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18 행사장 한총련 정문 순식간 점거 “대통령 경호라인 무너져 ‘아찔’”
2003년 5·18 행사장 한총련 정문 순식간 점거 “대통령 경호라인 무너져 ‘아찔’”
  • 이수향 
  • 입력 2006-02-07 09:00
  • 승인 2006.02.0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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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의 첫 경찰청장을 지낸 최기문 전청장이 재임 22개월을 되돌아보는 회고록을 발간해 화제다. 이 책에는 최초의 임기제 경찰총수를 지냈던 최 전청장이 경찰인사 등을 둘러싼 여권 핵심부와의 마찰 논란으로 임기만료 3개월을 남겨놓고 물러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담겨있다. 최 전청장의 회고록은 그가 재임기간 중 겪은 크고 작은 사건들에 대한 리얼한 리포트다. 회고록에는 그동안 언론을 통해 공개되지 않았거나 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비화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특히 놀랄만한 대목은 지난 2003년 5월 경찰의 순간적인 방심으로 인해 대통령의 경호라인이 어처구니없이 무너진 사실이 있었음을 고백한 것이다. 최 전청장은 당시 사건을 “경찰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로 인정하고 있다.

특히 “솔직한 마음으로는 당시 상황을 돌이켜 기억해내는 것조차 내키지 않는다”고 밝혔다. 경찰 총수로서 당시 상황을 수습하기가 얼마나 급박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문제의 사건은 2003년 5월 18일 발생했다. 그날은 5·18 민주화운동 23주년을 맞아 광주에서 기념식이 예정되어 있던 날이었다. 2002년까지 광주시측에서 주최하던 기념행사를 2003년부터 중앙정부가 직접 주관하게 된 탓에 이날 행사는 예전보다 더욱 뜻깊고 중차대한 자리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행사 전날까지 방미일정을 마친 노대통령은 광주 5·18묘역을 참배한 후 전남대에서 강연을 할 예정이었는데, 대통령의 방미성과를 ‘저자세 굴욕외교’라고 비난하는 한총련 학생들이 항의시위를 벌일거라는 첩보가 입수된 상황이었다. 경찰에 있어 대통령 경호는 초미의 비상상황인만큼 최 전청장은 경호경비에 만전을 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

행사당일, 행사장 주변에는 1,100여명의 한총련 학생들이 집결해 있었는데, 전남경찰청은 15개 중대 1,800여명을 배치해놓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그러나 행사시작 30분전, 후문을 통해 행사장 진입을 기도하던 한총련 학생들은 경찰력이 정문과 후문으로 분산되어 있는 틈을 타 대통령이 입장할 정문통로를 순식간에 점거해버렸다. 순간의 방심으로 대통령 경호에 구멍이 뚫린 셈이었다. 결국 대통령은 후문을 통해 기념식장까지 걸어가야 했고 행사 예정시간보다 18분 늦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행사직후에 터졌다. 행사 후 800여명의 학생들은 후문에서 대통령이 승차하는 길을 막으려 했다. 긴급히 경찰력이 투입되어 통행로를 확보하긴 했지만 시위대가 대통령 명의의 조화를 참배단에서 끌어내 짓밟는 장면이 TV에 고스란히 방영됐다. 각 언론은 ‘무법천지’, ‘만신창이’, ‘대통령 뒷문입장’ 등의 표현을 써가며 앞다투어 이 사태를 대서특필하는 동시에 경호책임자들에 대한 문책을 요구했다.

언론은 경찰이 상황을 오판했고 현장대응이 미흡했다고 비난했다. 시민의 접근을 통제하지 않는 ‘열린경호’도 도마위에 올랐다. 대통령 경호경비에 차질이 생긴 것은 경찰사상 유례없는 사태로, 하마터면 대형사고로 번질 수 있는 충분한 소지를 안고 있었다. 경호경비 책임을 맡은 부서의 기관장으로서 치욕스러운 사건이 아닐 수 없었을 터. 그러나 최 전청장은 이 사태에 대해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 규명하고 대통령을 잘못 경호했음을 시인했다. 동시에 지휘관의 책임소재를 가려 응당한 조치를 취할 것과 한총련의 불법집회 시위에 대한 엄정대응 방침을 밝혔다.

경찰은 ‘험블레스 오블리주’

최 전청장의 회고록은 지난 2003년 3월 18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 대한 회상에서 시작된다.동시에 재임기간 중에는 차마 밝힐 수 없었던 최 전청장 나름의 생각과 감춰왔던 속내들도 엿볼 수 있어 ‘인간 최기문’에 대한 자서전적 성격도 지니고 있다. 또 회고록 곳곳에는 81년 행정고시를 통해 경찰에 투신한 최 전청장이 무려 25년 동안 몸담았던 경찰조직을 바라보는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다. 최 전청장은 치안총수로 지명된 감격스런 순간에서부터 퇴임식까지의 시간들을 담담하게 돌이켜보고 있다.

