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 훤해졌죠…내년에도 기대해 주세요”
“‘신수’ 훤해졌죠…내년에도 기대해 주세요”
  • 구명석 
  • 입력 2006-10-20 11:14
  • 승인 2006.10.20 11: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메이저리거 추신수 ‘금의환향’


올 시즌 메이저리거로서 성공적인 첫 시즌을 보낸 추신수.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한지 6년 만에 가장 뛰어난 성적을 올린 클리블랜드의 추신수가 지난 10일 가족들과 함께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특히 그는 지난 7월 27일 시애틀에서 클리블랜드로 전격 트레이드된 뒤 이적 첫 경기에서 결승홈런을 터뜨려 팀을 승리로 이끌면서 강한 인상을 심었다. “내년에는 빅리그에서 더 많은 경기에 출전하고 싶다. 기회가 많으면 기록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자신의 목표를 말하던 추신수의 말대로 그 목표를 내년엔 꼭 이루길 기대해 본다.

가장 화려한 한해 보낸 추신수

미국프로야구 진출 6년 만에 가장 화려한 한해를 보낸 추신수(24·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지난 10일 부인 하원미(23)씨, 아들 무빈군과 함께 귀국했다.
부산고를 졸업하고 2001년부터 주로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던 추신수는 7월말 인디언스로 이적했으며,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49경기에 출전해 타율 0.280(157타수 44안타), 3홈런, 22타점을 기록하며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했다.
추신수는 입국장에서 “미국에서 6년 동안 야구하면서 이렇게 환영 받은 적은 처음이라 떨린다”며 “올핸 성적보다는 메이저리그에 적응하는 과정이었고 자신감과 부족한 부분을 느꼈다. 내년에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적인 첫 시즌을 보여주었던 추신수는 특히 지난 7월 27일 시애틀에서 클리블랜드로 전격 트레이드된 뒤 이적 첫 경기에서 결승홈런을 터뜨리며 팀의 1-0 승리를 견인해 강한 인상을 심었다. 공교롭게도 상대가 자신을 버렸던 시애틀이었기에 그 의미는 더욱 남달랐다.
추신수도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당시 상대투수였던 펠릭스 에르난데스와 마이너리그에서 3년 정도 같이 지냈던 추신수는 “같은 팀에서 공 던지는 모습은 많이 봤지만 정작 투타 승부를 벌인 것은 처음이었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그는 “당시 시애틀전에서 그 홈런을 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추신수는 당시 시애틀전과 함께 지난 8월 4일 보스턴전에서 에이스 조쉬 베켓을 상대로 만루 홈런을 터뜨린 장면 또한 잊을 수 없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쉬움도 많이 남는 시즌이었다. 추신수는 9월 중순 계속된 삼진으로 심각한 슬럼프에 빠졌을 때를 떠올리며 “당시에는 타이밍이 너무 느렸고 생각이 너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추신수는 “처음에는 상대 투수들이 빠른 공을 많이 던졌는데 내가 자꾸 쳐내자 변화구를 던졌다. 때문에 나도 변화구를 치려고 하다보니 오히려 강점인 직구 타이밍을 제대로 맞히지 못했다”고 부진이유를 설명했다.
이승엽과 비교하는 질문에 대해 “연륜도 그렇고 비교가 되지 않는다. 기회가 되면 뵙고 타격에 대해 많이 물어보고 배우고 싶다”고 한 추신수는 아시안게임 대표팀 탈락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학교 다닐 때도 2∼3차례 국가대표로 뽑혀 국제대회에 나간적 있다. 이번에도 아시안게임에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기회가 오지 않아 할 수 없었다. 김재박 감독님께서 알아서 판단하신 부분이고 내가 무엇이라고 말할 부분이 아니다. 다음에 기회가 오면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나가고 싶다. 포스트시즌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김 감독님께서 좋은 성적을 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추신수는 곧 바로 부산 본가로 내려가 며칠 간 휴식을 취한 뒤 미즈노사와 용품 계약 건으로 일본에 건너갈 예정이고 11월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으로 개인 훈련에 돌입한다.
그는 좌투수 및 변화구 공략에 대한 타격 연습을 중점적으로 실시하고 내년 1월10일께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추신수는 ‘팀의 활력소‘
“추신수가 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우리가 바라던 대로 충분한 활약을 펼쳐주고 있다.”
