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수비 전략 ‘철회’…공격 축구로 ‘대전환’ 우승 ‘넘본다’
빗장수비 전략 ‘철회’…공격 축구로 ‘대전환’ 우승 ‘넘본다’
  • 구명석 
  • 입력 2006-06-08 09:00
  • 승인 2006.06.0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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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감각’ 델 피에로

91~92시즌에 세리에 B 클럽이던 파도바에서 프로선수로서의 인생을 시작, 적은 출장수와 골수에도 불구하고 스카우터들의 눈에 띄어 AC밀란과 유벤투스의 영입전 끝에 93~94시즌에 유벤투스에 입단했다. 입단 첫 시즌엔 주로 교체멤버로 활약했었지만, 94년 3월 있었던 파르마와의 홈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그 가능성을 보여주어 유벤투스의 미래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주전으로 도약한 94~95시즌부터는 더 이상 유망주가 아닌 완성된 선수로서의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그 와중에 유로96에도 참가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 동안의 윙포지션을 버리고 본격적인 스트라이커로 활약하기 시작한 96~97시즌부터 골에도 눈을 뜨기 시작한 그는 97~98시즌 들어 21골을 몰아치며 유벤투스에서의 3번째 스쿠데토를 차지했고,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0경기에서 10골로 득점왕에 오르기도 하는 등 델 피에로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훌륭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98년 월드컵에선 부상으로 제대로 활약을 못하고, 98~99 시즌에도 우디네세전에서 부상을 당하면서 몇 시즌 동안 활약을 하지 못 하였다. 그러던 중 16골을 기록한 01~02시즌의 스쿠데토로 완벽히 증명되었으며 2002월드컵에서도 주전은 아니었지만 멕시코전에서 이탈리아의 자력 16강진출을 확정짓는 천금의 동점골을 성공시켜 생애 통산 월드컵 1호골을 기록했다. 세리에-A 24 경기에 출장해 16골을 터뜨리며 유벤투스에 리그 2연패를 안겼다. 개인으로서는 통산 5번째 우승.

또한 챔피언스리그에서도 13경기에 출장해 5골을 터뜨렸으며, AC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결승 승부차기에서 유벤투스 선수들 중 킥을 성공시킨 단 두 명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유럽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 중 한명으로 예측하기 힘든 플레이로 상대 수비수를 농락하는 것이 그의 장기이다. 오픈 플레이 상황에서 뛰어난 골 결정력을 보유했을 뿐만 아니라, 프리킥 상황에서도 골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한 선수로 이번 2006 독일월드컵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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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비에리’ 루카 토니

루카토니는 지난 2004년 8월에 있었던 아이슬란드와의 친선전을 통해 이탈리아 대표팀 데뷔전을 가진 신예이다. 이어 그는 노르웨이와의 2006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는 천금 같은 역전 결승골을 터트리며 국제무대에서도 자신의 위용을 과시했다. 2004~2005 시즌 35경기에 출전해 20골을 터트린 활약으로 2005년 여름 이적료 1,000만 유로, 계약기간 4년 조건으로 피오렌티나에 입단하였다.

비첸자와 브레시아에서의 활약으로 각광 받기 시작한 이탈리아 대표팀의 장신 스트라이커. 194㎝, 89㎏의 건장한 체격에서 내뿜는 강인함과 파워, 그리고 헤딩력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미드필더에게 적절히 공을 배분할 줄도 아는 경기 감각을 지녔다. ‘제 2의 비에리’로 불릴 정도로 힘과 높이를 갖췄으며,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발재간과 패싱력, 볼 키핑력 등을 두루 겸비했다.

