의 감각을 물려받아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밖에 아이슬란드 출신의 첼시 공격수 아이두르 구디욘센은 최근 팀의 주전 공격수로 뛰면서 주가를 높이고 있는데 아직 자국 내에서는 아버지의 명성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것이 중평이다. 벨기에 안더레흐트, 프랑스 보르도 등에서 활약한 그의 아버지 아노르는 선수생활 내내 대표팀 공격의 핵으로 활약했다.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어린시절부터 유망주로 불리던 구드욘센은 16세 때 PSV에인트호벤에 입단한 뒤 볼튼과 첼시를 거치며 수준급 공격수로 발돋움했다. 재미있는 것은 아이두르의 A매치 데뷔전이 아버지(아노르) 은퇴경기와 같다는 사실이다. 당시 18살의 아이두르는 마흔 살의 아버지와 교체투입돼 관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구명석 기자> gms75@ilyoseoul.co.kr<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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