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령탑 맡은 스타감독의 중압감
삼성은 지난해 현대 유니콘스에 패배, 준우승에 머문 뒤 스토브리그에서 멋진 복수전을 펼쳤다. 현대에서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 심정수와 박진만을 130여억원이 담긴 돈보따리를 풀어 빼앗아왔다. 더불어 팀 내 FA였던 김한수와 신동주를 눌러앉혔고, 해외진출에 실패한 임창용도 받아들였다.삼성이 한치의 손실없이 전력을 보강하는 동안 다른 구단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졌다. 특히 현대는 주포 심정수와 수비의 핵심인 박진만을 삼성에 빼앗긴 데다 두 날개였던 브룸바와 피어리까지 잃어 망연자실이다.지난해 3위 두산 베어스는 주력 투수들이 줄줄이 군입대 예정이고, 4위 기아 타이거즈도 박재홍을 SK 와이번스에 내주고 김희걸을 얻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야구인들은 올 시즌 구도를 ‘삼성과 일곱난장이’라며 극단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또 몇몇 감독들은 “삼성이 우승하지 못하면 바보다”라며 비아냥거린다. 최고 스타들을 싹쓸이했고, 천하의 선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으니 우승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투다. 이런 평가들은 선 감독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우승한다면 당연한 결과쯤으로 여길 것이고, 우승하지 못하면 역적으로 내몰리는 분위기다.물론 선 감독은 이런 부담감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자칫 자신감이 없는 말로 전해져 선수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다.
스타 많아야 우승 한다? 글쎄…
사실 스타급 선수가 많다고 우승하라는 법은 없다. 삼성은 프로야구 출범 이래 어느 팀 못잖게 빼어난 스타들을 보유해 왔다. 그런데도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2002년이 처음이었고, 현재로서는 마지막이다.선 감독은 현역 시절 해태에서 뛰면서 ‘스타군단’ 삼성을 항상 이겨왔기 때문에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선수들을 불러모아 “삼성이 나머지 7개 구단으로부터 공공의 적으로 몰리고 있다. 우리가 똘똘 뭉쳐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며 정신력을 강조한다.삼성이 막강한 전력을 구축했다고는 하지만 내부적인 불안요소가 없지 않다.
2003년 53홈런을 터뜨렸던 심정수는 지난해 무릎 부상과 선구안 난조에 시달리며 22홈런만을 기록했다. 시범경기에서 나타난 심정수의 타격은 2003년이 아니라 지난해의 성적에 가깝다. 유격수 박진만 역시 특급선수임에는 분명하지만 지난해 급성장한 조동찬을 압도적으로 뛰어넘을지는 미지수다.삼성이 절대 강자로 추대받는 것은 지난해 전력에서 심정수와 박진만을 얹어서다. 그러나 마운드의 핵심인 배영수와 권오준이 지난해 무리한 탓에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올 시즌을 치를지 알 수 없고, 만 35세가 된 양준혁의 체력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배영수·권오준 컨디션 미지수
경쟁자도 녹록하지만은 않다. 현대는 2000년 이후 자금난에 시달리며 고액 연봉자들을 하나 둘씩 팔아왔지만, 그때마다 ‘대체동력’을 개발해 매년 우승권 전력을 갖춘 저력의 팀이다. 기아도 지난해 이상하리만치 부진했을 뿐이지 무시할 수 없는 우승후보다. 또 SK는 이호준 이진영 등이 입대할 것이라는 계산으로 박재홍과 김재현을 영입했는데, 이들의 입대가 미뤄져 뜻하지 않은 전력 상승효과를 누릴 전망이다.이런 상황에서 모두들 삼성 우승의 당위성을 부르짖고 있다. 다른 감독들은 삼성의 강점을 부각하며 ‘몸 낮추기’에 들어갔다. 선 감독이 떠안을 부담감을 잘 알기 때문에 삼성이 스스로 무너지기를 바라고, 자신들은 반사효과를 누리려는 속셈이다.선 감독이 우승한다면 놀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승하지 못한다면 선 감독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쓰게 생겼다. 반면 누구라도 선 감독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면 난세의 영웅이 되는 분위기다. 선 감독의 얼굴이 수척해지고 있다.
김식 스포츠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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