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판결시 대반전 시나리오 가능 서울시장 선거 대세론

한명숙 전 총리의 검찰 수사를 놓고 여-야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진술이 번복돼 재판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곽 전 사장은 당초 한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했다가 지난 11일에는 “돈을 한 전 총리 공관 의자에 그냥 놓고 왔다”로 말을 바꿨다. 이에 검찰은 중대 국면을 맞게 됐다. 한 전 총리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정치 검찰’이라는 비난이 봇물을 이룰 것은 불 보듯 환하다. 한 전 총리가 무죄 판결을 받게 되면 이 여파는 6·2 서울시장 선거까지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무죄 판결 시 한 전 총리가 대세로 급부상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렇게 되면 유시민 전 장관과 한 전 총리가 수도권 일대에 진보바람을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 진보세력이 수도권을 장악하게 되면 진보물결은 일파만파 확대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진보진영이 주요 단체장의 자리를 꿰찰 경우 MB정부의 레임덕 시기를 앞당기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건의 열쇠는 돈을 줬다고 검찰에 진술한 곽 전 사장의 입이다. 그러나 곽 전 사장은 법정에서 검찰조사를 의심케 하는 진술을 쏟아내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곽 전 사장에게서 5만달러를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기소된 한 전 총리는 법정에서 ‘5만달러를 받지 않았다’고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면서 검찰에 정면으로 맞섰다.
한 전 총리는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형두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 모두 진술에서 “총리공관에서의 5만달러 뇌물 수수라는 혐의는 너무나도 부당하고 악의적인 날조”라며 “살아온 모든 인생을 걸고 제가 평생을 지켜온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날을 세웠다.
이 자리에서 한 전 총리는 그동안 묵비권을 행사한 이유에 대해서도 밝혔다. 한 전 총리는 “피의자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부당한 수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며 “검찰 조사는 진실을 밝히는 공정한 절차가 아니라 요식 절차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도 “엄격한 의전 절차에 따라 움직이는 총리 공관에서 갑자기 들이미는 돈을 받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가능하지 않고, 정세균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은 이미 사의를 밝힌 상황이라 그에게 인사를 청탁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치열한 법정 공방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권오성 부장검사)는 “대한통운 부외자금을 수사하던 중 곽 전 사장의 자금에 관한 단서가 나와 수사팀 막내 검사에게 일을 맡겼는데 우연히 한 전 총리에 관한 진술이 나와 수사에 착수했을 뿐 의도가 있는 수사가 아니었다”고 세간의 정치수사 의혹을 부인했다.
또 검찰은 “곽 전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고가의 골프채를 선물했고 2004년도 총선자금을 지원했다”며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검찰은 한 전 총리의 5만달러 사용처에 대해 “한 전 총리 측이 수십 차례 출국했는데 달러를 구입한 흔적이 전혀 없고, 곽 전 사장에게서 받은 돈을 여행경비 등으로 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검찰은 한 전 총리와 측근의 금융거래 사실조회를 요청했다. 산업은행의 회신에는 한 전 총리 측의 환전 내역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변호인은 곽 전 사장의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 내사 기록과 야당 유력 정치인의 측근에 대한 내사 기록, 조사과정을 담은 영상물 등의 열람 등사를 요구했다. 이에 검찰은 “일부 내사는 아직 진행 중이고 내사 기록은 원칙적으로 비공개이며 동영상은 유출 우려가 있어 열람은 가능하지만, 등사는 허용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 전 총리에 대한 법정 공방이 본격화 되면서 민주당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야권내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한 전 총리에 대한 재판 결과가 서울시장 선거구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번 사건을 유력주자에 대한 흠집내기성 표적수사로 보고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곽 전 사장이 검찰 진술을 뒤집으면서 재판 결과는 지금으로서는 한 치 앞을 예상하기 힘들다. 곽 전 사장의 진술 번복이 있기 전 검찰 주변에서는 한 전 총리가 불리하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지금은 증거불충분 등으로 무죄판결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 전 총리의 무죄가 입증될 경우 검찰 수사에 대한 역풍과 함께 동정론이 겹치면서 오히려 선거에 유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무죄판결 시 한명숙 대세
곽 전 사장이 법정에서 횡설수설하자 검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곽 전 사장의 진술에 의존하고 검찰은 한 전 총리의 혐의를 입증하는데 실패할 경우 자존심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또 재판 후 한 전 총리가 극적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한 전 총리에 역전의 기회를 제공한 셈이 돼 여권의 책임추궁에 시달릴 수 있다. 일부에선 한 전 총리가 무죄판결을 받아도 검찰 조사 과정에서 이미 흠집이 났기 때문에 당선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 전 총리의 무죄판결 땐 검찰의 정치수사를 주장하고 있는 진보진영과 야권이 이를 반격의 발판으로 삼을 것은 자명해 보인다.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한 야권이 검찰 수사를 비난하며 여권을 맹공격 할 경우 서울시장 선거에서 대세는 한 전 총리 쪽으로 기울 공산이 크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재판 과정에서 진실이 명명백백히 드러날 것”이라며 “결백함이 드러나면 현 정부 심판론도 더욱 불붙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 전 총리는 2006년 12월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 본관 1층 식당에서 곽 전 사장으로부터 대한석탄공사 사장으로 임명될 수 있게 해달라는 취지의 청탁과 함께 5만달러를 받은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작년 12월22일 불구속 기소됐다.
곽 전 사장은 대한통운 비자금 31억2000여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기소됐으며 한 전 총리가 기소될 때 뇌물을 준 공범으로 추가 기소됐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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