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기량이 떨어지고 있는 선수들이 있다. 빨리 올라서지 못한다면 대표팀 유니폼을 벗어야 할 것이다.” 최근 잇따른 졸전으로 경질 위기에 몰린 본프레레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폭탄선언을 했다. 최근 매너리즘에 빠지며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붙박이 주전’들에게 주전경쟁이라는 자극을 준 것. 본프레레 감독의 주전경쟁 방침에 따라 절대 주전자리를 뺏기지 않을 것 같았던 ‘본프레레호의 황태자’ 이동국을 비롯 이운재, 이천수 등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이에 포지션별로 벌어질 ‘전쟁’을 앞두고 전운이 감돌고 있다.그동안 본프레레호에는 붙박이 주전들이 많았다. 골키퍼 이운재를 비롯, 미드필더의 이천수와 김동진, 최전방 공격수 이동국이 대표적인 경우. 이들은 본프레레 감독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으며 컨디션이나 경기결과와 관계없이 줄곧 주전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월드컵 최종예선을 비롯, 최근의 동아시아 대회까지 ‘본프레레호의 붙박이’들의 플레이는 기대치에 못미쳤다.
‘황태자’ 이동국, 대표발탁 이후 최대위기
본프레레 감독으로부터 가장 총애를 받던 ‘황태자’ 이동국은 최근 4경기에서 골은 커녕 이렇다 할 움직임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지난 동아시아대회에서는 수많은 득점기회를 전혀 살리지 못했고 개인플레이로만 일관해 대표팀의 골 결정력 부재라는 숙제를 안긴 장본인이 되기도 했다. 미드필더와의 유기적인 협력 플레이 부족으로 이동국이 고립된 것도 부진의 한 이유지만 본프레레 부임 이후 전경기에 출전하면서 부동의 주전이 되자 정신적으로 느슨해진 것도 부진의 큰 이유다.급기야 이동국은 지난 14일 남북통일축구대회 선발출장 명단에서 제외됐다. 이에 ‘붙박이 원톱’으로 생각됐던 이동국은 차두리, 안정환은 물론 박주영, 조재진, 김진용 등 신예들과의 싸움까지도 각오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특히 오른발가락 부상에서 벗어나 지난 북한전에서 다시 골행진을 시작한 박주영은 본프레레 감독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아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고, 프랑스 1부리그에 진출하며 골을 뽑아낸 안정환, 독일 분데스리가로 승격한 후 팀의 주축공격수로 활약중인 차두리도 상승세를 타고 있어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이에 본프레레호의 황태자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이미 시작됐다. 그는 통일축구 북한전에서 후반 22분 교체 투입된 뒤 측면을 파고들면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려고 노력하는 등 생존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대표팀 부동의 수문장 이운재도 후배들과의 경쟁에 내몰렸다. ‘한국의 야신’ 으로 불리며 수년간 대표팀의 붙박이 수문장 역할을 해왔고 2진급 선수들을 테스트하기 위한 평가전에서조차 선발출전하며 스타팅 명단에서 한 번도 빠진 적 없던 그는 지난 14일 열린 남북통일축구에서는 벤치를 지켰다.
‘신의 손’ 이운재도 자리위협
당초 본프레레 감독은 이운재에 대한 검증을 마친 가운데 통일축구를 통해 김영광, 김용대 중 백업 골키퍼를 가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활약함에 따라 앞으로 펼쳐질 대표팀 경기는 백업 골키퍼 발탁의 의미를 넘어 주전 골키퍼 경쟁으로까지 확대됐다. 최근 순발력과 판단력에서는 김영광이 이운재를 앞서고 있고, 신장에서는 김용대가 비교우위에 있어 이운재는 안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실제로 지난 통일축구대회에서도 선발로 나선 김영광은 순발력과 빠른 판단력으로 북한 공격수들보다 한 박자 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무실점으로 틀어막았고 교체투입된 김용대도 190cm에 육박하는 큰 신장을 이용해 공중볼 캐치와 문전에서의 감각적인 볼처리를 보여줬다.
더구나 최근 이운재의 움직임도 많이 둔탁해진 것도 주전자리를 위협하는 요소다. 한·일 월드컵 이후 어느덧 32살의 노장이 된 그로서 예전같은 순발력이 나오기란 무리이고 특히 잔부상과 훈련량 부족으로 최근 몸무게가 5kg이나 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킥거리도 짧아졌고, 상대의 슈팅을 막은 이후 2차 동작도 느려졌으며 상대를 압도하는 파워풀한 움직임도 없어졌다. 이에 이운재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이운재는 “내가 운동화를 신고 골키퍼 장갑을 끼고 있는 한 독일월드컵까지 자리를 내주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은 경쟁에서 판가름 날 것” 이라며 주전 골키퍼 수성에 대한 강한 의욕을 내비치고 있다.