02~03 시즌에는 무릎 부상으로 시즌의 절반 이상을 결장하며 선수생명에 커다란 위기를 맞기도 하였지만, 03~04 시즌 30골을 터트리며 세리에 B 득점왕을 차지, 소속팀 팔레르모의 세리에 A 승격을 이끌며 부활에 성공하였다. 그는 ‘피파 월드컵 닷컴’(FIFAworld cup.com)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때때로 경기장 이곳 저곳을 넓게 돌아다니며 어슬렁거리는 경향이 있다”고 자평하면서 “우수한 기술 역시 분명 중요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신체적으로 상대편을 제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비첸자와 브레시아에서의 활약으로 각광 받기 시작한 이탈리아 대표팀의 장신 스트라이커. 우리말로는 ‘천둥과 번개’라는 별명을 지닌 루카 토니는 이번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강력한 득점왕 후보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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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스트라이커’ 필리포 인자기

자신의 고향팀 피아첸자에서의 프로생활을 시작으로 주로 세리에 B에서 뛴 ‘필리포 인자기’는 92~93 시즌부터 94~95 시즌까지 3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세리에 A 클럽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 그러나 인자기는 파르마 입단 후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결장하였고 지안프랑코 졸라, 흐리스토프 스토이치코프 등의 선수에 가려 많은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였다.

결국 파르마에서의 불운한 1년을 보낸 인자기는 이듬해 아탈란타로 이적하였고, 그곳에서 자신의 기량을 널리 떨치게 된다. 이로 인해 세리에 A 명문클럽들의 뜨거운 러브콜을 받기 시작한 인자기는 결국 1,000만 달러의 이적료에 유벤투스에 입단하며 전성기를 달린다.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지네딘 지단과 함께 팀 공격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으며, 매 시즌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팀 내 최다득점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인자기의 유벤투스에서의 입지는 99~00시즌의 다소 부진한 활약과 다비 트레제게의 영입으로 점차 줄어들었고, 결국 2001년 여름에는 3,500만 달러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AC 밀란에 입단하게 된다. 2002~03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0골을 터트리는 맹활약으로 AC 밀란의 우승에 크게 일조하였고, 리그에서도 17골을 터트리며 득점 부분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인자기는 빠른 두뇌회전과 스피드를 활용해 상대의 오프사이드 함정을 파괴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탁월한 골 감각과 위치선정에 매우 능한 공격수다. 라치오의 공격수 시모네 인자기와 친형제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1999년 11월에 있었던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는 형제가 같이 이탈리아 대표팀 경기에 출전해 많은 관심을 끌기도 하였다. 하지만 인자기는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한 선수다. 그는 이번 월드컵이 3번째 출전이다.

98프랑스 월드컵은 그에게 좋은 기억을 주지 못했다. 그는 비에리, 델피에로, 바죠 등이 이끄는 당시 이탈리아 공격진 사이에서 경기장에 나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4년 후, 2002 한일월드컵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에콰도르와의 첫 경기 전에 부상을 당하며 대표팀에서의 그의 공간을 찾지 못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월드컵에 참가하는 그는 각오가 남다르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파워 스트라이커’로 ‘아주리 군단’의 공격 폭풍을 이끌 필리포 인자기.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 그의 화려한 플레이를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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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시의 후예’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80년대 파올로 로시, 90년대에는 로베르토 바지오가 이탈리아의 공격수를 대표했다면 이번 2006년 독일월드컵에는 ‘알베르토 질라르디노’가 있다. 이탈리아의 특급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 선수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는 82년생이라는 젊음도 갖고 있다.99~2000시즌 세리에 A의 피아첸자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질라르디노는 02~03시즌부터 본격적으로 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비록 24경기에 4골을 득점하는데에 그쳤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았고, 2004년 경이로운 득점 행진을 기록하며 축구 팬들을 놀라게 한다. 결국 시즌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득점 행진에 가세한 질라르디노는 우디네제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무려 4골을 폭발시키며 23골을 기록, AC 밀란의 안드레이 셰브첸코(24골)에 이어 득점 랭킹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2004~2005 시즌 역시 23골을 터트린 질라르디노는 24골의 크리스티아노 루카텔리(리보르노)에 이어 득점 랭킹 2위에 머물렀지만, 2,500만 유로의 이적료에 AC 밀란에 입단하며 새로운 무대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기회를 얻었다. 세리에 A 득점왕 경력을 갖고 있는 안드레이 셰브첸코, 크리스티안 비에리, 필리포 인자기의 존재는 그가 더욱 뛰어난 스트라이커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우승으로 이끈 불세출의 공격수 파올로 로시와 플레이 스타일에서도 많은 부분 닮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질라르디노는 2004년 6월, 이탈리아를 유럽 U-23 선수권에서 이탈리아가 우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고,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4골을 터트리며 이탈리아에 동메달을 안겼다.



