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스포츠… 그 ‘운명적 만남’
보통 스포츠와 정치의 관계성에 있어 스포츠는 ‘우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설명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국가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만든다는 것. 그 수단 중 하나가 바로 가장 대중적으로 관심을 끌 수 있는 ‘스포츠’인 것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정권이 바뀌거나 민심이 뒤숭숭할 때 술과 여자, 그리고 서커스를 이용해 민심을 추슬렀다고 한다.서커스는 좀 폭넓은 의미인데 연극과 스포츠가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특히 스포츠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데다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을 돌리는 가장 좋은 수단으로 이용됐다고.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생동하는 스포츠의 특성은 정치와도 많이 닮아있어 정권의 정당성을 찾는데 이용되기도 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올림픽 대회’(1936년)를 나치 이데올로기의 확신 기회로 이용했다. 당시 베를린 올림픽에는 아리안 혈통의 우월성을 알리는 팸플릿과 연설들이 곳곳에서 난무했으며, 주경기장과 4개의 다른 경기장들을 나치의 깃발과 상징물로 뒤덮는 등 정치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나치당이 정권을 장악한 2년 뒤 개최됐다. 국내 프로스포츠의 출범도 태생적으론 정치적 계산이 바탕이 됐다고 볼 수 있다. 12·12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은 민심을 수습하는 게 가장 급선무였다. 특히 불처럼 일었던 국민적 원성과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 대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프로야구’다.
정치인들의 체육계 진출
이처럼 스포츠와 정치의 공통점은 일반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생동한다는 데 있다. 때문에 쉽게 결합하고 양자는 서로를 이용하는 등 각별한 ‘관계’를 유지한다.국내 스포츠계를 유심히 살펴보면 그 친밀한(?) 관계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대한체육회장 선거전에 출마의사를 공식 선언한 김정길 현대한태권도협회장은 열린우리당 상임고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프로출범을 앞두고 있는 프로배구(KOVO) 총재 역시 ‘거물’인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이다.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장들 역시 대부분 현재 정치계에 몸담고 있거나 과거 정치인 출신 인사들이 많다. 지난 겨울 각 대한체육회 산하 각 단체 대의원 총회의 특징은 정치인들의 체육계 진출이 활발해졌다는 것. 지난달에만 모두 8명의 경기단체 회장이 교체됐고 이 가운데 2명이 정치인이다. 지난해 1월과 비교하면 4명의 정치인이 새로 체육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불안한 동거
스포츠 경기단체가 정치계 인사와 ‘정략 결혼’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재정문제의 해결을 꼽을 수 있다. 재정 형편이 어려운 대부분의 스포츠 경기 단체들은 돈 많은 재계 인사를 회장으로 모셔오는 게 큰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인기 경기단체의 대부분은 명맥을 유지하기도 힘드는 현실이다. 두 번째 이유는 대외적인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경기 단체가 경기인 자체만의 힘으로 국제대회를 유치하고 스폰서를 끌어들이기는 버겁다. 정부를 상대로 재정이나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는 것도 마찬가지. 이런 일에는 대내외적인 영향력이 크고 사회 곳곳에 강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정치인이 제격이다.
물론, 돈과 대외적 영향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사람이면 더할 나위가 없다. 이 과정에서 정치도 반사이익을 본다. 쉽게 말하면 ‘단체장’이라고 하는 근사한 명함을 하나 더 얻을 수 있다.그러나 이런 정략 결혼은 불안한 동거가 되기 쉽다. 어느 쪽이건 ‘내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의 사례는 여러 사례 중의 하나다.얼마 전 축구협회는 회장직 선거를 앞두고 연임을 계획하고 있는 정몽준 회장을 향해 “축구협회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기도 했다.
실제 지난 대선에서 정 회장에게 축구협회는 적잖은 정치적 기반이 되기도 했다. 많은 체육계 관계자들은 정치인들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탁월한 행정력과 리더십은 인정한다”면서도 “순수해야할 스포츠를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해선 안된다”고 하나같이 지적하고 있다. 정치와 스포츠. 이젠 숟가락과 젓가락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돼버렸지만, 왠지 겉으론 ‘상생’의 모습을 추구하면서도 그 이면엔 ‘동상이몽’을 꾸고 있다는 느낌은 어째 지울 수가 없다.
정소현 coda0314@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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