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 징크스
보통 사람들은 큰일을 앞두고 주변이나 몸을 청결히 한다. 예를 들면 머리를 깔끔하게 자른다거나, 청소를 한다거나, 목욕재계를 하는 등 그 방법과 종류도 다양하다. 이는 부정(不淨)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 실제로 그 방법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마음가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사실이다. 두산의 경우도 마찬가지. 13일 대구에서 삼성과의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두산 선수단은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먼저 ‘목욕재계’를 했다.타자들의 분신과도 같은 방망이가 먼저 치장을 끝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불같은 타격을 뽐냈던 방망이들은 그동안의 묵은 잔때를 밀어 버렸다.
숱한 싸움에서 생긴 ‘영광의 상처’ 역시 고르게 다듬었다. 햇볕에 뽀송뽀송하게 잘 말린 뒤 플레이오프를 대비했다.평소 먼지와 손때, 흠집 등으로 가득했던 이들의 ‘연장’은 깔끔하고 뽀얀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선수들 역시 승리에 대한 각오를 다지며 신변의 변화를 줬다. 1차전 선발인 개리 레스는 정규시즌과 달리 수염을 말끔하게 깎은 모습을 보였다.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모습으로 경기를 준비했다. 김경문 감독 역시 흙먼지 하나 묻지 않은 흰색 새 운동화를 신고 덕아웃에 등장했다. 큰 경기를 앞둔 감독의 긴장과 설렘이 엿보이는 대목. 결국 이날 두산은 삼성을 4대 3으로 꺾고 플레이오프 1차전 승리를 거머쥐었다. 두산 한 관계자는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정비를 좀 한 것인데 이유야 어찌됐든 좋은 결과가 나왔으니 기분 좋다”며 “다음 시즌에서도 선수들 목욕재계 시키고 방망이 다듬는 일에도 신경을 써야겠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숫자 징크스
김경문 감독의 모자 안쪽을 보면 ‘36’, ‘24’, ‘16’, ‘13’ 네 가지 숫자가 쓰여있다. 로또 번호라도 될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모두 아끼는 선수들의 등번호. 36은 윤재국, 24는 강봉규, 16은 이재영, 13은 손시헌이다. 올 시즌 우승을 다지며 처음부터 함께 시작했던 선수들이지만 2명은 부상으로 또 2명은 병역비리로 함께 그라운드에 설 수 없었다. 이에 김 감독은 ‘항상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모자에 이들의 등번호를 새겨 넣었다. 경기 시작 전 꼭 한번씩 ‘확인’(?)하는 것도 최근 생긴 버릇 중 하나.몇몇 야구 관계자는 김 감독의 모자 속 번호를 로또 번호로 사용하면 행운이 올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를 했을 정도로 그의 제자 사랑은 각별하다. 이 같은 마음이 하늘에라도 닿았을까? 두산은 올 시즌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호텔 징크스
유명한 ‘호텔 징크스’도 빼놓을 수 없다. 두산의 ‘호텔 징크스’는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리츠칼튼 호텔에서 합숙하는 팀이 시즌 우승을 차지한다는 것. 지난 95년과 2001년 두산은 서울에 있으면서도 리츠칼튼 호텔에 숙소를 잡고 합숙을 해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2002년엔 삼성이 그 소식을 듣고 리츠칼튼 호텔에 묵고는 20년 한을 풀어낼 수가 있었다.두산은 이번 시즌 발 빠르게 R호텔을 선점, 일단 플레이오프 진출에 대한 쾌거를 이뤘다.
두산 홍보팀 관계자는 “사소한 일인데도 이기고 나니까 징크스가 되더라”면서 “사실 선수들의 심리상태는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작은 징조들을 무시할 순 없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은 징크스가 되는 것이고,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당연히 피하고 싶은 징크스로 남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시즌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다”면서도 “감독님이나 코치님이 호텔 앞을 산책할 때 까치 소리를 들었다고 하시던데 그 길조가 시즌 내내 이어진 것 같다. 혹시 아는가. 행운의 징크스가 더 많이 생겨 시즌 우승을 하게 될지…”라고 시즌 승리를 조심스레 점쳤다.
정소현 coda0314@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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