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대성(36)은 지난해말 소속팀인 일본의 오릭스 버팔로스의 잔류 요청을 뿌리쳤다. 오릭스는 지난해 6승10패에 그친 구대성에게 연봉을 인상해 줄 뜻까지 내비쳤지만, 그는 능구렁이 같은 웃음만 흘리며 협상 테이블을 떠났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소년 시절부터 꿈꿔오던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기 위해서였다. 구대성이 뉴욕 양키스 입단을 타진할 때만 해도 다들 코웃음을 쳤다. 은퇴를 생각할 많은 나이, 전성기 같지 않은 구위를 걱정했다. 구대성은 양키스와의 협상이 늦어지자 뉴욕 메츠로 방향을 틀어 기어이 계약에 성공했다. 헐값에 가까운 돈을 받는다는 조건이었다.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37)는 겨우내 자신을 받아줄 팀을 찾아 다녔다. 95년 LA 다저스에 입단, 그해 13승을 거두며 신인왕에 등극했던 그는 97년까지 43승을 올리며 메이저리그를 정복했지만, 박찬호(당시 다저스)가 전성기를 맞이한 98년 메츠로 쫓겨났다. 해마다 힘이 떨어졌던 노모는 99년 밀워키 브루어스, 2000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2001년 보스턴 레드삭스로 옮겨다녔다. 그러다 2002년 다저스로 복귀해 2년 연속 16승을 기록하며 눈부시게 부활했다. 그러나 다저스는 지난해 4승11패에 그친 노모를 또다시 쫓아냈다. 노모는 지난 1월 천신만고 끝에 탬파베이와 1년짜리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다.
꿈을 위해 황금도 명예도 버렸다
구대성은 지난해 일본에서 연봉 1억1,000만엔(약 11억원)에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로 5,000만엔(약 5억원) 정도를 받았다. 일본에서 적용받는 세금 25%를 떼도 실수령액은 10억원 이상이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구대성은 오릭스에서 선발 자리를 보장받으며 연봉을 올려받을 수 있었다. 검증된 용병이어서 내년 이후의 진로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구대성이 한국으로 돌아왔다면 그 이상의 대접도 받았으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의 고향팀 한화는 1년여 전부터 구대성을 영입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 송규수 단장이 일본으로 건너가 구대성과 직접 만나기도 했고, 그룹 차원에서 연간 10억원 이상을 줄 각오로 다년계약을 추진하려 했다. 세금 혜택을 감안하면 일본보다 더 나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구대성은 미국을 택했다.
구대성은 메츠와 연봉 40만달러(약 4억원)로 1년 계약을 했다. 그나마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면 17만5,000달러(약 1억7,500만원)밖에 받지 못한다. 메이저리그에서 빼어난 활약을 해도 최대 80만달러(약 8억원)를 넘지 못한다. 구대성은 마이너리그급 계약을 한 것이다. 게다가 세금으로 35% 정도가 빠져나간다. 구대성은 “돈을 좇아 미국으로 온 것이 아니다. 메이저리그는 내가 어려서부터 꿈꿔온 무대다. 잘 던져서 나중에 보상받으면 된다”며 너털웃음을 지을 뿐이다. 일본에 잔류했거나 한국으로 복귀했다면 부와 명예 그리고 안락함까지 보장받을 수 있었지만, 나이 서른 여섯에 신인급 대우를 받으며 낯선 메츠 유니폼을 입었다. 노모의 계약조건은 더욱 형편없다. 탬파베이와 계약하면서 연봉조차 공개하지 못했을 정도. 메이저리그에서 뛴다는 보장없이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하는 조건이다. 때문에 그의 연봉은 20만달러(약 2억원)를 넘지 않으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다.