추신수에 대한 클리블랜드 마크 샤피로 단장(39)의 말이다. 그는 시애틀에서 줄곧 유망주로 불리면서도 기회를 잡지 못하던 추신수를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해온 주인공이다. 갑작스런 이적 통보를 받고 어리둥절해 있던 추신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마이너리그가 아닌 빅리그에서 곧바로 뛰게 될 것”이라고 전하며 자상함을 보여 추신수를 감동시키기도 했다.
마크 샤피로 단장은 “트레이드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는 추신수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는 야구팬들이 알고 있듯이 왼손 타자에 빠른 발과 강한 어깨까지 갖고 있는 나무랄 데가 없는 선수다. 이미 여러번 이야기했듯 우리는 마이너시절부터 그를 눈여겨 보고 있었다”고 밝히며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클리블랜드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목표로 젊은 선수들로 팀을 재건하는 등 리빌딩( rebilding) 작업중에 있다고 설명한 그는 “올 시즌이 끝나면 몇몇 선수들은 팀을 떠날지도 모른다”며 “그 때가 되면 추신수의 팀 내 역할은 더 커질 것이고, 우리는 그가 그 때 더 좋은 활약을 펼쳐 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추신수가 고등학교 시절 투수를 맡았던 것을 아느냐는 질문에 샤피로 단장은 “추신수가 고등학교 때까지 투수를 맡았던 걸 물론 잘 알고 있다. 그가 타자로 성장하는데 투수 경험이 중요한 밑바탕이 될 것이다. 그가 선구안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그 덕분”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WMB’ 가족사랑에 대한 표현
클리블랜드 ‘추추 트레인’ 추신수의 모자 안창에는 ‘WMB 사랑해’라고 적혀 있다.
부인 하원미씨와 아들 무빈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다. 원미씨의 이니셜이 ‘WM’이고 18개월된 아들 무빈이 ‘MB’라 자연스레 ‘WMB’로 표현한 것이다.
추신수가 부인 하원미씨를 처음 만난 건 2003년 겨울 부산 시내.
우연치 않게 함께 한 자리에서 하원미씨에 한눈에 반한 추신수는 숫기가 없어 처음에는 제대로 말도 못하다가 이틀 뒤 과감하게 ‘사귀자’고 다가섰고 그 뒤 본격적인 사랑이 시작됐다.
하씨는 “추신수와의 첫 만난 자리에서 남편이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 그냥 유학생이려니 짐작했어요. 그리고 야구를 한다길래 대학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나 보다 생각 했어요”라며 “그런데 이틀 뒤 추신수가 유니폼을 입은 자신의 사진이 들어간 카드에 사인을 해 가지고 와 ‘사귀자’고 하더군요. 그제서야 전 그의 직업이 야구선수임을 그때 알았다”고 아내 하씨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웃으며 말했다.
사랑이 깊어지고 하씨가 미국으로 건너간 2004년 6월. 추신수가 더블 A에서 뛰던 그 때. 샌안토니오에 도착한 하씨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쪽 지역 사람들에게 추신수는 ‘영웅’ 대접을 받고 있어서였다. 하씨는 “영웅의 약혼자라 생각했는지 사람들이 내게도 끔찍하게 대해 줬다”고 말했다. 그 해 12월 미국에서 약식 결혼식을 올린 뒤 2005년 3월 13일 첫 아들 무빈이를 얻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릴적 같은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 집 근처에 있는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인연의 끈’을 이어오고 있었던 터.
외로운 미국 생활이 힘들 법도 하건만 아내는 밤늦게 경기를 끝내고 들어온 남편을 위해 늦은 저녁을 차리고 남편은 이를 먹으며 체력을 유지한다. 마이너시절 아내는 원정길을 나서는 남편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싸서 손에 쥐어주곤 했다. 그런 남편에게 동료들은 ‘러키 보이’라고 부러워했다.
추신수는 “예전에는 야구보다 더 중요하고 더 사랑하는 게 없었다. 그러나 와이프가 곁에서 함께 해주고 무빈이가 태어난 뒤 야구보다 소중한게 가족임을 깨닫게 됐다”면서 “결혼한 뒤 큰 소리 내 싸워본 적이 한번도 없는 것 같다. 나를 너무 많이 이해해줘 고마울 뿐”이라고 남편 추신수는 말한다.
더불어 “원미의 경우 나에게 너무나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다. 내가 마이너리그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녀 덕분이다. 어렵고 힘들 때 불평 한마디 안 하고 나에게 큰 힘이 돼준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야구를 더 잘 해야한다”며 아내를 향한 추신수의 사랑을 숨기지 않았다.



