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올시즌, 프로야구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 폭발적인 구위로 상대 타선을 압도하는 투수들이 한꺼번에 등장해 팬들을 투수전의 묘미로 초대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배영수(24), 롯데 자이언츠 손민한(30), 두산 베어스 박명환(28) 등이 ‘투수 삼국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등판=승리’라는 등식을 세우며 소속팀을 선두권으로 이끌고 있다. 이들이 마운드에 오르는 날이면 상대팀은 지레 겁먹고 승부를 반쯤 포기하거나, 아예 2진급 투수를 내세우는 등 꼬리를 내리기 일쑤다.
배영수, 태양의 아들
배영수는 사부인 삼성 선동렬 감독의 현역 시절과 가장 가까운 투수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선 감독이 지난해 삼성 수석코치로 부임하자마자 탄생시킨 ‘대작’이다. 배영수는 지난해 초반 선발 로테이션에도 들지 못했지만 서서히 야구에 눈을 뜨더니 시즌이 끝날 때 공동 다승왕과 승률왕에 올라 있었다. 현대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펼친 ‘10이닝 노히트노런’은 그를 이 시대 최고의 투수로 올려놓았다.배영수는 지금까지 한국시리즈의 피칭을 계속하는 듯하다. 시속 150km에 육박하는 구위뿐만 아니라, 변화구ㆍ컨트롤ㆍ연투능력 모두 최고다. 올시즌 배영수는 4월2일 롯데와의 개막전에서 완봉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10경기에 등판, 6승3패 방어율 1.51을 기록하고 있다.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해 다승 부문에서는 3위에 그치고 있지만, 방어율은 단연 선두. 8개 구단 투수 중 가장 많은 71과 1/3이닝을 던지며 12자책점밖에 내주지 않았다. 98년 현대 정명원 이후 7년 만에 1점대 방어율왕이 탄생할 전주곡이 울리고 있다.
손민한, 20승을 쏜다
올해 프로야구 최대 화제는 롯데의 돌풍이다. 4년 연속 꼴찌에 머물렀던 롯데는 삼성 두산에 이어 3위를 달리며 부산팬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부산에서 일어난 야구 열풍은 전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롯데 돌풍의 중심에는 손민한이 있다. 손민한은 9경기에 등판하는 동안 8승1패 방어율 2.21을 기록 중이다. 다승 1위, 방어율 2위. 손민한은 배영수와 함께 올시즌 프로야구의 쌍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손민한은 이기는 법을 가장 잘 아는 투수다. 그가 던지는 시속 140km 중반의 직구는 배영수나 박명환에 비해서 파워가 떨어진다. 그러나 스트라이크존 좌우를 교묘하게 찌르는 코너워크와 승부처에서 빛을 발하는 집중력으로 승리를 챙기고 있다. 롯데는 시즌 126경기 중 1/3 정도의 일정을 소화했다. 이 페이스라면 손민한은 올시즌 선발 20승은 거뜬히 챙긴다는 계산이 나온다. 마지막 20승 투수는 99년 정민태로 기록돼 있지만, 선발 20승은 95년 이상훈(은퇴)이 마지막이다. 10년 만에 진정한 20승 투수가 부활하려 하고 있다.
박명환, 나가면 이긴다
박명환의 피칭에는 힘이 넘친다. 파워만으로 보면 배영수를 누르는 유일한 투수다. 박명환은 컨디션이 좋을 때 시속 153km 짜리 강속구를 로켓처럼 발사한다. 박명환은 올시즌 8경기에 등판해 6승을 기록하는 동안 1경기도 지지 않았다. 승률 100%로 1위. 방어율 2.89로 배영수ㆍ손민한에 이어 3위에 올라 있다. 박명환은 위력적인 피칭으로 삼진을 뽑아내는 능력이 탁월하지만, 탈삼진 47개로 5위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말 터진 병역 문제로 충분한 훈련을 치르지 못해 긴 이닝을 던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명환은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동안 만큼은 강렬한 피칭을 뿜어내고 있다. 서서히 몸을 풀릴 여름이면 박명환이 다승, 방어율, 탈삼진 부문에서 배영수와 손민한을 위협할 수 있을 전망이다.
김세훈 경향신문 체육부 shkim@kyunghyang.com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