최 전청장은 치안총수로 지명됐을 때 가슴벅찬 감격을 느낀 동시에 ‘민중의 지팡이’가 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는 경찰 수뇌부가 바뀌고 수사권조정을 둘러싼 검찰과의 갈등, 여론악화 등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는 경찰의 현재 상황과 맞물려 묘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최 전청장은 ‘대한민국의 치안총수’로서 경험한 수많은 사건 및 에피소드들에 대한 기록은 물론이고,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냈을 때의 보람과 성취감, 임기중 추진했던 정책들과 개혁, ‘바람앞의 촛불’같았던 위기의 순간들, 조직의 총수로서 당면했던 한계와 실수들을 되돌아보고 있다. 그는 경찰직급조정, 인사혁신, 수사경과제 도입 등 경찰내부에서는 혁명이라고 부르는 과감한 개혁조치의 전과정과 배경에 대해 소상히 밝히고 있다. 또 경찰총수로서 느껴야 했던 인간적인 갈등과 고뇌까지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이는 회고록을 출간하게 된 배경과도 직결된다. 최 전청장은 회고록을 출간한 이유에 대해 ‘경찰의 현재 상황이 안타까워서’라고 밝히고 있다. “경찰은 민주사회에서 성직자같은 의무와 험한 일을 짊어지고 있지만 정작 그에 걸맞는 처우는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안좋은 일이 생기면 경찰부터 비난하고 책임을 묻는다. 경찰은 거리에서, 정치권에서, 언론에서 비난의 대상이 된다. 경찰이 아무리 노력해도 알아주는 이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러한 사회분위기는 경찰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역량을 갖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최 전청장의 주장이다.최 전청장의 이러한 생각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고위층은 고귀한 대접을 받는만큼 사회에 기여해야하는 의무가 있음)’를 본따 지은 ‘험블레스 오블리주(사회에 대한 의무는 과도하나 대우는 받지 못함)’라는 책제목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경찰 위상 격상 기대

‘명예’를 생명처럼 여기는 경찰총수의 자리에 있었던 인물이 지나간 과오를 다시 들춰내 잘못을 인정하는 최 전청장의 고백은 사뭇 신선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최 전청장의 글에는 경찰인으로서의 자긍심뿐 아니라 경찰조직에 대한 깊은 애정이 가득 담겨있다. ‘험블레스 오블리주’에서 알 수 있듯 경찰조직을 바라보는 최 전청장의 안타까운 마음은 책 전체에 녹아있다. 최 전청장은 ‘몇 센티미터만이라도 우리 경찰을 진전시키자는 소박한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고백하고 있다. 최 전청장은 전 총수로서 현재의 경찰조직을 바라보는 시각과 앞으로 경찰의 의무, 나아가야 할 방향, 당면한 문제 및 풀어야 할 과제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고 있다. 경찰의 위상과 관련, 그는 “이제 경찰은 정치논리가 아닌 법과 원칙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존재가 되어야 하며, 고생한만큼 대접받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위상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경찰청장의 역할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던졌다. “경찰총수는 국민과 임명권자를 항상 의식해야 하지만, 휘하 경찰관들에게 어떻게하면 조금이라도 더 직업적인 행복감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 최우선”임을 강조한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경찰 개개인은 진정으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최 전청장의 회고록이 국민과 정치권, 경찰 수뇌부에 보내는 회고록으로 보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 국과수 부검의도 험블레스 오블리주업무는 ‘고되고’ 대우도 ‘못받고’

각종 사건사고로 사망한 사체의 사인을 조사하는 국과수 부검의들이 하나둘 떠나고 있다. 특히 국과수 중부분소의 경우에는 유일한 부검의로 남아있던 의사마저 이달 4일 사직서를 제출함에 따라 부검의가 ‘증발’하는 비상사태에 접어들었다. 부검의가 없을 경우 부검은 물론 경찰수사가 지연될 것은 불보듯 뻔한 일.궁여지책으로 중부분소는 민간병원 등에서 부검의를 지원받아 촉탁부검을 실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부검감정의 질적문제 및 다른 일을 병행해야하는 촉탁부검의들의 업무집중력 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촉탁부검을 실시할 경우 1구당 30만원의 촉탁비용을 부검의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점으로 볼 때, 약 700여건의 부검을 의뢰하려면 적잖은 예산이 들어간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부검의는 의사들 사이에서 전형적인 3D업종으로 꼽히고 있다. 국과수 부검의 정원은 21명임에도 현재 근무하고 있는 부검의는 14명에 불과하며, 올들어 실시한 채용시험에도 7명 모집에 단 1명이 지원해 채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들이 부검의를 기피하는 이유는 과중한 업무에 비해 대우를 받지 못하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부검의는 하루평균 2구 이상의 시신을 부검하는데, 이는 경찰이 정확하고 과학적인 수사를 진행시키는데 더없이 중요한 업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부검의는 일반 의사들에 비해 턱없이 낮은 급여를 받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로 볼때 부검의는 최기문 전경찰청장이 최근 발간한 회고록에서 경찰을 빗대어 언급한 바 있는 ‘험블레스 오블리주’ 에 해당되는 셈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수사비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부검의뢰 비용까지 제대로 확보될지는 의문”이라며 “부검의에 대한 처우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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