# 日언론 “이승엽,요미우리서 1년 더 뛴다”
이승엽(30)이 1년 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기로 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요미우리 계열의 스포츠신문 ‘스포츠 호치’는 지난 12일 홈페이지를 통해 “메이저리그 도전과 요미우리 잔류 사이에서 고민하던 이승엽이 요미우리에 남는 것으로 결정났다. 여러 관계자가 이를 분명히 했다”며 크게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승엽이 지인에게 ‘이번 주나 늦어도 다음 주까지는 결정하고 싶다’고 조기 결단을 시사했다. 메이저리그의 이적 교섭이 본격화하는 것은 11월 이후다. 부동의 4번 타자의 결단은 요미우리의 V탈환에 희소식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향후의 초점은 계약 내용이지만 이승엽은 여전히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가지고 있어 다년 계약이 아닌 1년 계약이 될 전망이다”라고 덧붙였다.
현지의 다른 언론도 요미우리가 올 시즌 41홈런과 타율 0.323,108타점,101득점으로 맹활약한 이승엽을 잡으려고 3년간 10억엔의 몸값을 제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스포츠닛폰도 같은 사실을 보도하며 “이승엽이 이번 달 안에 회견을 할 가능성도 있다. 단지 최종적으로 메이저리그를 단념한 것이 아니어서 잔류를 하더라도 내년 시즌에 다시 메이저리그 진출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고 전했다.
이승엽의 아버지 이춘광씨도 아들의 요미우리 잔류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이춘광씨는 “승엽이는 고교 졸업 후 프로에 입단하고 지난 2003년 시즌을 마치고 일본에 진출할 때도 내가 반대했지만 자신의 뜻을 관철했고 결과는 모두 성공적이었다. 내가 진로 문제를 왈가왈부할 수는 없고 결정을 존중할 뿐이다. 하지만 무릎이 좋지 않아 기를 쓰고 메이저리그에 갈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승엽이 일본 프로야구에서 정상급의 인기를 누리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승엽은 다음달 2일부터 도쿄돔에서 열리는 미ㆍ일 올스타전 팬 투표 1루수 부문에서 2위에 뽑혔다. 이승엽은 지난 7일 일본야구기구(NPB)가 발표한 올스타 투표 최종 결과에서 2만9,630표를 얻어 3만1,995표를 획득한 니혼햄의 오가사와라 미치히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각 포지션별로 1, 2위가 함께 발표됐고, 이승엽은 외국인 선수로는 유일하게 올스타 선수로 선정됐다. 이승엽은 퍼시픽리그 홈런왕(32개), 타점왕(100개)에 오른 오가사와라보다 내용 면에서 월등한 타격 2위(0.323), 홈런 2위(41개), 타점 3위(106개) 등의 성적을 거뒀지만 ‘사무라이 타격폼’과 수려한 외모 등 최고 스타선수로 인기를 얻고 있는 오가사와라를 넘지는 못했다.
정상의 인기를 확인했지만 미ㆍ일 올스타전에 이승엽이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수술 후 회복 기간과 재활 기간을 고려하면 경기에 나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승엽도 최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출전하지 않을 것”이라며 출전 가능성을 부인했다.
이승엽은 올시즌 한때 2위와 9개 차이로 앞서며 홈런왕을 예약하는 듯했으나 무릎통증으로 타이론 우즈에 역전당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메이저리그 진출 문제는 요미우리와 1년간 계약해 내년에 홈런왕에 오른 뒤 다시 한번 도전할 가능성도 높아져 추후가 주목된다.
<석>

구명석  gms75@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