노모는 지난해 다저스에서 연봉을 900만달러(약 90억원)나 받았다. 2003년에도 775만달러(약 78억원)을 받았던, 메이저리그에서도 고액 연봉자에 속한 선수였다. 미국에 오기 전부터 일본에서 최고 대우를 받았고, 빅리그 첫해인 95년에도 신인으로서는 파격적인 210만달러(약 21억원)에 연봉계약을 했으니 그의 눈높이는 짐작이 간다. 그러다가 “한물 갔다”고 평가받은 노모는 98년 25만달러(약 2억5,000만원)짜리 계약서를 손에 쥐었다. 이후 선수생명이 끊길만한 위기를 숱하게 넘기면서 정상을 재등정했다. 그리고 지난 겨울 또 다시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앞서 추산한 노모의 올시즌 연봉은 지난해와 비교하면 무려 95% 이상 삭감된 셈이다. 노모는 탬파베이와 계약하면서 “내게 기회를 준 구단에 감사한다. 메이저리그에 진입해 선발 투수로 뛰고 싶다”고 투박하게 말했다. 그는 현재 스프링캠프 로스터에 들지 못한 채 초청선수 자격으로 훈련을 하고 있다. 그러나 불사조 같았던 노모의 야구인생을 지켜봐왔던 이들은 올해도 그가 다시 일어서리라고 믿고 있다.
뒤틀린 투구폼, 굴곡진 야구인생
구대성과 노모의 닮은점은 또 있다. 그들은 뒤틀린 폼으로 공을 던진다. 없는 힘까지 쥐어짜내듯 던지는, 부자연스러운 폼이다. 독특한 투구폼은 ‘영혼의 야구’ ‘기백의 야구’로 상징되는 그들의 이미지와 잘 맞아 떨어져 팬들에게 깊이 각인돼 있다. 온 몸에 무리가 따르는 폼이지만 그들의 신념 혹은 고집은 그 힘겨운 동작을 반복하게 하고 있다. 좌완투수인 구대성은 왼손을 최대한 뒤로 숨겼다가 순식간에 몸을 앞으로 튕겨내며 공을 뿌린다. 구대성은 한화 시절 이 폼에서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뿜어내며 96시즌 최우수선수에 오르기도 했다. 구대성은 이후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면서 많은 공을 던지며 혹사당했다. 그러다 보니 힘이 떨어져 최근 2~3년 동안에는 직구가 시속 140km를 넘기기 힘들었다.
그러나 구대성의 고집이 담긴 폼은 아직까지 그를 위력적인 투수로 큰소리치게 만들고 있다. 메츠의 동료들은 구대성을 보고 “참 특이한 폼이다. 공이 빠르지 않지만 타이밍 잡기가 무척 힘들다”고 혀를 내두르고 있다. ‘토네이도’로 이름 붙여진 노모의 투구폼에는 장인정신이 담겨 있다. 노모는 작은 체구를 극복하기 위해 몸 전체를 폭풍처럼 뒤틀어 힘을 모은 뒤 혼을 실어 공을 던진다. 남들은 한번 흉내내기도 어려운 폼으로 20년 가까이 던지고 있다. 노모는 일본 긴테쓰 버팔로스 시절, 시즌 평균 230이닝을 던져 어깨가 고장난 상태로 미국으로 건너왔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선발로 뛸 때는 시즌 평균 200이닝 정도를 던졌다. 신체구조에 역행하는 폼을 고집하며 무리하게 던진 끝에 98년 이후에는 해마다 “이제 노모는 끝났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처음처럼 그렇게 던지고 있다.
꿈은 그리 쉽게 꾸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꿈을 말한다. 소신을 말한다. 그러나 꿈을 위해 현실적인 안락을 포기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범인들은 눈앞에 펼쳐진 달콤한 유혹에 소신을 꺾기 마련이다. 구대성과 노모는 이미 꿈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고국에서 최고 선수가 됐고, 한 차원 높은 무대에서 던지겠다는 꿈을 이루려 설움많은 타향살이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남부럽지 않은 성공을 만끽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꿈꾸고 있다. 황금에 대한 욕심, 명예의 대한 갈망을 버리고 도전자로서 새로운 무대 위에 섰다. 구대성과 노모는 더이상 부와 명예를 향해 공을 던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세계 최고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서 공을 던지는 것, 그 자체가 꿈이다. 남들에게는 조금은 ‘뒤틀린’ 꿈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권정식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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