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아스날의 숙적은 토튼햄이지만 아스날의 아성에 도전하는 지역 라이벌은 런던 남서쪽의 부자구단 첼시다. 아스날의 질주에 가려 런던의 2인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긴 하지만 런던 내에서 파란 유니폼의 첼시가 차지하는 위상은 아스날 못지않다. 게다가 최근에는 엄청난 양의 돈까지 거머쥐어 아스날의 자신만만한 고공비행을 위협하는 강호로 급부상했다. 모두가 2003년 7월 팀을 떠맡은 러시아의 거부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덕택이다.
부자구단 명성과시
‘조만장자’ 아브라모비치는 부임 직후 첼시의 모든 부채를 탕감했고 이후 두 달 동안 무려 1억 1천만 파운드(약 2,200억 원)를 쏟아부어 유명 선수들을 사재기했다. 그리고는 “축구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순수주의자들의 냉소적인 평가를 조소하듯 해당 시즌 리그 2위와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의 성과를 거둬 돈의 위력을 만천하에 과시했다. 2003/2004 시즌에 포르투갈의 FC포르투를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던 조세 무링요를 영입한 것도 이때의 일이다.
취임식에서 팬들을 향해 “여러분은 이제 세계 최고의 감독을 갖게 됐다”고 당찬 일성을 내지른 이 미남 감독은 언제나 당당한 언행과 과학적인 자료에 근거한 축구로 첼시가 뿌린 돈의 힘을 고스란히 전력에 반영시키고 있다. 이처럼 첼시는 부자 구단주의 힘을 앞세워 런던 맹주의 옥새를 빼앗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첼시의 홈구장 스탬포드 브리지는 런던 내에서도 땅값 비싸기로 이름난 고급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다. 돈 냄새가 물씬 풍기는 팀 이미지와 딱 들어맞는다. 경기가 열릴 때면 얼마 되지 않는 역과 경기장 사이의 길은 각종 구단 용품을 판매하는 노점상이 즐비하게 늘어선다.
당시 가장 인기 있던 품목은 첼시의 새로운 명물로 떠오른 러시아산 털모자였다. 러시아 재벌의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연승행진 덕에 첼시는 ‘첼스키(Chelski)’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고 이 과정에서 러시아의 털모자는 아브라모비치 시대의 첼시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됐다. 부자 구단주 덕분에 엄청난 돈을 퍼부어가며 수많은 선수들을 영입한 뒤 심지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단장까지 스카우트한 아브라모비치의 엄청난 자금력은 이미 그 자체로 첼시의 상징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일까, 경기장과 맞닿아있는 첼시 호텔의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영웅 ‘졸라의 추억’
경기장 건물 안쪽에서 영업 중인 첼시 공식 용품 판매점은 여느 구단들 못지않게 다양한 상품으로 치장되어 있다. 2층에는 첼시가 유럽과 영국에서 따낸 우승 트로피들이 진열되어 이 런던 팀의 자존심을 살려준다. 매장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낯선 유니폼이다. 파란색 홈 경기 유니폼과 하얀색 원정경기 유니폼 사이로 낯선 빛깔의 유니폼이 전시되어 있다. 유니폼 판매는 유럽 구단들의 주된 수입원 중의 하나다. 선수들과 똑같은 유니폼을 입는 것으로 팀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완성하려는 팬들의 바람은 한 벌 당 10만 원에 이르는 고가의 유니폼이 매년 수만 장씩 팔려나가게 하고 있다. 당연히 공식 용품점에서 다른 구단의 유니폼을 판매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낯선 유니폼의 정체는 이내 밝혀졌다.
이탈리아 2부 리그(세리에B) 소속의 칼리아리 팀의 것이며 등에는 모두 졸라의 이름이 박혀 있다. 팬들이 뽑은 첼시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힐 정도로 빼어난 활약을 펼친 졸라는 2003년 여름 서른다섯의 나이로 팀을 떠났다. 은퇴하기 전 고향팀에서 남은 힘을 바치겠다는 것이 졸라의 의지였고 그렇게 팀을 떠난 그는 1년 만에 팀을 1부 리그(세리에A)로 끌어올리는 놀라운 역량을 발휘했다. 졸라를 잊지 못하는 첼시 팬들은 가깝지 않은 칼리아리 경기장에 매달 수백 명씩 날아가 식지 않은 애정을 과시했다. 첼시 매장에서 판매되는 칼리아리 유니폼이 들려주는 가슴 찡한 이야기다.번화가에 자리잡은 첼시 경기장은 시내에서 다소 떨어진 위치에 있는 영국 내 다른 구단들과 달리 확실히 돈 냄새가 난다. 그에 걸맞게 입장료 역시 영국 최고 수준. 일본에서 날아온 축구 관광객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띄는 것도 높은 입장료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무링요 탁월한 지도력 발휘
2003년이 저물 무렵 첼시의 홈구장 스탬포드 브리지를 찾았을 때 첼시팬들의 표정은 조금 어두웠다. 무투, 크레스포, 마케렐레, 조 콜, 더프 등 내로라하는 A급 스타들을 줄줄이 영입했지만 한동안 승수를 쌓지 못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표정 역시 밝을 리 만무했다. 세상에 리그 경기 입장권의 가격이 50파운드(약 10만 원)라니! 한국에서라면 친구 10명이 프로축구를 즐길 수 있는 가격이다. 게다가 좌석 위치는 지붕 바로 아래인 맨 윗줄. 아무리 ‘조만장자’의 팀이라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아시아 동쪽 끝에서 날아온 고학생에게는 너무도 사치스러운 경험이다.
이날의 상대는 팀 역사상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에 발을 들인 포츠머스. 남쪽 해안 도시의 소규모 팀이지만 이 시즌에만 강호 리버풀을 두 번씩 패퇴시켰을 만큼 만만찮은 저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잉글랜드 대표를 지낸 테디 세링험과 체코 국가대표 파트릭 베르게르가 결장한 이날만큼은 약체의 전형을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덕분에 스러져가던 첼시의 우승 희망은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첼시는 모처럼 주전 선수들이 제 몫을 다한 덕에 3-0 완승을 거두었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을 지킨 3만여 관중들은 오랜만에 기분 좋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첼시의 변화가 포르투갈 출신의 신임 감독 조세 무링요의 덕분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링요는 이제 갓 마흔을 넘긴 젊은 감독이지만 이전 팀 포르투에서 UEFA컵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모두 거머쥐면서 일약 세계 최고 감독의 대열에 올라섰다. 감독 경력이 4년에 불과한 무링요가 주목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물론 탁월한 지도력이다. 또 다른 이유는 그의 독특한 이력이다. 서른아홉의 젊은 나이에 포르투 감독으로 부임한 무링요는 이후 2년 동안 두 차례의 리그 우승을 일궜고 챔피언스리그와 UEFA컵을 석권하며 단숨에 명장 반열에 올랐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구명석 gms7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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