# 한가족 월드컵 참가 ‘봇물’아버지와 아들…감독과 선수로 ‘동반출장’

월드컵때마다 아버지와 아들, 형제들이 월드컵에 함께 참가해 축구 팬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1998 프랑스 월드컵 때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과 선수로 활약한 ‘세사레 말디니’-‘파울로 말디니’ 부자(父子). 이 부자는 또 2002 한·일 월드컵 때는 이탈리아의 ‘세사레 말디니’-‘파울로 말디니’ 부자가 각각 파라과이 감독과 이탈리아 수비수 선수로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말디니 부자는 2회 연속 월드컵 무대를 함께 밟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번 독일 월드컵에도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한 팀으로 출전하는 부자(父子)들이 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아버지가 감독, 아들이 선수로 크로아티아를 대표해 월드컵에 출전한다. ‘즐라트코 크라니차르’(50) 감독이 23명의 엔트리에 아들 ‘니코’(22·하이두크 스플리트)를 포함시켰다. 크라니차르 감독은 2004년 9월 20세에 불과했던 니코를 대표로 깜짝 발탁했었다. ‘중원 사령관’ 니코의 A매치 데뷔전이었던 2004년 9월 헝가리와 독일 월드컵 유럽 예선 1차전을 앞두고 그해 여름 아버지 즐라트코가 당시 20세의 아들을 대표팀에 발탁하자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지금 니코의 월드컵 최종 엔트리 합류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다. 21세 이하 대표팀에서도 빼어난 활약을 보였던 니코는 ‘크로아티아 축구의 미래’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A매치에도 19경기에 출전, 3골(지난 30일)을 터트렸다. 또 세르비아-몬테네그로를 이끌고 독일 월드컵에 출전하는 ‘일리야 페트코비치’(61) 감독이 지난 30일(한국시간) 자신의 아들인 ‘두샨 페트코비치’(32)를 대표팀에 합류시켰다.

페트코비치 감독은 스트라이커 미르코 부치니치가 부상으로 월드컵 출전이 어려워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체 선수로 아들을 선발했다. 수비수인 두샨은 A매치 12경기에 나와 1골을 기록하는 등 대표 경력이 있지만 스타 출신 아버지의 후광으로 대표가 됐다는 눈총도 있었다. 세르비아에서는 “스트라이커가 다쳤는데 왜 수비수를 뽑느냐”며 곱지 않은 시선이다. 세르비아는 아르헨티나. 네덜란드. 코트디부아르와 함께 우리가 잘 아는 ‘죽음의 C조’에 속해 있다. 페트코비치는 아들을 데리고 죽음의 조에 가는 셈이다.

이번 독일월드컵에는 쌍둥이 형제도 함께 출전한다. 한국의 조별리그 3차전 상대인 스위스의 ‘필리프 데겐’-‘다비드 데겐’ 형제다.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에서 오른쪽 윙백으로 뛰는 형 필리프 데겐은 스위스의 확고한 주전이다. 반면 스위스 리그 FC바젤 소속의 동생 ‘다비드 데겐’은 최근 코트디부아르전에서 후반 교체 출전, A매치 데뷔전을 가졌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수비수 ‘게리 네빌’-‘필립 네빌’ 형제도 그렇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전 윙백 ‘게리 네빌’은 23명 최종 엔트리에 들었으나, 에버튼의 필립은 예비 엔트리 5명에 추가 합류했다.

구명석  gms7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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