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의 전설 ‘해태’를 배우자
한국 야구의 전설 ‘해태’를 배우자
  • 권정식 프리랜서 
  • 입력 2005-03-04 09:00
  • 승인 2005.03.0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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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해태 야구’에 더 가까운가

‘해태 야구’의 대부였던 김응용 감독은 2001년 삼성 라이온즈의 사령탑으로 옮긴 뒤 개성 뚜렷한 선수들의 땀을 섞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김응용 감독은 2002년 삼성의 첫 우승을 이뤄낸 뒤 2003년 4위, 2004년 2위로 밀려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 사이 현대 유니콘스가 98년, 2002년, 2003년, 2004년 우승을 차지하며 신흥 명문팀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올시즌 프로야구는 다시 ‘해태 야구’를 화두로 떠올리고 있다. 선봉에 선 인물은 김응용 감독의 대를 이어 삼성 감독에 오른 선동열 감독(42).그는 숙적 현대로부터 심정수와 박진만을 최고 총액 99억원에 사들여 8개 구단 중 최강 전력을 구축했다. 삼성의 공격적 투자는 디펜딩 챔피언 현대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효과도 누렸다.

선동열, 김응용보다 더하면 더했다

선감독은 85년부터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로 떠나기 전인 95년까지 ‘무등산 폭격기’로 불린, ‘해태 야구’의 살아있는 신화다. 일본에서 뛰면서 새로운 야구에 눈을 떴고, 해태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삼성 선수들을 지휘하고 있지만, 그는 해태 시절처럼 실력 본위와 팀워크 우선에 바탕을 둔 야구 철학을 그라운드에서 펼쳐나가고 있다. 선감독은 지난해 김응용 감독 밑에서 수석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뒤 올해부터 총책임자에 올랐지만, 지도자로서 벌써부터 뚜렷한 색채를 띠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신이 국내 프로야구가 낳은 최고 스타였던 만큼 스타급 선수들에 휘둘리지 않고, 철저하게 실력 위주로 선수들을 평가한다는 점이 그렇다. 선감독은 지난 스토브리그 동안 해외진출을 시도했던 임창용에게 “네 실력으로는 어림없다”고 혹평했고, 임창용이 갈 곳을 잃어 삼성으로 돌아온 뒤 계약 조건(2년 총액 18억원)에 불만을 품고 계약 파기를 요구하자 김응용 사장과 함께 “임창용을 포기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결국 트러블메이커였던 임창용은 고개를 숙이고 선감독의 색깔에 맞춰가고 있다. 선감독은 “해태 시절 김응용 감독님과 주니치 시절 호시노 감독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두분 다 근성있는 선수를 좋아하셨고, 야구를 잘하면 그만큼 대우해주셨다.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자주 말한다.

야구 관계자들은 선감독을 두고 “김응용 감독보다 부드러운 듯하지만 가끔은 김응용 감독보다 무서운 사람”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선감독은 “좋은 선수들이 많다고 우승하라는 법은 없다. 각자 맡은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알아야 진정한 강팀이다”라며 삼성 선수들을 자극하고 있다. 삼성이 80~90년대 초호화 멤버들을 거닐고도 우승하지 못한 점을 꼬집은 것이다. 진정한 강팀으로 군림하기 위해서는 해태처럼 승부근성과 희생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얘기다.

유남호, 해태 야구의 둘도없는 적자

해태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은 선감독만이 아니다. 기아 유남호 감독(54)이 ‘타이거즈 왕국’의 재건을 꿈꾸며 삼성의 독주를 막겠다고 선언했다. 수석코치로서 김응용 감독을 20년 가까이 보필했던 유감독은 지난해 홀로 광주로 돌아와 기아 사령탑에 올랐다. 유감독의 취임일성 역시 “해태 시절의 근성을 되찾아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하겠다”였다. 유감독은 82년 해태 투수코치로 프로 생활을 시작한 해태 토박이다. 85년 청보 핀토스로 떠나기도 했지만 90년 해태로 복귀했고, 2001년 김응용 감독과 함께 대구로 떠난 뒤 삼성에서도 근성과 팀워크의 야구를 주창하며 ‘해태 정신’을 잊지 않았다. 기아도 그런 점을 높이 평가해 지난해 유감독을 2군 감독으로 영입했고, 지난해 중반부터 감독직에 앉혔다.

유감독은 전임 김성한 감독이 쉽게 꺼내지 못한 말을 토해내고 있다. 기아에서 ‘해태 야구’를 펼쳐 보이겠다는 것. 기아는 지난 3년 동안 전신인 해태를 야구인들과 팬들의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했다. 기아는 2001년 8월 출범과 함께 이종범을 일본에서 데려오고, 이후 박재홍 진필중 마해영 등 거물급 선수를 영입하며 우승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해태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려던 기아는 결국 ‘해태 야구’가 우승을 위한 해법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런 의도로 ‘해태 야구’와 코드가 맞는 유감독을 사령탑에 임명했고, 유니폼도 해태 시절의 빨간색으로 교체했다. 유감독과 구단의 방침에 따라 선수들도 ‘해태 야구’의 중흥을 선언하고 있다.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서 기량을 경쟁하며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뜻이다.

김인식·이순철, 우리도 피가 끓는다

‘해태 야구’가 이룬 업적이 뛰어난 만큼 해태에 몸담은 코치와 선수들에 대한 평가도 높다. LG 트윈스 이순철 감독(42)과 한화 이글스 김인식 감독(58)도 해태 출신이다. 맡은 팀이 모두 중위권 전력인 두 감독은 “야구는 이름값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근성과 팀워크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역설한다. ‘해태 야구’로 해보자는 얘기와 다름 없다. 지난해부터 LG 지휘봉을 잡은 이감독은 선감독과 해태 입단 때부터 친구이자 라이벌로 지내왔다. 선감독이 ‘해태 야구’에 일본 야구를 접목했다면, 이감독은 97년 해태를 떠나 삼성과 LG에서 코치로 지내며 국내 구단의 다른 문화를 흡수했다. 이감독이 유기적이고 선굵은 야구를 펼치면서도 세밀한 전략을 곁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화 감독으로 새로 취임한 김인식 감독은 해태에서 수석코치를 지내다 90년부터 쌍방울 레이더스, 95년부터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 감독을 역임했다. 지장이자 덕장인 김인식 감독은 ‘해태 야구’에서 합리적인 부분을 빼내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구축했다. 95년,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에서 증명했듯 큰 경기에서는 선수들의 힘을 결집하는 강단이 있다. 해태 출신 4명의 감독은 세대와 스타일이 서로 다르고, 전력과 분위기가 다른 팀을 지휘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같이 이기고 싶어 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해태처럼 똘똘 뭉쳐서 독하게 치고 던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과연 이들 중 누가 ‘해태 야구’와 가장 가까운 야구를 할 수 있을까. ‘해태 야구’를 한다면 과연 숙원인 우승을 이룰 수 있을까.

권정식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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