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군단’삼성, ‘돌풍의 핵’두산 양강체제 구축
시즌 중반까지 가장 눈에 띄는 팀은 ‘호화군단’삼성과 ‘젊은 팀’두산. 이 두 팀은 일찌감치 양강체제를 형성하며 포스트시즌을 향해 순항하고 있다.삼성의 독주는 시즌 전부터 이미 예견됐던 일. 지난 오프시즌 동안 99억원을 들여 심정수, 박진만을 영입해 ‘사자등에 날개’를 달았고, 최고의 에이스로 거듭난 배영수와 수준급 용병 바르가스의 영입으로 공수 양면에서 물샐틈없는 전력을 보유한 것. 명성에 걸맞게 삼성은 개막전부터 줄곧 1위 자리를 차지하고 한 번도 내주지 않고 있다.삼성의 독주 원동력은 ‘예상밖으로’탄탄한 투수력과 짜임새 있는 조직력에 있다.
8개 구단 최고로 손꼽히는 공격력이 무기력증을 보이는 가운데 오히려 투수들의 ‘지키는 야구’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삼성의 지키는 야구에는 투수출신 선동렬 감독의 노하우가 크게 작용했다. 선 감독이 투수코치시절 조련한 에이스 배영수는 현재 다승과 탈삼진에서 3위, 방어율 2위 등 전방위 활약을 펼치고 있다.선발 이외에 중간계투진과 마무리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삼성의 중간계투진에 스타는 없지만 20대 초반의 오승환, 안지만 등 신인급 선수들이 알토란같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마무리 권오준도 노장진과 함께 세이브왕을 다투며 뒷문 단속을 하고 있다.호화군단 삼성의 독주가 예상된 일이라면 두산의 선전은 상반기 가장 ‘쇼킹’한 사건이다.
오프시즌 동안 특별한 전력보강이 없었던 두산은 시즌 전 하위권으로 분류됐지만 현재 단독 2위에 올라 선두 삼성을 위협하고 있다.두산 상승세의 가장 큰 요인은 역시 무서운 공격력이다. 팀타율, 득점, 출루율, 최소삼진 등 공격 부분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다.특히 두산 상승세에는 ‘신구 조화’와 팀 융합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시리즈 우승의 경험이 있는 김동주, 홍성흔 등 베테랑들이 파이팅을 보이며 신인급들을 독려하며 팀을 이끌고 있는 것.마운드에서는 박명환과 신인 김명제가 제 몫을 다하고 있다. 또 혜성처럼 나타난 정재훈도 19세이브로 마무리 부분 1위에 랭크되며 마무리 투수 부재에 고심하던 두산 마운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꼴찌후보 롯데, 한화 대약진 속 우승후보 기아 몰락
두산과 함께 전반기 프로야구 돌풍을 이끈 주역은 만년 꼴찌 롯데다. 전문가들로부터 “올해도 하위권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비관적 진단을 받았지만 5월 중순까지는 선두권을 넘볼 정도로 선전했고 부산에 야구붐을 부활시킨 진원지가 됐다. 롯데는 6월 들어 9연패를 당하며 상승세가 주춤했지만 젊은 유망주들이 성장하면서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에이스 손민한은 다승 1위의 맹위를 떨치고 있고 이용훈도 삼진 1위를 질주하는 등 허약했던 롯데 마운드의 중심축으로 자리잡았다. 여기에 중간계투 요원인 신인 이왕기, 구원부문 1위인 마무리 노장진이 뒷문을 단속하고 있다.공격에서는 이대호, 박기혁 등 젊은 선수들의 활약과 펠로우, 라이온 등 용병의 활약이 어우러져 예전의 위용을 되찾았다.
롯데와 함께 최하위권으로 분류됐던 한화도 6월 들어 9연승의 돌풍을 일으키며 단숨에 3위로 도약했다. 한화 돌풍의 중심에는 김태균이 있다. 시즌 초반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타격을 보였던 김태균은 최근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4번 타자의 강력함을 완전히 되찾았다.김태균의 최근 성적을 살펴보면 놀랍다 못해 무시무시할 정도다. 연속경기 만루홈런은 물론 매경기 최소 2타점 이상을 올리며 연일 팀승리에 일등공신이 되고 있다.투수진에서는 김해님과 윤규진이 눈에 띈다. 송진우가 부상에 시달리고 타 구단에 비해 선발진의 중량감이 떨어지는 상태에서 김해님은 5승을 챙기며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윤규진도 4세이브 3홀드로 구대성이 빠진 마무리 공백을 메워주고 있다.롯데, 한화의 활약과 더불어 최강 삼성을 견제할 유력한 카드로 평가받았던 기아, 현대의 동반 부진도 눈에 띈다.
