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얼굴 없는 I·O 출현’ 사찰 의혹 제기

지방선거가 임박하면서 사정기관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 공천권을 행사하는 국회주변에 부쩍 인력이 보강됐다는 후문이다. 국회에는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등 공식적으로 허가된 I·O(Infomation Officer, 정보담당자)가 존재한다. 이들은 공식적인 명함과 얼굴이 국회내 알려져 있어 국회의원을 비롯해 보좌진과의 만남을 자연스럽게 갖고 있다. 서로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며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얼굴 없는 I·O 인력’이 국회에 파견돼 국회의원을 비롯해 보좌진, 국회출입 방문객들의 대화를 엿듣고 일일 보고하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그 진상을 알아봤다.
“흡연실에서 입조심해라”
최근 국회에 근무하는 한 보좌관이 본지에 전한 말이다. 이 보좌관은 “최근 사정기관에 근무하는 후배한테 전화를 받았다”며 “그 후배가 말하길 휴게실에서나 흡연실, 찻집에서 입조심을 하라고 당부해 황당했다”고 전했다.
그는 “지방선거를 맞이해 사정기관에서 국회 동향과 선거관련 대화를 엿듣고 보고하는 것 같다”며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지만 말을 듣고서 국회내 휴게실이나 흡연실에서 모르는 얼굴이 앉아 있으면 가급적 입조심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나만 알고 있기가 그래서 친한 선배와 동기, 후배 보좌관들에게 알려줬다”며 “국회사찰을 하는 것 같고 신공안정국이 온 것 같다”고 불만스런 태도를 보였다.
국회에는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을 비롯해 정부부처, 공사, 공단, 공기업, 대기업 대외협력팀 등 수많은 정보담당하는 사람들이 출입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대다수는 얼굴이 알려져 있고 공식적으로 명함을 들고 다녀 상임위별 필요한 국회의원이나 보좌관을 만나 정보를 주고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반인을 가장해 국회안팎 공공장소인 흡연실, 휴게실, 찻집 등에서 혼자나 2~3명씩 조를 짜서 움직이는 ‘얼굴 없는 I·O’가 생겼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주로 지방선거 관련 대화를 채집하는 게 주목적이다.
국회, ‘얼굴없는 I·O’ 출현에 초긴장
특히 대규모의 인사들이 출마하는 지방선거를 맞이해 공천권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국회의원들이라는 점에서 국회주변이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한나라당, 민주당, 정치 컨설팅, 리서치회사 등 정치관련 기관이 국회 주변에 몰려 있다는 점에서 국회내 돌아가는 상황, 지방선거 동향, 국회의원 행보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에 등록된 기자수만도 1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회주변에는 사정기관에서 정보를 담당하는 인사들이 즐겨 찾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동안 ‘국회 사찰’을 의심케하는 ‘얼국없는 I·O’들의 등장은 처음으로 국회보좌관들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셈이다.
그동안 사정기관들의 ‘정치 사찰’이나 ‘국회 사찰’에 대한 의혹은 공공연히 제기됐었다. 유명한 사건은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 사라진 ‘사직동팀’이 있다. 사직동팀은 청와대의 특명에 따라 국회의원, 장관, 기업인 등 고위인사들의 정보 수집과 내사, 그리고 수사를 주로 담당했다. 하지만 97년 ‘DJ 비자금 수사’, 97년 ‘옷로비 사건’, ‘한빛은행 대출비리’ 등에서 권력 남용과 정치인 사찰을 빌미로 2000년 10월 해체됐다.
또한 1990년에는 보안사 소속 윤석용 이병으로 촉발된 민간인 사찰이 알려져 국방부 장관, 보안사령관이 경질됐고, 신임 국방장관은 “법적 근거 없는 월권 행위”라고 잘못을 시인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한나라당 김영우 의원이 폭로한 국방부 문건이 ‘정치사찰’이라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김 의원이 공개한 문건에는 ‘청와대 행정관 대상 대대적인 물갈이·골프운동 관련 청와대 분위기·특정 인사의 국회의원 출마설’ 등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특히 이 문건은 국방부 ‘요원’의 활동 등을 통해 작성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종성 국방부 조사본부장은 이와 관련해 “국방장관이 국정의 한 분야를 담당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며 “(해당 첩보 수집은) 당연히 우리의임무로 언론과 요원 활동, 유관기관 협조에 의해 취득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금품수수 보좌진 줄소환에 국회사찰까지?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특정 인사의 사적인 발언을 입수해 보고한 것은 정치군인의 행태이다”, “정치사찰이나 유사한 의혹을 받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질책을 당한 바 있다.
국정원 역시 ‘정치 사찰을 한다’는 의혹어린 시선을 받고 있다. 10여명의 국정원 담당 직원이 국회에 상주하면서 정보 수집활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세훈 국정원장의 입장은 “정치정보 수집은 불가피하다”는 반응이다. 원 원장은 “정치정보 수집과 정치 사찰은 정치관여와는 명백히 다르다”며 “정치 개입은 근절하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책정보수집과 정치사찰 및 정치 개입의 경계선이 모호하다는 점에서 논란을 빚고 있다.
이렇듯 공식적인 I·O 활동도 자칫 국회로부터 의혹어린 시각을 받을 수 있는데 비공식적인 I·O 활동은 국회에 상주하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국회 보좌관 여러명이 특정 업체에 대해 금융권 대출 연장건으로 금품을 수수해 본격적인 검찰 수사가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보좌관들의 줄소환도 예고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알선 수재가 일상 업무인 국회 보좌관들은 ‘몸조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 ‘얼굴없는 I·O 출현’으로 ‘입조심’까지 더해 긴장감마저 나돌고 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pot.co.kr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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