‘젊은 피’ 도전에 주전자리 위협받아
‘붙박이 주전’ 자리가 위협받는 것은 이동국과 이운재의 얘기만은 아니다. 박지성과 이영표를 제외한 미드필더들 중 본프레레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선수는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본프레레 감독은 앞으로도 3-5-2포메이션을 주로 사용하겠다는 방침을 정함에 따라 이천수와 김동진 등 공격수들은 공격수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보여 허리진 경쟁은 한층 가열됐다.한·일 월드컵을 전후로 대표팀 중원을 장악했던 이천수는 스페인리그에서 2년간 부진한 뒤 돌아와 절치부심하고 있지만 몸도 마음도 따라주지 못하고 있다.
본프레레 감독은 통일축구 북한전에서 조금이라도 기회를 주려고 후반전에 그를 투입했지만 인상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지 못했다. 김동진 또한 최근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과 지난해 12월 독일과의 평가전에서 맹활약한 뒤 이렇다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또, 후배들의 대약진도 이천수와 김동진의 주전자리를 위협하는 요소 중 하나다. 본프레레호의 ‘숨은 진주’ 정경호는 지난 7일 동아시아대회 일본전을 통해 공격형 미드필더로서의 기량 점검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정경호는 처음 나서는 중앙미드필더로서 맹활약하며 답답했던 대표팀의 공격 활로를 뚫었다는 평을 받았다.
김두현 역시 공격형 미드필더 주전감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두현은 동아시아대회 한·일전에서 정경호의 뒤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나섰지만 후방에서 전방공격수에게 긴 패스를 오차 없이 넘겨주며 날카로운 패스력을 자랑했다. 또, 본프레레가 구상하는 3-5-2전술에 익숙한 것이 강점이다.월드컵 본선을 위해 오는 9월부터는 25명의 대표선수만이 선발돼 본격훈련에 돌입하게 된다. 누군가는 떨어져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누가 먼저 가방을 쌀지는 남은 테스트 기간과 앞으로 열릴 평가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난 2002년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의 네임밸류를 과감히 무시하며 무한경쟁을 유도하면서 4강 신화를 일궈낸 것처럼 ‘주전 경쟁’ 이라는 초강력 카드를 들고 나온 본프레레 감독이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 선두를 잡아라
전체 일정의 80%를 소화하며 팀당 30경기 안팎을 남겨 놓고 있는 올 시즌 포로야구. 4위 한화와 5위 롯데간 승차는 무려 7게임이나 벌어져 있고 롯데(승률 0.465)가 남은 26경기에서 선전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페이스로는 28경기를 남겨둔 한화(승률 0.536)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이에 따라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상위 4팀들의 윤곽은 사실상 드러났다. 이제 관심은 선두싸움과 플레이오프 상위 시드 배정에 모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공동 2위 두산과 SK가 벌이는 플레이오프직행 싸움이 가장 뜨겁다. 이들 중 가장 눈에 띄는 팀은 SK.
창단 후 최다 연승 기록인 9연승을 질주하며 7위에서 공동 2위로 올라선 SK는 무서운 상승세로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이 걸려있는 선두자리까지 위협하고 있다. SK 상승세의 원인은 최근 5경기에서 13개의 홈런을 기록한 타선의 폭발력과 찬스를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집중력.비록 SK에 공동 2위 자리를 내주었지만 5연패 뒤에 4연승을 거둔 두산의 뚝심도 만만치 않다. 두산은 팀 방어율 1위인 마운드를 앞세워 삼성과 SK를 위협하고 있다. 마무리 정재훈이 최근 불안함을 노출하고 있지만 중간계투 이재우가 시즌 23홀드 신기록을 세우며 공백을 메워주고 있고 열흘 만에 선발진에 복귀한 박명환도 승수 사냥에 힘을 보태고 있다.
두산 김경문 감독은 8월 중순 이후 김동주, 이재영 등 주축 선수들이 복귀하면 총력전을 펼 복안이다. 반면 호화군단 삼성은 불안한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배영수와 권오준 등 주축 투수들이 부상에 시달리며 1위 수성에 빨간불이 켜진 것. 그러나 삼성은 최고의 호화 멤버로 무장한 타선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고 박석진, 강영식, 오승환이 버티고 있는 불펜도 최강 수준이어서 최근 4연승 여세를 몰아 한국시리즈 직행을 위한 선두 굳히기를 노리고 있다. 상위권 순위다툼에서 어떤 팀이 한국시리즈와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따낼지 남은 경기에 이들의 운명이 달렸다.
김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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