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고·고려대를 거친 조성민은 임선동과 둘도 없는 라이벌이었다. 조성민은 98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교진군’의 간판스타로 성장했다. 박찬호(현 텍사스 레인저스)는 공주고 시절부터 강속구 투수로 유명했지만 임선동과 조성민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한양대 재학 중 94년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LA 다저스)가 되며 동기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임선동과 조성민이 일본으로 가려했던 것도 박찬호로부터 크게 자극받았기 때문이다. 염종석(부산고·현 롯데 자이언츠)과 정민철(대전고·현 한화 이글스)은 고교 시절 동기생들에 비해 이름값이 떨어졌다. 둘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프로에 직행해 성공한 케이스. 염종석은 92년 신인왕과 골든글러브를 차지하며 신데렐라가 됐다.
정민철은 92년부터 8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둔 뒤 요미우리에 스카우트되어 조성민과 한솥밥을 먹었다. 둘은 “일본 야구에 만족하지 말고 함께 메이저리그로 가자”며 도원결의를 했지만, 우여곡절끝에 올해 한화에서 다시 만났다. 이밖에 차명주(경남상고·OB 베어스·현 한화) 전병호(대구상고·현 삼성 라이온즈)를 비롯해 손경수(경기고·홍익대·전 OB 베어스) 안병원(원주고·전 LG 트윈스) 최창양(마산고·필라델피아 필리스·전 삼성) 등 은퇴선수들도 고교시절 다른 친구들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 유망주였다. 92학번 중에는 타자 엘리트도 있었다. 광주일고·연세대를 졸업한 박재홍(현 SK 와이번스)은 96년 현대에 입단, 역대 최초로 30홈런·30도루를 기록하며 홈런왕과 타점왕에 오른 데 이어 신인왕도 쉽게 차지했다. 박재홍은 이후에도 30·30 클럽에 두 차례나 더 가입하며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호타준족으로 성장했다.<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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