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승 위업 달성한 박찬호
코리안 메이저리거의 활약은 최고참인 박찬호로부터 시작됐다. 지난달 23일 휴스턴전 4승 고지를 시작으로 박찬호는 5월 31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6월 5일 캔자스시티 로열스 전에서 내리 2연승을 추가하며 마침내 통산 100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박찬호에게 100승의 의미는 승수 그 자체보다 성공적으로 재기했다는 평가를 분명히 내릴 수 있는 잣대라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그동안 박찬호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5년간 6,500만 달러라는 초특급 계약을 맺었지만 부상으로 발목을 잡혔다. 허리부상 탓에 그는 부상자명단을 오르내리며 3년간 14승 18패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허리부상보다 훨씬 아팠던 것은 구단과 텍사스 지역언론, 팬들로부터 쏟아진 비난이었고 한국팬들에게 실망감을 줬다는 죄책감이었다.
그러나 올해 박찬호는 팀의 에이스로 거듭나며 지난 3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허리 부상 이후 불같은 강속구는 저하됐지만, 투심 패스트볼로 주무기를 바꾸며 새로운 투수로 거듭났다. 방어율이 5.40으로 다소 높은 것이 흠이지만 약점으로 지적되던 제구력과 위기관리 능력이 눈에 띄게 좋아져 승수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정신력도 강해졌다는 점. 과거 주위의 비판에 곧잘 반응할 정도로 마음이 여렸지만 이제는 주위의 반응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기 중 주자를 내보내도 이전처럼 구위가 급격히 불안해지지 않고 자기자신을 컨트롤하는 모습도 보인다.또, 박찬호는 LA 다저스 시절부터 뒤늦게 발동이 걸리는 선수로 유명하다. 한 여름에 접어들며 본격적으로 승수쌓기에 돌입하는 경우가 많아 ‘여름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현재 박찬호의 페이스를 감안한다면 올시즌 15승 이상도 가능하다. 15승 이상 승수만 쌓아준다면 ‘올해의 재기상’ 도 노려볼 만하다.
투수들의 무덤에서 첫승 구위 살아난 김병현
콜로라도로 트레이드 된 후 부진을 거듭하던 김병현 역시 최근 되살아나고 있다. 김병현은 지난 13일 디트로이트전에서 6이닝 5피안타 2실점으로 시즌 5패 뒤 첫승의 기쁨을 맛봤다. 특히 8개의 삼진을 솎아내며 자신의 한 경기 최다탈삼진 기록도 갈아 치웠다. 애리조나 시절을 연상케 하는 특유의 빠른공과 변화구가 위용을 되찾은 것이다. 특히 투수들의 무덤이라는 쿠어스필드에서 올린 승리라 기쁨은 배가 되었다.콜로라도가 김병현의 부활에 매우 고무된 입장이라는 점에서 시즌 첫승은 김병현에게 여러 모로 큰 의미가 있는 승리였다. 한때 마이너리그 강등 및 방출까지 고려했지만 이제는 붙박이 선발로 기용할 것을 심각히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김병현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부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 올 초 콜로라도 로키스로 트레이드됐지만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 구단에 미운털이 박혔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확실하게 허들 감독의 눈도장을 찍었다.중간계투 요원으로 부진을 면치 못한 김병현을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내거나 방출을 시킬 의향까지도 지녔던 콜로라도의 클린트 허들 감독은 최근 2경기에서 연속으로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호투를 펼치자 김병현을 바라보는 시각이 확 달라졌다. 허들 감독은 “처음 로키스 유니폼을 입었을 때 김병현은 도망다니는 피칭을 펼쳤지만 최근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을 찌르는 공을 던지기 시작하면서 전혀 다른 투수로 변모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김병현은 불펜으로 등판해 승리없이 3패 방어율 8.40으로 부진한 것과는 달리 선발로 나선 5경기에서는 방어율 4.09로 비교적 호투하고 있어 앞으로는 선발로만 나서게 할 것이라는게 허들 감독의 복안이다. 허약한 투수진으로 어렵게 시즌을 꾸려가고 있는 허들 감독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김병현에게 경기 도중이 아니라 경기 시작부터 볼을 기꺼이 건넬 것으로 보인다.
최희섭 연일 홈런포 가동…주붙박이 주전 가능성 높여
선배 메이저리거 박찬호, 김병현의 부활에 후배 최희섭도 한껏 고무됐다. 최희섭은 연일 맹타를 휘두르며 팀 타선의 핵으로 급부상했다. 최희섭은 미네소타와의 인터리그 홈경기 3연전에서 모두 6방의 홈런을 쏘아올리며 괴력을 과시했다. 특히 그가 쏘아올린 홈런은 모두 ‘영양가 만점’ 의 홈런들. 지난 11일에는 약점을 보이던 ‘좌완투수’ 테리 멀홀랜드를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터뜨린 데 이어 13일에는 에이스 브래드 래드키를 상대로 3연타석 홈런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며 팀의 4-3승리를 이끌었다. 최희섭의 홈런 3방이 아니었으면 패배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최희섭의 맹활약으로 강호 미네소타와의 3연전을 싹쓸이한 다저스는 다시 탄력을 받아 다시 지구 순위경쟁에 가세했다. 최희섭의 페이스가 한껏 고조돼 있어 플래툰 시스템을 고집하던 트레이시 감독의 마음도 흔들리고 있다.
