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서울올림픽에서 당시 소련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우크라이나 출신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은 94미국월드컵 기술자문을 맡아 한국축구 정서를 먼저 익힌 게 선임에 유리하게 작용했다.96년에는 일화를 프로리그 3년 연속 우승으로 이끈 박종환 감독이 98월드컵을 향한 대권을 쥐었지만 96아시안컵 8강전에서 이란에 6-2로 참패해 낙마했다. 97년 1월 이례적으로 기술위원회가 아닌 이사회의 결정으로 80년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차붐돌풍’을 일으킨 화려한 선수경력에다 91~94년 현대를 프로리그 2~4위권으로 유지시킨 전력이 있는 차범근 감독이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그러나 월드컵 본선에서 멕시코와 네덜란드에 연패한 뒤 대회 도중에 해임되는 비운을 겪었다.98년 8월 기술위원회는 사상 최초로 대표팀 감독 경선제를 도입해 표결 끝에 역대 월드컵 무대에서 86년 선수, 90년 트레이너, 94년 코치로 계단식 경력을 쌓아온 허정무 감독을 낙점했다. 2002월드컵 4강신화를 이룩한 네덜란드의 거스 히딩크 감독은 당초 기술위원회가 98월드컵 우승 사령탑인 에메 자케 감독(프랑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지목했으나 본인이 고사하는 바람에 2순위로 영입됐다.포르투갈의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은 2000유럽선수권대회서 포르투갈의 4강돌풍을 이끈 점을 인정받아 2002월드컵에서 세네갈의 8강돌풍을 지휘한 경쟁후보 브뤼노 메추 감독(프랑스)을 제쳤지만 결국 중도 퇴진하는 파국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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