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2일 정도 서울에서 쉬며 모 처에 있는 식당에 들렀을 때, 서울 사람들이 사인을 해달라며 ‘한화를 응원했다’고 말해 놀랐다.”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돌풍을 일으킨 한화 이글스 김인식 감독이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심정이다. ‘믿음의 야구’라 불리는 ‘김인식 표’ 야구 철학을 만들어낸 김 감독. WBC와 한국시리즈에서 그가 보여준 감독으로서의 역량은 팬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평소 “객관적인 전력은 데이터에 불과하다”고 말해온 김 감독은 올 시즌 자신의 철학을 몸소 보여준 진짜 ‘승부사’로 거듭났다.
1965년 ‘크라운 맥주’에서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한 김 감독은 1973년 서울 배문고등학교 감독을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1982년 동국대학교 감독을 역임한 김 감독은 이후 쌍방울 레이더스(1990~1992), 두산 베어스(1995~2003)를 거쳐 현재의 한화 이글스(2004~현재)에 이르렀다.
‘김인식 감독’하면 유명한 일화중 하나가 지난 2001년 두산 베어스를 이끌던 당시 준플레이오프(한화)와 플레이오프(현대)를 차례로 넘어 한국시리즈서 삼성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일이다.
김 감독이 프로야구계에서 ‘명장’을 넘어 ‘타짜’로까지 불리는 것은 과언이 아니다. 야구 선수들 사이에서 ‘선수들과 함께 승리를 쟁취할 줄 아는 그’는 진정한 승부사로 칭해진다. 올해는 김 감독이 자신의 저력을 십분 발휘한 해이다.
지난 3월 열린 제 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지난 달 29일 막을 내린 한국시리즈는 김 감독과 국내 팬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김인식과 세계야구 4강의 기적
“재미있는 야구”, “박진감 넘치는 승부”, 그리고 “승리.” 이런 말들은 김 감독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김 감독에게 있어 ‘객관적인 팀별 데이터 수치’는 숫자에 불과하다. 지난 WBC에서 그가 이끈 한국 팀이 보여준 모습은 이를 대변한다.
제 1회 WBC에는 야구의 본고장 미국을 비롯해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아마최강’ 쿠바 등 세계 야구 강국들이 승리를 위해 모여들었다.
박찬호와 최희섭을 비롯한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한국 팀에 포진하고 있었지만, 전원 메이저리거로 포진돼 있는 미국과 아시아 최강이라는 일본에 비해 전력이 약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리그 시작 후 객관적 전력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지난 3월 3일 열린 대만전(2:0)을 시작으로, 중국(10:1), 일본(3:2)을 연파하며 ‘김인식 호’는 조 1위로 WBC예선을 통과했다.
김 감독과 한국 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8강에서는 막강 메이저리거들이 포진해 있는 미국을 상대로 승리를 일궈냈다(7:3). 일본을 상대로도 한 번 더 승리(2:1)를 거머쥐었다. 연승이었다. 한국야구가 세계4강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당시 국민들은 “이대로 WBC에서 우승하는 것이 아니냐”며 기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준결승전에서 무려 2번이나 승리를 거둔바 있는 일본에 아깝게 패해 4강에 머물고 말았다.
그러나 국민들은 김 감독과 한국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과 능력에 박수를 보냈다. 승부욕에 불타오른 선수들과 그들을 하나로 이끈 김 감독의 역량이 빚어낸 드라마였다.
한화의 재발견
올 한국시리즈의 우승은 선동렬 감독이 이끄는 삼성 라이온즈였다. 하지만 또 다른 승자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화 이글스와 김 감독이었다.
‘믿음의 야구’로 무장한 김 감독의 한화는 올 시즌 ‘열정과 투혼’이라는 키워드를 만들어냈다. 3위로 올 정규시즌을 마감한 후 플레이오프에서 KIA와 현대를 연파, 한국시리즈까지 올라 삼성과 한국시리즈 6차전까지 치르는 명승부를 이끌어 냈다.
3연속 연장접전(3,4,5차), 1점차 박빙승부(2,6차) 등 이번 한국시리즈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스릴이 있었다. 팬들은 한국시리즈 경기에 열광하고 한화를 한국 시리즈로 이끌어낸 김 감독에 열광했다.
한화의 이번 한국시리즈 진출은 7년 만이었다. 창단 첫 해인 99년 우승이후 처음이었다. 김 감독 부임 2년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슈퍼루키’ 류현진과 베테랑 문동환의 막강 ‘원투펀치.’ ‘200승 투수’ 송진우, ‘특급 마무리’ 구대성. 이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마운드 활용력으로 한화 투수진을 극대화시킨 것이 김 감독이다.
한국시리즈에서는 기복이 있었지만 포스트 시즌 클리어와 데이비스를 이용한 탁월한 용병술을 보여준 것도 그였다.
비록 한국시리즈에서는 송진우의 부상으로 인해 불펜의 열세. 삼성의 막강 투수진에 밀려 고배를 마셔야 했지만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불리한 여건 속에서 연장 접전과 1점 차 승부라는 명경기를 일궈낸 김 감독과 한화 선수들에게 우승자 못지않은 찬사가 쏟아졌다.
팬들의 이 같은 찬사가 가능했던 이유는 김 감독의 지도자로서의 실력뿐만 아니라 선수와의 신뢰가 두터웠기 때문이었다.
선수들에 대한 무한 신뢰
정규시즌 동안 한화의 4번 타자 자리를 지켰던 김태균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맹활약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한화에서 그의 자리는 항상 ‘4번 타자’였다.