트레이시 감독은 그간 최희섭을 1차원적인 선수로 여겨온 게 사실이다. 힘은 좋지만 정교함이 떨어진다고 판단, 큰 신뢰를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또, 트레이시 감독은 철저한 플래툰 시스템 신봉자로 유명하다. 좌·우완 선발 투수에 따라 우타자 올메도 사엔스와 좌타자 최희섭을 번갈아 기용해왔다. 그러나 최희섭이 조금만 부진하면 우투수가 나올 때에도 최희섭 대신 사엔스를 내보내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나 최희섭의 대활약으로 트레이시 감독은 지난 13일 미네소타전이 끝난 뒤 최희섭에 대한 시각이 확 바뀌었다. 트레이시 감독은 “그는 매 타석 서로 다른 위치로 들어오는 다른 구질에 대해 잘 대처할 정도로 타격능력이 매우 향상됐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최희섭의 ‘붙박이 주전’ 의 가능성도 한껏 높아졌다.지난 5월 26일 메이저리그로 승격된 김선우도 기대 이상의 피칭으로 연일 주목을 받고 있다.
승격 이틀 뒤인 28일 세인트루이스전서 1이닝 무실점, 이달 5일 플로리다전 3.1이닝 무실점으로 가능성을 높인 뒤 11일 시애틀전에선 선발로 나서 5이닝 5피안타 2실점의 안정적 투구를 선보였다. 워싱턴 내셔널스가 선발진을 보강함에 따라 김선우는 다시 불펜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최근의 호조를 유지한다면 프랭크 로빈슨 감독의 신뢰를 다시 얻을 전망이다. 서재응과 추신수가 메이저리그에 올라서면 현재 부상자명단에 올라 있는 구대성을 비롯, 빅리그에만 무려 7명의 한국선수들이 메이저리그 구석구석을 누비게 된다.더워질수록 강해지는 한국인 메이저리거들 덕분에 야구팬들의 여름은 더욱 즐거워질 전망이다.
# 될성부른 떡잎들 다 자랐네∼
- 각 팀 신인, 4년차 안팎 선수들 팀의 기둥으로 성장
올 시즌 프로야구 판도는 ‘영건’ 들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각 팀의 신인선수들과 3, 4년차 안팎의 젊은 선수들이 팀 전력의 핵으로 부쩍 성장한 것. 이들의 활약에 따라 시즌 전 하위권으로 분류되던 두산과 롯데가 상위권을 질주하고 있고 한화도 무서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젊은 선수들이 부진한 기아, SK, LG 등은 부진의 늪에 빠졌다.‘젊은 피’들의 재미를 가장 톡톡히 보는 팀은 두산. 오프시즌 동안 특별한 전력 보강이 없었던 두산은 젊은 선수들의 활약으로 스타군단 삼성과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 두산 돌풍의 핵은 투수 김명제와 내야수 손시헌·나주환. 신인 김명제는 올시즌 벌써 4승을 기록, 고참 박명환과 함께 팀의 원 투 펀치로 자리잡았다. 병역 비리 파동으로 투수진에 구멍이 난 두산으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3년차 선수인 손시헌, 나주환도 두산 전력의 핵이다.
손시헌은 3할대에 육박하는 타율로 두산 하위 타선을 이끌고 있으며 특히 내야의 취약지구였던 유격수 자리에서 안정된 수비를 보이며 투타에서 고른 활약을 보이고 있다. 나주환 역시 백업 내야수 요원과 대주자 요원으로 활약하며 기동력이 떨어지는 두산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삼성도 젊은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5년만에 대한민국 대표 에이스로 성장한 배영수와 3년차 마무리 권오준이 삼성 마운드의 앞, 뒤를 틀어막고 있는 것. 공격력은 8개구단 최강이지만 불안한 투수력으로 인해 한국시리즈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신 삼성으로서는 고무적인 일이다.한편 올 시즌 최대 돌풍의 팀인 롯데도 젊은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그동안 꼴찌에 머물렀지만 올 시즌 젊은 선수들이 야구에 눈을 뜨면서 전력이 급상승했다. 롯데 돌풍의 주역은 4년차인 이대호와 박기혁. 이대호는 붙박이 4번 타자 노릇을 톡톡히 하며 ‘타점기계’로 맹활약하고 있다.
박기혁도 하위타선을 이끌면서 김민재가 빠진 유격수 공백을 잘 메우고 있다.시즌 초반 이들의 활약으로 롯데는 선두권을 형성했지만 6월 이후 이들이 슬럼프에 빠지자 롯데 팀 성적도 곤두박질 쳤다. 이들에 대한 팀 의존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최근 한화도 영건들의 활약으로 상승세를 타며 상위권 진입에 성공했다. 한화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선수는 4년차 김태균과 3년차 윤규진. 김태균은 두 게임 연속 만루홈런을 포함, 홈런포를 가동하며 팀 타선을 리드하고 있다. 또, 윤규진은 구대성의 이적 이후 약점으로 노출된 마무리 투수의 부재를 한 번에 해결해 주고 있다.이들 ‘영건’들은 팀의 주전 자리를 꿰차는 것은 물론 투타 각 분야에서 쟁쟁한 선배들을 위협하고 있다. 권오준은 노장진과 세이브왕 경쟁을 벌이고 있고 이대호와 김태균은 용병들과 홈런왕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이들 영건들의 활약 여부에 따라 앞으로 프로야구 판도도 요동칠 전망이다.
김재윤 yoonihoora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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