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1970년대 기가막힌‘박치기’로 프로레슬링계를 평정했던 김일(78)과 턱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백 드롭의 명수’ 장영철(73)에게 열광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터뜨리는 공포의 박치기 기술로 거구의 외국 선수들을 단방에 쓰러뜨렸던 김씨는 레슬링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알려져 있다. 그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은 잠시나마 암울한 현실을 잊고 흑백 TV앞에 모여들어 뜨거운 환호를 쏟아내곤 했다. 당시 프로레슬링은 축구·야구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인기 스포츠였고, 주로 해외가 주 활동 무대였던 역도산의 제자 김일과 국내에서 활동하던 장영철은 국민적 최고의 스타였다.
그러던 중 장씨는 ‘프로레슬링은 쇼’라고 폭로하면서 김일을 비롯한 동료, 선후배들에 미운 털이 박혔었다. 김씨는 일본에 머물다 1994년 귀국하여 후배 양성과 레슬링 재건사업에 의욕을 보였지만 지난 해 갑자기 건강이 악화돼 노원구 을지병원에서 입원치료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당뇨에 고혈압, 하지 부종, 심부전증 등 각종 질환으로 거동까지 불편해 장거리 이동시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다. 김씨의 후배인 한국프로레슬링연맹(WWA)의 최두열 기획실장의 말에 의하면 “합병증을 앓으면서도 지난 7일~12일 국토 1,500km를 여행하는 대장정을 마쳤고, 김씨는 서울, 지방할 것 없이 시합이 있을 때마다 직접 가서 후배들을 격려한다”고 한다.
그리고 계속된 치료로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그는 41년이 지난 2006년 2월8일 경남 김해의 한 병원에서 장씨와의 만남을 가졌다. 경남 김해의 한 병원에 입원 중인 장씨 역시 1년 전 2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장씨는 의사소통조차 어렵고 중증 노인성 치매까지 걸려 100kg이나 나가던 체중이 65kg으로 줄었다. 두 사람은 레슬링이 다시 한 번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합심하자고 얘기했다.
# 신한국프로레슬링협회북한 평양 빅매치 ‘추진중’
1960~19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프로레슬링. 80년대 접어들면서 급격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 고사 직전까지 갔으나 최근 다시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매년 서울, 부산, 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프로레슬링대회가 열리고 있으며 국내 프로레슬링의 간판스타 이왕표를 비롯해 한국, 미국, 일본, 캐나다, 멕시코의 프로레슬러들이 총출동하는 한국프로레슬링연맹(WWA) 프로레슬링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왕표씨는 현재 한국프로레슬링연맹 대표와 대한종합격투기협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미국을 오가며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 선문대 무도학과 겸임교수로 나서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하지만 후진 양성에 있어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이 재원 확보와 협찬 후원의 부족이라는 점이다.최근 신한국프로레슬링협회(NKPWA)에서 한국과 미국, 멕시코 등 5개국 세계 유명 프로레슬러들이 대거 출전하는 ‘세계프로레슬링 챔피언 결정전(Impact 2006)’을 2월 10일 국내 광명 돔 경륜장에서 개최하였다. ㈜케넷엔터테인먼트와 NKPWA가 공동주최하는 이번 대회는 MBC-TV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프로레슬링 TV 생중계는 1985년이후 21년만에 처음이다. NKPWA는 이 대회를 과거 최고의 스포츠로 자리잡았던 한국 프로레슬링이 재도약할 수 있는 계기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김두만 NKPWA 회장은 “한국 프로레슬링 45년 역사상 가장 큰 대회가 열리는 만큼 이번 기회를 통해 과거 역도산과 같은 최고 실력을 갖춘 스타급 선수들을 발굴하겠다”며 “중국 프로레슬링 선수에게 경기 기술을 전수해 앞으로 중국에서 프로레슬링대회를 개최하고 역도산의 고향인 북한 평양에서도 경기를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구명석 gms7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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