현대는 심정수, 박진만이 빠진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중하위권에 처져 있다. 용병 서튼이 최고의 활약을 보이고 있지만 톱타자 전준호, 포수 김동수 등 ‘믿었던’노장들이 2할대 초반의 극도의 빈타에 시달리고 있고 정민태, 임선동이 부진의 늪에 빠져 있어 디펜딩 챔피언팀의 자존심을 구기고 있다.최근 2, 3년간 공격적인 투자로 항상 우승후보로 꼽히던 기아는 최하위로 추락했다. 8개 구단 중 득점력은 1위지만 성적은 최하위에 처질 정도로 투수력과 조직력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1점차 패배와 역전패를 가장 많이 당할 정도로 응집력과 막판 뒷심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다. 심재학, 김종국 등 중심타자들이 컨디션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다 하위타선이 상위타선을 받쳐주지 못하고 중간계투와 마무리가 불안하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손민한, 서튼 스타탄생…젊은 선수들 두각
돌풍과 이변이 많은만큼 이번 시즌 깜짝 스타 탄생도 많았다. 투타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롯데 손민한과 현대의 래리 서튼.손민한은 현재 11승으로 다승 부문 단독 선두를 질주하고 있으며 방어율도 2.15로 가장 낮다. 삼진은 5위로 다소 처져있지만 1위와 차이가 크지 않아 투수들의 최고 영예인 ‘투수 3관왕’에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투수 3관왕은 지난 91년 ‘무등산 폭격기’선동렬 이후에 아무도 밟아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고지다.특히 손민한은 올시즌 유일하게 전 구단 상대 선발승을 거뒀고 투구 이닝수도 가장 많아 투구의 질에서도 단연 돋보인다.투수 부문에서 손민한이 독주 체제를 갖췄다면 타격부문에서는 용병 서튼이 독보적인 활약을 보이고 있다. 홈런, 타점, 볼넷, 장타율 1위와 타율 2위 등 타격 5개 부문을 휩쓸고 있는 서튼은 절정의 타격감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지난 5일 롯데전부터 8일 LG전까지 4경기에서는 연속 매경기 3타점을 기록하는 놀라운 성적을 이어가기도 했다.서튼은 182cm 82kg으로 외국인 선수로선 결코 큰 체격이 아니고 슬러거 스타일도 거리가 멀다. 하지만 뛰어난 선구안과 놀라운 임팩트 능력으로 놀라운 성적을 올리며 하위권에 처져있는 현대의 새 희망으로 자리하고 있다.이 밖에도 두산 손시헌, 롯데 박기혁 등 젊은 선수들의 약진도 주목할 만하다. 두산 손시헌은 현재 타율 .290에 2홈런 27타점으로 평범한 성적이지만 최근 경기 모습과 팀 기여도를 놓고 보면 팀내 중심타자의 활약을 무색케 한다.그동안 손시헌은 수비만으로도 10승투수와 맞먹는다는 평가를 받는 등 뛰어난 수비능력을 인정받은 것이 사실. 하지만 공격에서는 그다지 큰 기대를 받지 못했다. 2003년 프로 데뷔후 지난해까지 2년간 통산 타율은 겨우 .225 밖에 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올시즌에는 타격까지 환골탈태하면서 장종훈 이후 최대의 공수겸용 유격수로 다시 태어났다.
롯데에서는 유격수 박기혁의 변신이 가장 주목된다. 뛰어난 수비에도 불구하고 빈약한 타격력으로 항상 아쉬움을 사왔던 박기혁은 올 시즌에는 타격에서도 눈을 떴다.타율 3할8리(8위)로 규정타석을 채운 롯데 타자 가운데 가장 높은 타율을 자랑하며 ‘3할대 9번타자’로 팀 하위 타선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반면 지난 시즌 펄펄 날며 각종 타이틀의 주인공이 되었던 일부 스타들은 올해에는 초라한 성적으로 체면을 구기고 있다. 지난해 홈런왕(34개)에 등극했던 SK 박경완은 올 시즌에는 2할을 갓 넘긴 타율과 3개의 홈런에 그치고 있다.지난해 도루왕(53개)에 등극했던 현대의 전준호도 올해는 슬럼프에 빠져 단 10개의 도루를 성공시켜 공동 9위에 머무르고 있다.대장정의 반환점을 돈 프로야구. 치열한 순위경쟁과 별들이 뜨고 지는 가운데 나머지 절반의 레이스를 향해 치닫고 있다. 새별들이 돌풍을 이어갈지 자존심을 구긴 스타들이 명예회복을 할지 앞으로 남은 레이스가 주목된다.
김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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