이는 용병 데이비스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부진해 한화 팬들로부터 외면 받은 데이비스였지만 데이비스는 항상 주전이었다.
삼성의 선동렬 감독이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부진을 이유로 심정수 대신 김대익을 4번 타자로 내세운 모습과 대조된다.
이것이 바로 김인식 표 ‘믿음의 야구’다. 말 그대로 선수에게 끝까지 신뢰를 보내는 것이 김 감독의 특징이다.
김 감독의 신뢰에 보답하고자 선수들이 하나로 뭉쳐 단결, 좋은 경기 내용으로 팬들을 즐겁게 해줬으니 말이다.
“한국시리즈에서 패했지만 정말 뜻 깊은 한 해였다”고 밝히는 김 감독. 그는 이미 다음 시즌 열풍을 예고하며 지난 1일 훈련에 돌입했다.
“내년에는 더욱더 재미있는 경기를 하겠다”는 김 감독의 말에 ‘믿음’이 가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이미 김 감독의 ‘믿음의 야구’는 다시 시작 되었다.
# 한국식 야구의 대명사 한화 김인식 감독 일문일답
“젊은 피 수혈에 초점 맞출 것”
-2006시즌과 한국시리즈까지 총평을 한다면.
▲구대성이 돌아왔고 김민재를 잡아 지난해까지 불안했던 내야의 수비가 좋아졌지만 윤규진, 김경선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투수력에 차질이 생겼었다. 게다가 지난 5월 31일 잠실 두산 전에서 최영필이 당한 부상도 팀이 흔들리는 요인이 됐다. 비록 한국시리즈에서는 패했지만 정말 뜻 깊은 한 해였다.
-김인식 감독의 ‘믿음의 야구’가 호평을 받고 있는데.
▲쑥스럽고 이상하다. 시즌 초 스프링 캠프에서 류현진을 선발로 기용하겠다고 했을 때 담당 코치도 의아하게 생각했고, 10승 정도 거두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대성공을 거뒀다. 선수들을 믿은 것 뿐인데 ‘믿음의 야구’라고 칭해지는 것에 대해 의아스럽다.
-2006시즌과 포스트시즌에서 칭찬해 주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포스트시즌에는 고동진과 한상훈을 칭찬해주고 싶다. 전체적으로 볼 때는 류현진이 가장 잘해줬다. (류현진은)돌풍을 일으킨 최고의 선수다.
-삼성에 아깝게 패한 원인은.
▲삼성의 투수력은 최강이고 투수력에서 밀린 것 같다.
-삼성 선동렬 감독에 대해서 평가를 한다면.
▲(선동렬은)감독데뷔 2년째인 감독으로 평소에 느꼈던 그 이상을 하고 있다. WBC 때도 충분한 데이터를 공유하며 전적으로 맡기고 해왔다. 그때와 지금 모습을 보면 ‘모든 것을 뛰어 넘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불펜의 불안요소가 보이고 있는데 다음 시즌은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나가사키 마무리캠프와 하와이 스프링캠프를 통해 젊은 유망주를 발굴하고, 경기에 기용할 비율을 높일 생각이다. 노장선수가 많지만 하루아침에 물갈이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다음 시즌 용병계획은 어떻게 되나.
▲결정할 수는 없지만 생각해봐야겠다. 투수 1명에 야수 1명이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전을 비롯한 전국의 한화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에 한국시리즈 끝나고 2일 정도 서울에서 쉬며 모 처에 있는 식당에 들렀을 때 서울 사람들이 사인을 해달라며 ‘한화를 응원했다’고 말해 놀랐다. 그 만큼 한화 이글스가 전국적으로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한다. 더욱더 재미있는 경기를 하도록 하겠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관중도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충청인의 자랑이 되도록 항상 최선을 다하겠다. <재>
# ‘명장’ 성남일화 차경복 전감독 별세
축구계의 ‘대부’ 인생의 그라운드에서 내려오다
한국 프로축구계의 ‘명장’으로 통하던 차경복 전 성남 일화 감독이 지병으로 지난달 31일 별세했다.
94년부터 2004년까지 10여 년간 프로축구 사령탑으로 활약하던 차 감독은 지난 5월 루게릭병으로 쓰러져 오랜 기간 투병해 오다 이날 오전 끝내 숨을 거뒀다.
중동고와 경희대를 나와 기업은행에서 현역으로 뛴 차 감독은 기업은행 코치와 인천대, 경희대 감독을 거쳐 1994년 전북 다이노스의 사령탑으로 국내프로리그에 데뷔했다.
이후 차 감독은 98년부터는 성남 일화로 자리를 옮겨 2004년까지 7년 동안 성남 감독을 지냈다.
특히 현 성남 사령탑인 김학범 코치와 함께 2000년대 초반, K-리그에서 성남을 최고의 팀으로 키워낸 차 감독은 2004년 성남의 마지막 사령탑을 맡을 당시 팀의 6번째 우승을 이끌었다. 2003년엔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선정한 아시아 최고의 감독으로 뽑혔다.
그는 또한 감독뿐만 아니라 명심판으로도 이름을 떨쳤다. 축구협회 기술위원장, 심판위원장을 지낸 차 감독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축구 결승 부심을 맡는 등 심판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했다.
김학범 성남일화 감독은 “축구계의 큰 별이 졌다. 차 감독은 모든 면에서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지도자였다”며 “더 오래 남아 K-리그 중흥에 힘을 써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리그와 이별을 고하게 됐다”며 슬퍼했다.
<재>
이재필 hwonane@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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